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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페이지 내용 : 192 대외의존을 막고 전 국민이 외국자본의 채무노예, 임금노예로 전락되어가는 현실을 광정 匡正 하는 것이 총화와 안보를 위한 또 하나의 선결조건이다. 또한 저곡가, 저임금정책을 떨쳐버리고 특권경제를 폐지하여야 하며 서민들의 조세부담을 대폭 경감하고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며 노동운동, 농어민운동 등을 인정, 민중의 생존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아울러 도시 빈민, 판자촌 주민의 생존권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8. 외세에 의해 갈라진 조국을 재통일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존엄과 화해의 정신에 입각한 자주 외교를 펴야 한다. 이는 오늘날의 세기사 世紀史 가 동서간의 긴장완화와 모든 민족이 자주적 이익을 주장하는 시대로 향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지상과제다. 국민상호간의 우의와 신뢰에 기초하지 아니 한 관변을 통한 구걸외교, 기생외교로 민족적 긍지를 추락시키며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의 모순과 대립이 동서의 대결에서 남북의 대결로 옮아가고 있어 반 식민, 평화공존, 비동맹, 피압박 민족의 단결인 제3세계 운동이 하나의 대 조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 신‧구교회가 제3세계 사목운동을 전개하고 있음도 이에 연유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제3세계에서 버림받고 있음은 본질적으로 밖으로는 냉전시대의 유물인 강대국 일변도 외교를 청산하지 못하고 안으로는 독자적 억압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9.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방지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은 우리의 모든 것을 파괴할 최대의 재앙인 까닭에 우리는 이의 방지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전 상태와 휴전협정의 불안정한 지속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와 민족의 재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남북대화를 진전시켜야 된다. 평화에서 패배하면 우리는 모든 것에서 패배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서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정신만이 현재의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첩경이며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 자주와 자립의 길을 찾는 정도이며 실추된 민족적 긍지와 자부를 되찾는 길임을 거듭 확인하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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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페이지 내용 : 193 교황님! 이것은 호젓한 감방입니다. 그러나 저는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조작된 죄목으로 갇혀 있고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된 이곳이지만 저는 하느님과 일치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앙과 사명감에서 조용히 이 고통을 감수하며 기도드립니다. 저는 더욱 침묵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성교회의 기도에 합하여 전 인류를 위하여, 정의와 평화구현을 위하여, 특히 우리 조국을 위하여 조용히 무릎 꿇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교황님, 그동안 저와 원주교구 모든 교우들에게 베풀어주신 온갖 자부적인 사랑과 배려에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구속된 이유, 즉 죄목이란 내란 선동과 긴급조치 위반입니다. 그러나 내란 선동이라는 것은 사실무근의 것임을 밝혀 드립니다. 저는 다만 억압받고 짓눌려 있고 민주국가에서 보장받아야 할 인간의 기본권마저 빼앗기고도 말 못하는 국민의 권리를 되찾아야 하겠다는 신념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인권의 침해는 곧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기에 신앙 안에서 인권의 침해로 상처받고 신음하고 죽어 가는 벗을 위하여 오늘 이 땅에서 또 다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필요하였습니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저는 다만 그리스도의 정의와 진리를 증거 하였습니다. 이미 제 신변의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지난 7월 6일 귀국하여 연행된 후 원주교구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작된 죄목에 응하지 않고 또 인위적인 타협에도 현혹되지 않고 양심의 소리를 외쳤습니다. 저에게 씌워진 또 다른 죄목은 긴급조치 위반이었습니다. 그러나 긴급조치법은 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이 결여된 사항으로서 양심의 표현마저 억압한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인간의 기본권인 양심마저 짓누르고 양심의 굴복을 강요하는 처사로서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존엄성, 인간회복, 민주회복을 위하여 ‘양심선언’을 선포하였습니다. 교황님, 저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교회의 주교로서, 하느님과 교회와 국가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입니다. 저는 인간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했습니다. 억울하게 갇혀 있는 많은 정의의 투사들, 목사, 교수, 학생, 변호사, 언론인들과 함께 이곳에 있으면서 저는 가장 미소한 형제들의 벗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누가 우리를 대항하리오.”하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봅니다. 끝으로 첨부하고 싶은 것은 저의 양심과 어긋나는 표현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강압이지 결코 본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황님의 영육 간에 건강을 기원하며 저와 원주교구 모든 교우들에게 교황님의 강복을 청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 성하에게 보낸 옥중 서한 1974년 9월 서울 구치소에서 지학순 주교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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