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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
2022-04-30 11:47:39

 

 

“세계의 인재가 모인 유라시아 도시”

- 이라크, 바그다드


 

Mustansiriya Madrasah(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 - 고등 교육 시스템을 제공한 중세 시대의 학술 단지 

 

 

19세기 중반, 잇따른 서양 배에 출몰로 조선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닷길을 더 굳게 걸어 잠그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펼친다. 옆 나라 ‘청’이 영국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치르며 패배한 사건도 통상수교 거부정책 정책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160년이 흐른 지금, 바닷길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왔던 미국과 프랑스는 세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조선은 결국 외국에 문을 열고 일본 식민지 시절을 거쳐 1945년 대한민국으로 독립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기술과 사상은 서양으로부터 들어왔고 동양은 서양 그늘에 가려진 지 오래이며, 세계사는 여전히 서양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서양이 본격적으로 세계사의 중심으로 떠오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5세기에 이르러 포르투갈이 인도 신항로를 개척하기 전,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는 이미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지금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있다. 

 

 

빛나는 이슬람의 도시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3개의 대륙에 걸쳐 있는 광활한 이슬람 제국의 가운데에 바그다드가 있었다. 820년대에 이미 전 세계와 무역으로 교류했던 바그다드는 멀리 중국 광저우까지 진출했다. 그곳에는 제국 각지의 무슬림뿐만 아니라 소규모 집단의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이 머물렀다. 700년대 중반,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아바스 왕조 출신 ‘알 만수르’는 신하들과 함께 계획도시 바그다드를 건설한다. 당시 바그다드에 왔던 당나라 작가는 “그곳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산물을 구할 수 있다. 온갖 것이 팔리고 모든 것이 값싼 이 시장에서 수레들은 수많은 물건을 나른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번창했다. 현대 역사학자 프레데릭 스타(S. Frederick Starr)는 바그다드에 관해 이렇게 평가한다. “로마나 그리스, 아라비아의 도시들에 초점을 맞춘 현대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너무 오랫동안 배제되고 무시되었지만, 중앙아시아에는 가장 세련된 도시 문화 중 하나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도시들 몇 개가 있었다.”

 

 

읽고 쓰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아라비안나이트’라고 부르는 〈천일야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가 바로 바그다드이다. 〈천일야화〉에는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당시 바그다드는 세계 무역 중심지였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건 물산과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식도 있었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제지술의 발전으로, 각종 문서 자료들이 널리 유통되었다.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 근처 바다에서 발견된 7세기경 바그다드-광저우를 잇는 ‘벨루통 난파선’에는 잉크병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의 바그다드 지역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9세기 중반에 이르러 수많은 문서와 책을 간직한 대규모 왕립 기록보관소 지혜의 집(Bait al-hikma)이 문을 열어 찬란한 바그다드의 시대를 이끈다.

 

 

쏟아지는 지식과 몰려드는 학자

 

전 세계로 이어진 무역만큼이나 여러 지역에서 온 인재들이 모여 학문의 장을 열었다. 당시 서쪽에서는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로마의 학자들이 동쪽에서는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이 바그다드로 몰려들었다. 세계 3대 과학 혁명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시기로 따졌을 때 알렉산드리아와 런던 사이에 있는 바그다드는 수많은 분야의 지식인들의 학문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 학자들은 광학, 의학, 화학, 공학, 물리학, 건축학 등의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쌓았다. 학자 알 콰리즈미(Muḥammad ibn Mūsā al-Khwārizmī)는 수학, 기하학, 과학, 점성학 등을 공부하며 특히 수학 영역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룩했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아라비아 숫자에 의한 사칙연산이 그의 성과이다. 알 콰리즈미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한 방대한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수집하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