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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인물

원주소개 > 원주둘러보기 > 원주의 인물 > 향토인물 상세보기 - 성명, 활동연도, 인물소개, 파일 제공
원충갑
활동연도 1250~1321
고려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원주사람으로 체구는 작으나 정력이 넘쳐 날쌔었고 눈동자가 번개처럼 빛났으며,
위험한 지경에 있으면서도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았다. 향공진사(鄕貢進士)로 원주별초(原州別抄)에 있으면서 1291년(충렬왕 17)
합단적(哈丹賊)이 치악성(雉岳城)을 포위하자, 전후 10차에 걸쳐 적을 크게 무찔렀다. 이때 결사대 중산(仲山), 방호별감(防護別監)
복규(卜奎), 흥원창판관(興元倉判官) 조신(曺愼), 별장(別將) 강백송(康栢松), 원주(原州) 아전(衙前) 원현(元玄) 등 다수의 사람과
힘을 합쳐 물리쳤다. 이로부터 합단적은 예봉(銳鋒)이 꺾이어 감히 공격도 노략질도 하지 못하였고 여러 고을에서도 굳게 방어하게
되어 비로소 합단적을 경시하는 마음이 생겼으니, 이는 모두 원충갑에게서 얻은 힘이었다. 원충갑의 이러한 공로로 원주는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다시 1308년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되었고, 원주에 부과되던 각종 부역(賦役)과 잡공(雜貢)이 3년 동안 면제되었다. 원충갑 또한 여섯 번 전임(轉任)하여 삼사(三司) 우윤(右尹)에 올랐다. 충선왕(忠宣王) 때 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이 되었고,
합단적을 물리친 공으로 1319년(충숙왕 6) 추성분용정란광국공신(推誠奮勇定亂匡國功臣)이 되었다.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다. 치악산 영원산성 안에 원충갑사(元 甲祠)가 세워져 제사를 모시다가 1669년(현종 10) 사당을 세워
원충갑을 주향(主享)하고 김제갑(金悌甲)과 원호(元豪)를 배향(配享)하였고, 1670년(현종 11) 윤2월 7일 충렬사(忠烈祠)로 사액
(賜額)되었다. 충렬사는 1871년 철거되어 사액 현판은 괴산 충민사로 옮겨졌다. 묘소는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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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