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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거리처럼 활기 넘치던 곳 명륜동 이인숙 님
글쓴이 원주 기록관 (admin) 작성일 2022-11-21 15:21:25 조회수 148

젊음의 거리처럼 활기 넘치던 곳

명륜동 이인숙 님






Q0. 인터뷰이 소개

이인숙
(71)199297일 명륜아파트 2단지에 입주했습니다.
입주하던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30년 동안 거주하고 계신 아파트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1. 입주하신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1992년도 여기 입주할 때만 해도 아파트라는 곳이 별로 없었어요. 입주하려고 왔는데 집이 너무 작아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까 지금까지 살게 된 거예요. 특히 우리 아파트 같은 경우는 안 좋은 쪽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까지도 그래요.
저소득 아파트, 영세민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지금은 수급자라고 그러고 그전에는 영세민이라고 그랬어요.
처음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아파트를 만들었다고 해서 의아했어요.
우연히 들어왔지만​ 제가 들어온 동도 좋아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게 감사해요. 그래서 저는 안 좋은 이야기들 다 무시해요. 그냥 정이 있는 곳이에요.

저는 여기 아파트의 산증인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1992년도 831일부터 입주를 시작했는데 내가 그 시작을 같이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입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예전에는 식구가 많고 짐들도 많았잖아요. 그래서 집이 너무 작으니까 입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LH에서 주택청약 3만 원 저축하는 사람들을 다 입주시켜버린 거예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지금은 세월이 흘러 다 빠져나갔지.
그때는 80%가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Q2. 그 때와 현재가 많이 달라졌나요?

 

개선됐지. 주변 환경도 그렇고요. 아파트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태도도 많이 개선됐어요.
예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영세민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인식이 많이 안 좋았어요. 땡칠이 아파트라는 별명도 있었거든요.
이전에는 영구임대아파트라는 이름이었어요. 그게 지금은 명륜 2차로 바뀌었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조금 상처가 있었어요.
택시를 타고 와도 아파트 앞에서 못 내리고 다른 곳에서 내리기도 하고 그랬었죠.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 생각이 많이 개선됐어요.



Q3. 사리진 것들이나 새로 생긴 것이 있나요?


원래 아파트 들어오는 입구에 지하수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어서 원주 사람들이 물 뜨러 많이 왔어요.
여기 물이 맛있다고 왔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수질검사를 하더니 없애야 된다고 해서 없어졌어요.
이곳엔 공장 지대도 없어서 물이 맑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거죠. 터는 아직 남아있어요.



Q4. 동네의 대표적인 장소는 어디였어요?

보다시피 여기는 지금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때도 복지관이 가장 대표하는 장소 아닐까 싶어요.



Q5. 여기 교통은 어땠나요?

지금 버스타는 곳과 같아요.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도영쇼핑 앞에서 버스를 많이 탔지. 주로 30번대 버스가 와요.



Q6. 도영쇼핑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예전 도영쇼핑은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1층에서는 잡화, 그러니까 속옷이나 신발가게가 있었고 층마다 옷 가게 같은 것들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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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에는 뷔페집이 있었어요. 목욕탕도 있었고. 할인행사 이런 것도 많이 해서 가까운 데 있다 보니까 자주 갔어요. 그 밑에 또 마트가 있다 보니까 자주 가게 되더라고요.



Q7. 장 보러 주로 거기로 다니신 거예요?

도영쇼핑 쪽에 자주 갔지만 여기 장터도 있었어요. 장에 가자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거기인 줄 알아요. 명륜 2차 만들면서 장터 길을 만들어 줬어요.
너무 도로여서 번잡하니까 이제는 자제를 좀 하다 보니 축소가 됐지만 20년 이상 된 장터를 아직도 많이 이용해요. 우리 아파트 노인분들이 소일거리로 운영하지.
가까운 곳에서도 오는 분들이 계시고요. 그전에는 진짜 시장 같았어. 오후 3-4시면 동네 사람들이 저기 장 서는데 가자고 그랬지.

 


Q8. 마을에 주민들이 모이는 모임은 어떤게 있었나요?

동네에서 예전에는 행사도 많이 했어요. 부녀회에서 바자회 같은 걸 하면 사람들이 많이 왔죠.
추운 날 고생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주민들한테 물건을 전달했을 때 즐거워하는 모습 또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나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을 때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 돈 벌어서 우리 아파트 계시는 분들에게 나눠 드리기도 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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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에 한 번씩 반상회도 했는데 코로나 이후부터는 안 하게 됐어요. 집이 좁다 보니 한 라인에 열 사람 정도 모이기가 점점 힘들어졌지.
지금은 마을에 회의 같은 걸 하면 복지관을 많이 이용해요.



Q9. 여기 사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게 있으세요?

 

여기 사는 분들이 연세도 많고 정부 지원을 받는 분들이 많아요. 올해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어요.
내가 지금 통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동네 주민들하고 항상 어울려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가슴 아픈 일도 많아요.
혼자 사는 50대 정도 되는 이웃은 아픈데 돌봐 줄 사람 하나 없을 때 들여다보고, 마지막 순간에는 병원도 데려갔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같이 하다 보니까 그 일이 그렇게 기억에 남고 가슴이 아파요.



Q10. 통장 일 하시니까 주민분들 돌보는 역할까지 하신 거네요.

지금은 그래도 활동 도우미들이 많이 와요. 옛날에는 우리가 다 케어를 했거든. 통장이나 부녀회 이런 데서 말입니다.



Q11. 마지막으로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해주세요?

동네 일 (부녀회, 통장)을 하다 보니 나도 많이 바뀌었어요. 살다 보니까. 그래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초라한 모습을 안 보이려고 애쓰다 보니 이렇게 생각하기 나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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