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04.02 조회수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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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병리(翠屛里)
작성자 관리자
[위치]
취병리는 문막읍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섬강을 경계로 하여 동쪽으로는 건등리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남쪽으로는 반계리, 북쪽으로 지정면 안창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래]
섬강변에 김창일(金昌一)이 살면서 정자를 짓고 이름을 취병정이라 했으므로 마을 이름도 취병리라 하였다고도 하고 취병산이 있으므로 취병리라 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연혁]
원래 원주군 사제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분3리, 분2리 일부를 병합하여 취병리라 하였다.


[특이사항]
취병산에는 섬강 옆으로 기암절벽이 있고 맑은 모래밭이 있어서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벌새터의 호전 전설이 있다.


[지명]
▲갈매골 [골]
[위치] 골새터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검숭이고개 [고개]
[위치] 작달매기에서 송원동으로 넘어가는 높이 189m의 고개를 말한다.

▲검숭이골 [골]
[위치] 검숭이고개 아래 작달매기쪽의 골짜기를 말한다.

▲골새터 [마을]
[위치] 새터 안쪽, 송산봉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내신대, 동신대라고도 한다.
[유래] 골 안에 새로 생긴 터라고 해서 골새터라고 부른다.

▲관모산(冠帽山) [산]
[위치] 석기재 남쪽에 있는 높이 362m의 산을 말한다.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과 경계가 되는 산이다.

▲구메바우 [바위]
[위치] 취병리 서쪽 취병산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바위에 큰 구멍이 있어서 구멍바우>구메바우가 되었다.

▲구메바우굴 [굴]
[위치] 구메바위 밑에 있는 굴을 말한다.
[내용] 깊이가 약 2m 가량 되는데 물이 차있다고 한다.

▲낭골 [골]
[위치] 농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내신대(內新垈) [마을] → 골새터

▲농골 [골]
[위치] 절골 동쪽으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동신대(東新垈) [마을] → 골새터

▲매네미고개 [고개]
[위치] 취병저수지에서 남서쪽 반계리 쪽으로 난 고개를 말한다. 성상봉 바로 북쪽에 있다.
[유래] 매(산)를 넘는다고 하여 매넘이>매너미>매네미가 되었다.

▲명산들 [들]
[위치] 벌새터 북쪽 옆에 있는 들을 말한다.

▲방아울고개 [고개]
[위치] 작달매기에서 지정면 안창리 이운이 남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높이 290m이다.

▲방아울골 [골]
[위치] 작달매기에서 방아울고개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밭골 [골]
[위치] 절골 서쪽으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배내미들 [들]
[위치] 석지골 남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버들골 [마을]
[위치] 취병저수지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서 버들골이라고 한다.

▲버들골들 [들]
[위치] 버들골 동쪽, 취병저수지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벌새들 [들]
[위치] 벌새터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유래] 벌판에 새로 생긴 들이라 벌+새들>벌새들이라고 한다. 호전이라고도 한다. 이 들은 원씨 문중의 소유로 3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름을 호랑이밭(虎田)이라고 부른다. 옛날 원씨성을 가진 사람이 석양 무렵 나무를 해서 지고 마을로 돌아오던 중, 마을 앞 우물에서 쌀씻는 젊은 아낙을 호랑이가 해치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도끼로 호랑이를 잡았다. 그 가죽과 고기와 뼈를 판 돈으로 장만한 논이라고 하여 호전이라고 했다 하며 원씨의 후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다.

▲벌새터 [마을]
[위치] 수풍말 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벌새터골, 평신대, 호전이라고도 한다.
[유래] 벌판에 새로 생긴 터라고 해서 벌+새터>벌새터가 되었다.

▲벌새터골 [마을] → 벌새터

▲사자바우 [바위]
[위치] 취병산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모양이 사자를 닮아서 사자바우라고 한다.

▲새터 [마을]
[위치] 취병리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을 말한다.

▲새터여울 [내]
[위치] 새터 앞으로 흐르는 여울을 말한다.

▲석기재 [고개]
[위치] 석지골 서쪽, 경기도 강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석지골 [골]
[위치] 취병저수지에서 북서쪽, 진골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석지골 [마을]
[위치] 석지골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석지나루 [나루]
[위치] 건등리 석지와 취병리 버들골을 잇는 나루를 말한다.

▲성가마을 [마을]
[위치] 석지골과 진밭 사이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송산봉 (松山峰) [산]
[위치] 골새터 북쪽, 취병저수지 남쪽에 있는 높이 196m의 산을 말한다.

▲성상봉 [산]
[위치] 취병저수지 남서쪽, 골새터 북서쪽에 있는 높이 386m의 산을 말한다.

▲수풍말 [마을]
[위치] 벌새터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숲이 많은 마을이라고 하여 숲+말>숲말>수푸말>수풍말이 되었다.

▲숲안밭골 [골]
[위치] 석지골과 진밭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동(柳洞) [마을] → 버들골

▲이전동(泥田洞) [마을] → 진밭

▲이진맥이골 [골]
[위치] 큰절골에서 남쪽으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일당산(一堂山) [산]
[위치] 취병리 동남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일정골 [골]
[위치] 석지골에서 관모산으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임동교 [다리]
[위치] 수풍말에서 골새터를 잇는 다리를 말한다.

▲임동천 [내]
[위치] 당산에서 시작하여 진밭, 취병저수지를 거치고 섬강으로 흐르는 내를 말한다.

▲작달막(作達幕) [마을] → 작달매기

▲작달막고개 [고개]
[위치] 작달매기에서 지정면 안창리 이운이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높이 184m이다.

▲작달막골 [골]
[위치] 취병저수지 북동쪽 작달매기에 이르는 골짜기를 말한다.

▲작달매기 [마을]
[위치] 취병저수지 북동쪽 골짜기에 떨어져 있는 마을을 말한다. 작달막이라고도 한다.

▲작은절골 [골]
[위치] 골새터에서 북쪽, 송산봉으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장대장들 [들]
[위치] 취병저수지 앞 버들골들 아래에 있는 들을 말한다.

▲장수우물 [샘]
[위치] 취병리에 있는 샘을 말한다.
[유래] 예전부터 칠월 백중에 문막의 취병리와 옆 마을이 씨름을 하면 취병리가 항상 이겼고 지금도 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취병리 사람들이 이 장수우물 물을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우물은 예전에 곱추가 방을 얻어 살면서 한 달간 그 물로 밥을 해먹고 거뜬히 나은 적이 있어 장수가 되는 우물이라고 한다.

▲절골 [골]
[위치] 진밭 북쪽 골짜기로 안창리 수정동으로 넘어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지골 [골]
[위치] 취병저수지와 진밭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진밭 [마을]
[위치] 취병저수지 북서쪽 골짜기, 석지골 막바지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이전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물기가 많아 밭이 질어서 진밭이라 한다.

▲질골 [골]
[위치] 석지골에서 석기재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말한다.

▲취병교 [다리]
[위치] 취병리, 문막 101호 도로에 있다.
[내용] 길이 44m, 너비 8m로 1995년에 건립되었다.

▲취병들 [들]
[위치] 취병리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취병산(翠屛山) [산]
[위치] 석지나루 북쪽, 섬강가에 있는 산을 말한다.

▲취병소 [소]
[위치] 취병산 밑에 있는 소를 말한다.

▲취병암 [바위]
[위치] 취병산, 섬강변에 있는 높은 절벽으로 된 바위를 말한다.

▲취병암 [절]
[위치] 취병암에 있었다는 절을 말한다.

▲취병저수지 [못]
[위치] 취병리 석지나루 서쪽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내용] 작달매기와 진밭골의 물이 모이고 버들골과 벌새터에 물을 댄다. 1971년에 건립된 저수지로 높이 18m, 길이 241m, 깊이 16m이다.

▲취병정터 [터] → 건등리 취병정
[위치] 취병산 밑 취병정이 있던 터를 말한다.
[내용] 인조 때 사한 김창일이 지은 정자이다.

▲취병초등학교 [학교]
[위치] 취병리 356번지 벌새터에 있다.
[내용] 1941년에 개교하였고 현재 4개 학급에 학생 약 40명이 있다.

▲큰절골 [골]
[위치] 골새터에서 서북쪽, 성상봉과 매네미고개로 이르는 긴 골짜기를 말한다.

▲토산대(土山垈) [마을] → 흑산터

▲파골 [골]
[위치] 흑산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평신대(坪新垈) [마을] → 벌새터

▲호전(虎田) [들] → 벌새들, [전설]

▲흙산터 [마을]
[위치] 버들골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토산대라고도 한다.

▲흰돌교회 [교회]
[위치] 취병1리 343-5번지에 있는 감리교 교회를 말한다.



[전설]
[호전]
취병리 벌새터골에 사는 원모 씨는 힘이 장사였다. 비록 무식한 농군이었지만 의협심이 강했고 옳은 일에 앞장서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미였다. 어느 날 저녁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마을 앞 우물에서 쌀 씻는 젊은 아낙을 뒤에서 막 해치려 하고 있었다. 원씨는 나뭇짐에서 재빨리 도끼를 뽑아들고 호랑이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랑이가 원씨를 향해 쏜살같이 덤벼들었다. 원씨는 자신도 모르게 높이 들었던 도끼로 호랑이를 내리쳤다. 천만다행으로 도끼는 호랑이 머리에 명중하였고, 호랑이는 일격에 나가 떨어졌다. 원씨는 만일을 몰라 연거푸 몇 대를 더 가격해서 완전히 호랑이를 죽였다. 이 소문은 금세 퍼지고 온 마을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나무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기에 도끼가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큰일을 당할 뻔했었다. 남의 얘기를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은 숫제 원씨가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걸로 이야기를 전했다. 이 화젯거리는 얼마간 문막의 신화에 가까운 얘기가 되었다. 원씨도 도끼로 때려잡은 호랑이를 처분하여 가죽은 가죽대로 팔고 나머지 고기와 뼈까지도 약으로 비싼 값에 팔았다. 50년 전의 호랑이 한 마리 값은 논 3마지기를 살 수 있는 돈이었으며, 원씨는 그 때 지금까지 그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는 논을 장만해 놓은 것이다. 아무리 궁해도 조상이 호랑이를 때려잡아 마련한 논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유산으로 물려받고 있다. 이후 호랑이로 인해서 산 논이라 해서 호랑이밭(虎田)으로 불리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설을 남긴 원씨는 용맹과는 달리 기가 막힌 일을 겪어야 했다. 하루는 원주감영에서 원씨에게 호출장이 날아들었다. 원씨는 상을 주려는 줄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영에 출두했다. 그러나 원님 앞에 섰을 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놈, 이 미련하기 그지없는 놈, 그래 호랑이가 어떤 동물이라고 맨주먹으로 상대하여 때려잡다니, 그러다가 되물리기나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나?" "아니올시다. 맨주먹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도끼로 때려잡았습니다." "도끼 같은 흉기로 호랑이를 해친 것은 더욱 잘못이다. 자고로 호랑이란 만수의 왕으로 산중 영물이 아닌가? 또 호랑이는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사람을 해치는 법이 없느니라. 네가 마을 한 아녀자에게 힘이나 쓴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 위험천만한 소행을 저질렀지?" 원씨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원님 앞에서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날 원씨는 볼기 50대를 맞고 차후엔 절대로 그런 무모한 짓을 말도록 단단히 훈계를 받고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