작성일 2016.11.28 조회수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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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동(中平洞)
작성자 관리자
[위치]
시의 중심에 위치한 동으로 시청에서 0.7km거리에 있으며 평원로를 중심으로 서쪽 원일로와 중앙로변이 중앙동, 평원로에서 원주천변 까지가 평원동으로 되어 있고 인동·일산동·학성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래]
중앙동(中央洞)은 1937년 원주읍제 실시에 따라 상동리(上洞里)와 하동리(下洞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이라 하였다. 해방후 원주읍의 중앙이 되므로 중앙동이라 하였다. 평원동(平原洞)은 고구려 장수왕 57년(469)에 평원군이 설치된 것에 유래한다. 일제시대때 원주군 본부면 하동리의 지역인데 원주읍제 실시에 따라 욱정(旭町)이라 하다가 광복후 일본식 동명을 변경할 때 평원동이라 개칭하였다.


[연혁]
1938년 원주군 본부면이 원주읍으로 승격되면서 본정 1, 2정목(중앙동), 욱정(평원동)이 설치되었다가 1945년 정(町)을 동(洞)으로 하면서 중앙동과 평원동으로 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법정동인 중앙동과 평원동이 되었고 1961년 연합동제 실시에 따라 중앙동과 평원동을 중평동으로 하여 지금의 행정운영동이 설치되었다.

[지명]

나무전거리 [터]
[위치] 현재 시공관극장 앞쪽 일부와 평원동에 편입된 일부지역으로 분수대 부근을 말한다.
[유래] 약 1,500평의 잡종지에 땔나무시장이 있었던 곳을 나무전거리라 하였으나 지금은 상가와 주택이 들어서 있다. 당시에는 우마차와 지게로 장작과 싸리나무와 숯을 치악산에서 채취하여 땔나무로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분수대 [터]
[위치] 현 중앙·평원동과 봉산동을 잇는 쌍다리 서쪽 오거리를 말한다.
[유래] 90년대 초까지 분수대가 있어서 로터리 역할을 하였는데 도로확장으로 없어졌다.

상청거리 [마을]
[위치] 제일은행 뒤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원주목의 관사(상청)가 있어 상청(上廳)거리라 하였고 지금은 상가 및 주택으로 형성되었다.

쇠전거리 [터]
[위치] 현재 국민은행 부근에 있었던 장터를 말한다. 우시장거리라고도 한다.
[유래] 예전에 소를 팔고 사는 시장이 있었던 거리를 말하며 우시장거리라고도 한다. 상청거리 남쪽에 있던 길이었다.

자유시장 [시장]
[위치] 중앙시장 앞쪽에 있는 시장으로 하나의 커다란 건물로 되어 있다.
[유래] 1965년에 시장이 설치되었고 1987년에 재개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한쪽에서는 일반 물품을 팔고 한쪽에서는 군 물품을 몰래 팔았다고 한다. 현재 지하1층, 지상2층은 시장이며 4~7층은 아파트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거리 [거리]
[위치] 구 소방서 자리 부근에서 현재 중앙시장 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유래] 전국에서도 유명한 산채나물·두부·콩나물 등 부식을 팔던 아침시장이 있어 이를 저자거리라 하였으나 지금은 원일로의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중앙로 [도로]
[위치] 문화극장에서 명륜동 파출소에 이르는 1.5km의 도로를 말한다. B도로라고도 한다.
[유래] 중앙동을 관통하므로 중앙로라고 하였다.

중앙시장(中央市場) [장]
[위치] 중앙동 62-2번지, 현재의 중앙시장을 말한다.
[유래] 1965년에 설치하였다. 전에는 한가지 물건을 사려면 무조건 일전(一錢)씩 주었다 하여 일전시장이라고도 하였다. 현재 1층은 시장이며 2층은 업소와 주택이 들어서 있다.

평원로 [도로]
[위치] 원주역에서 쌍다리까지 관통하는 1.5km의 도로를 말한다. C도로라고도 한다.
[유래] 평원동을 관통하므로 평원로라고 하였다.

포교당터(布敎堂-) [터]
[위치] 평원동에 있었던 포교당의 터를 말한다. 현재 원주관광호텔과 중앙선 철도 중간지점 주택지이다.
[유래] 전에 이 곳에 포교당을 짓고 불교를 펴다가 1940년에 봉산동(鳳山洞)으로 옮기어 보문사(普門寺)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