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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번창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요 학성동 정운암 님
글쓴이 원주 기록관 (admin) 작성일 2022-11-18 17:01:40 조회수 213

과거 번창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요

학성동 마을 주민 인터뷰 정운암 님






0. 인터뷰이 소개

정운암 님은 1970년대고향 횡성을 떠나 학성동으로 왔습니다.
긴 세월 역전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마을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생업과 더불어 18년 전부터 현재까지 통장 업무를 본 덕분에 가가호호 모르는 동네 사정이 없다는 정운암 님은 오래전 역전시장이
많은 인파로 북적였던 그때를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



Q1. 마을에 언제부터 사셨나요?

1970년대부터 살았으니까 55년 넘었지. 횡성에서 나고 자랐는데, 20대에 여기로 왔어요. 그 당시 내가 모아 놓은 돈이 3만 원이더라고요.
지금으로 치면 삼백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걸로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다녔어요.
그러다가
, 역전 근방에 오니까 여기 시장에 빈 가게 자리가 있는데 한 달에 오백 원이야그래서 그걸 얻었지.
그땐 워낙 돈이 없으니까 그저 소주 다섯 병 갖다 놓고, 광성사이다 조금 갖다 놓고. 애들 공책이랑 구슬, 그림 딱지 같은 걸 팔았어요.
그때만 해도 구멍가게가 잘 됐어요. 이 골목에 다섯 개가 있었는데 다들 곧잘 됐지. 거기서 2년 하다가 열 평짜리 세를 얻어 빵집을 차린 거예요.

 







Q2. 이 동네는 토박이가 많았나요통장님처럼 이주해 온 분들이 많았나요?

이사 온 사람들이 많지. 시장 근처라서 토박이는 많이 없어요. 지금 여기 보고 역전시장이라고 하는데, 이 골목 뒤쪽으로 꽃밭 조성해 놓은 거기가 원래 역전시장 터예요.
여기가 유문리라서 유문시장이 있었어요. 유문시장 있을 때부터 여길 유문리라고 했고 시간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학성 1, 2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큰 도로 밑은 중앙동으로 편입됐는데 거기가 원래는 학성 2동이었어요. 원주역도 학성 2동이고.

 



Q3. 옛 원주역 근처 시장이라 예전에는 무척 번화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옛날에는 버스 아니면 기차로 이동했잖아요. 기차가 도착하면 장마철에 개미굴에서 개미 나오듯 사람들이 끝없이 나왔어요. 그때가 좋았는데 
열차 시간표 보고 도착 시간이 되면 시장 사람들이 딱 기다리고 있었지손님들이 들이닥칠 걸 아니까.
큰길 건너 지금 OO캬바레라고 있는데, 거기 짓기 전에 그 자리가 역전 시장이었어요. 거기도 잘됐었지.
주로 시장에 오는 사람들이 문막, 횡성, 호저 고산리까지 원주 인근 시골 사람이 여기 다 와서 물건 팔았죠. 그때는 골목에 사람들 앉을 틈이 없었어요.
이것저것 해서 팔고. 팔다가 시장 파할 때 되면 나한테 와. 내일 자리 맡아 달라고. 그러면 하다못해 무라도 하나 뽑아다 주고 옛날에는 그런 재미가 있었지.

나중에 원주 시내 마트가 들어왔잖아요. 역전도 옮겨가고 법원도 옮겨가고. 원주 시내 인구가 줄어드니까 마을금고도 없어졌어요.
요즘은 학성동이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돼서 여기 역전시장 골목에 공방하는 사람들도 들어오고 조금은 나아진 편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켓 같은 행사를 하는데, 부모들이 아이들 데리고 와서 보기도 하고. 행사할 때는 손님들이 많이 와요.



Q4. 역전시장에도 번영회가 있었나요?

​​
그럼요. 역전 시장도 번영회가 있었어요. 역전시장 번영회가 예전에 서울상공회의소에서 감사도 나오고 했어요. 그렇게 규모가 있었다고.
내가 예전에 번영회 총무를 했는데, 봄 되면 시장 사람들 모아서 강변 유원지 가서 천렵도 하고 가을엔 관광버스 대절해서 단풍 구경도 하고.
그때가 3~40년 전쯤 됐을 거야유문 시장 있을 때는 번영회가 잘 됐는데 시장이 골목 밖으로 나오니까,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하면서 가입을 잘 안 하더라고요.
이 바깥 골목 사람들이 원래 있던 안쪽보다 사람이 더 많아지는 거야. 다니기도 좋으니까. 그러면서 안쪽에 있던 사람들도 다 나왔지.
나중에 시장이 축소되고 나서 서울상공회의소에서 하는 말이 '이제 역전시장은 상공회의소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해요.  규모가 작다 이거지요.

 






Q5. 마을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을까요?


역전시장이 법원도 있고 역전도 있고 예전엔 괜찮았어요. 장사도 잘됐고 집값도 평당 오백 얘기까지 나오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가지는 못해.
반값밖에 못 되고. 살라고 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요. 활성화가 되고 미래가 보여야 투자를 하고 그러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법원 이전할 때 반대 여론이 있었지. 하지만 나라에서 하는 건데 얘기해봐야 소용없지 않을까 싶으니 서명운동도 한 번 못 해보고 그냥 이전한 거죠.
사무실이 주변에 많이 있어서 음식점 장사가 잘 되었어요. 법원 이사 가는 바람에 조금씩 다 없어졌어.
그리고 역전시장이 10년 전 쯤인가 재개발하려고도 했었어요복덕방에서 추진 해서 다들 재건축에 동의하고, 조감도도 보여주고 했는데, 부도가 나서 다 망가졌지.
추진대로 잘 됐으면 복합상가와 아파트 단지가 생겼을 거예요.
그렇게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제는 재개발은 가능성이 거의 없죠. 주민들이 그때 한 번 좌절 했기 때문에 재개발한다고 해도 눈들도 안 돌리지.

 

 


Q6. 희매촌도 예전과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요?

번창할 때는 한 집에 아가씨가 열 명씩 있었어요. 원주가 군사도시다 보니 주말이면 군인들이 아주 많았죠.
여기로 지나가면 아가씨들이 군인들 쫓아가서 모자 벗겨가는 장난도 치고 그랬죠. 지금은 역전시장 근방 쪽으론 다 없어지고 약국 뒤에는 아직 몇 집 있어.
길 건너에 광명마을에도 몇 집 있고. 그 전에 비하면 반도 더 줄었지.

 



Q7. 과거에 시장의 편의시설은 어떤 편이었나요?


아주 오래 전에는 길이 포장이 안 돼 신작로에 먼지가 연실 났어요. 먼지 터는 게 매일 하는 일이었지.
시장 통로도 흙 길이었는데, ​그래도 포장이 빨리 돼서 그 다음부터는 깨끗했어요여기도 장화 없이 못 살았다고. 연탄재를 버리면 진 죽이 되고.
내가 원주에 오기 전부터 전기는 들어와 있었어요.

요새는 학성동이 많이 낙후됐지만, 원주를 통틀어보면 사실은 중심가예요. 시장이 지금은 조그맣지만, 예전에는 시장터가 꽤 넓었어요.
트럭도 들어오고 시에서 비 안 맞게 지붕도 지어줬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화장실이었어요. 남자 화장실 하나 여자 화장실 하나​ 있는 재래화장실이었거든요.

역전시장 번영회에서 땅을 사서 시에 이야기했더니 수세식 화장실로 잘 지어줬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구룡장이라는 목욕탕도 있었어요.
역전시장에는 공동수도가  딱 두 개가 있었어. 공동수도를 쓰는 집들이 한 달 되면 나눠서 수도세를 냈어요.
우물은 이 시장 안엔 없었고 근방에 강원하숙이라고 있는데 그 집에 우물이 있었어. 거의 옛날 모습 그대로인데, 집들을 많이 고쳤지. 지붕이 예전엔 기와였어요.
연탄을 때고 하다 보니 기와가 삭으니까 함석지붕으로 바꾸고. 기와 아니면 슬레이트였지요. 
여기가 다 연립으로 되어있어서 새로 다 같이 지어야 하니까 지붕만 고쳐서 쓰고 그랬지.

 



Q8. 예전 학성동 주민들은 아무래도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많았겠어요.


예전에는 구멍가게가 많았지. 신발가게도 두 집인가 있었고 옷 가게도 세 집이 있었고. 솜틀집도 있었어요. 막걸리 특약점도 있었고. 대폿집도 두 어 군데 있었죠.
그리고 여관도 세 집인가 있었어. 이 동네 다 장사해서 먹고 살았지. 지금 역전시장 도서관 자리도 여관이었어요.
알아서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역전에 가서 호객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여관 같은데 소개해서 데려다 주면 여관 주인들이 품값을 주는 거지.
그때는 시장 주변에 부랑자들도 꽤 많았어요.

 



Q9. 아이들도 마을에 많았나요?

우리 애들은 셋 다 중앙초등학교 다녔어요. 우리 애들 다닐 때는 한 학년에 12반까지였는데 지금은 2반까지라던가? 우리 애들 키울 때는 아이들이 동네에 바글바글했지.
시끄럽다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놀고. 그때 당시에는 구슬치기, 그림 딱지 같은 거 가지고들 놀고, 숨바꼭질 빙빙 돌아가면서 잘 숨고. 그런 것들 많이 했어요.
저녁 먹고는 밖에 잘 못 나가게 해서 우리는 텔레비전을 남들보다 일찍 샀어요. 아이들 키울 때 그게 걱정이 많았어요. 아이들 나쁜 물 들을까 봐.
지금은 동네에 아이들이 없어요. 지금 내가 통장을 보고 있지만 몇 년 동안 우리 통에 초등학생이 한 명도 없어.
, 세월이 이래선 안 되는데. 희매촌 같은 곳이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이 동네서 아이를 낳고 살 수가 없지.
여기 밑에 24시 슈퍼집 그 집 딸내미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집 손자가 말하자면 동네 손자야.

 



Q10. 경조사라든지이웃 간 교류는 어떻게 하셨나요?


반상회는 집마다 돌아가면서 했는데, 방 좁은 집은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가 없잖아. 두어 집에 큰 방이 있었어. 반상회 하면 거기서 하고 그랬지.
옛날에는 누가 돌아가시면 수기로 써서 연락을 다 했지, 부고장이라고 하지.
부고장을 집마다 돌리고, 혼사 있을 때는 청첩장 돌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까 이웃 간에 정이 점점 더 멀어지는 거 같아.
예를 들어서 내 생일이라면 밥들 먹으러 오라고 초대하고, 다음에는 또 누구 생일날 내가 소주라도 한 병 사 들고 가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재미가 없어.
잔치해도 집 안끼리 만 모여서 하고. 옛날이 자꾸 그리워져요. 요새 세월이 그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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