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공연정보

? Programnote

시벨리우스 / 교향시 ‘전설’ 작품9

핀란드 국민악파 음악의 창설자인 그는 위대한 교향곡의 작곡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모국의 민족 음악의 특징을 살려 독특한 멜로디와 리듬을 마련해 낸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의 작품은 교향곡 클레르보, 관현악곡 옛 사가(전설)가 있고, 투오넬라의 백조, 레민카이넨의 귀향, 불의 기원, 칼레발라 등이 있다. 교향곡 제1번, 제2번, 모음곡 카렐리아, 핀란디아 등의 작품은 러시아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1904년 봄에 헬싱키로부터 20마일 떨어진 아르벤파우라는 호반에 집을 지어 그 곳에서 많은 작품을 썼다. 당시 그의 기법은 주로 베토벤과 그 밖의 고전 작가에 가까운 감이 있다. 형식미에 세련된 구성, 아이디어의 유기적인 발전 등은 가장 중요한 성격으로 되어 있어 내성적인 표현이 점차 강해졌다. 이 같은 독일 낭만파 후기의 영향을 받았는데, 북쪽 나라 고유한 어두운 하모니에 그의 조국의 특징 있는 리듬을 사용하여 향토적인 개성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는 표제음악과 교향곡 등을 많이 작곡하였는데, 그의 7개의 교향곡, 교향시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등은 대표적이다.

그의 음악에 넘치는 본질적인 비애와 우수는 북극의 자연 환경과 피정복국으로서의 괴로움을 참고 나가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시벨리우스야말로 진정한 국민적인 특색을 가진 작곡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살아있는 현장, 라흐티, 그가 사랑했던 고향 하멘린나,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반세기 이상을 살았던 예르벤페, 그리고 그의 음악적 영감 '칼레발라'의 근원지 카렐리아를 찾아 그가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핀란드의 자연과 신화, 그리고 민족적 정서를 강하게 보여준다.

 

슈만 / 피아노협주곡 가단조 작품54

이 작품은 처음에 따로따로 만들었지만, 나중에 합쳐서 한 개의 협주곡으로 완성한 것으로, 1845년 겨울 드레스덴의 음악회에서 부인 클라라에 의해 연주되었다. 공개적으로 초연된 것은 1847년 1월인데, 그 때는 슈만이 관현악을 지휘하고 부인이 피아노를 쳤다. 아름다운 음의 대조, 심각한 인상을 주는 음량과 음색, 피아노와 관현악의 정확한 균형이 있어서 듣는 이에게 큰 감명을 느끼게 한다.

 

닐센 / 교향곡 제2번 ‘네가지 기질’ 작품16

칼 닐센은 덴마크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코펜하겐음악원의 가데에게서 작곡법을 배우고, 작곡가, 지휘자로서 활약했다. 작곡을 할 때 다조성을 쓰는 등 혁신적인 수법을 썼다. 대표작은 여섯 개의 교향곡으로 된 코믹 오페라 마스케라드, 다윗과 사울 등이 있다.

'F조의 사중주'로 작곡가로서 첫 데뷔, '현을 위한 모음곡'으로 덴마크 음악계에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꾸준히 작곡을 이어나가 교향곡 제1번을 완성하여 확실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완성하고 있었다. 이어 1902년에는 교향곡 제2번과 오페라 '사울과 다윗'을 직접 초연하였고, 다음 해에는 코펜하겐 왕립극장의 차석 지휘자를 맡으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교향곡 제2번은 인간의 4가지 기질(분노, 게으름, 우울, 낙천적)에 대한 사상에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분노한 사람도 가끔은 수그러들 때가 있고, 우울한 사람도 가끔은 분노하거나 들뜰 때도 있다. 낙천적인 사람도 가끔은 수심에 찰 수도 있다. 그러나 게으르고 무감각한 사람은 웬만하면 그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allegro flemmatico(게으름)는 악장의 길이도 짧고 시종일관 특색이 변하지 않게 작곡되었다.

 

 

 

 

? 협연자 박종화 프로필

 

“호쾌한 타건, 변화무쌍한 음색-음형의 조형력, 청중을 사로잡는 스타일리스틱한 기교”- 조선일보

“불멸의 거장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를 능가..-보스턴 글로브

“천둥같이 나타난 한국의 젊은 천재”-스페인 ABC 지

 

4세에 처음 피아노를 시작한 박종화는 어린 시절 일본 도쿄 음악대학 영재학교와 서울 선화 예술중학교, 미국 뉴 잉글랜드 음악원 예비학교에서 공부하며 일찌감치 탁월한 음악성을 드러내었다.

5세에 동경음대 영재학교에서 미우라 카츠코, 이구치 아이코를 사사한 후 1992년 전액 장학생의 자격으로 뉴 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인 러셀 셔먼 문하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그는, 이후 유럽의 주요한 음악원의 초청을 받아 학업을 이어나가게 된다. 1998년 이탈리아의 휴양도시 코모에서 개최되는 저명한 마스터 클래스 “Il Fondazione per Il Pianoforte” 에 참가하여 카를 울리히 슈나벨, 드미트리 바슈키로프, 푸총, 레온 플라이셔, 알리시아 데 라로차,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같은 시대적 명장들을 사사하고 교류했다. 또한 1999년 드미트리 바슈키로프 교수를 따라 마드리드의 소피아 왕립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으며, 2003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엘리소 비르살라제 교수 문하에서 뮌헨 음대의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동안 박종화의 연주 경력은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하였다.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뮌헨의 헤르큘레스 홀, 마드리드 국립 콘서트 홀, 벨기에의 팔레 드 보 등 세계 유명 공연장을 무대로 연주하였으며, 이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 뉴햄프셔 심포니, 드레스덴 심포니, 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 벨기에 플레미쉬 국립 오케스트라, 북네덜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요 페스티벌의 아티스트로 초청받아 연주하였다. 유럽 평단으로부터 “번개처럼 나타난 한국의 젊은 천재”라는 찬사가 저명한 언론에 실렸고, 때로는 “리히터의 연주를 능가한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그의 탁월한 연주 능력은 세계적인 콩쿠르의 입상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12세 때 일본 마이니치 음악 콩쿨에서 1위 수상을 비롯하여, 2003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쿨 입상 및 부조니 상 수상, 1995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피아노 콩쿨 최연소 입상(5위) 및 최우수 연주자 상을 받았으며, 특히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는 표트르 안드리센이 수여하는 비평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98년 텔아비브에서 개최되는 루빈슈타인 콩쿨 특별상, 스페인 산타데르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는 특별상과 청중상을 동시에 받았고, 이 밖에도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개최되는 여러 국내 콩쿨에서 다수 우승 또는 입상하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박종화는 그의 음악적인 다양한 경험과 커리어를 연주와 교육에 함께 헌신하고자 2007년, 그의 나이 33세 때 서울대학교 음대교수로 부임하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국제 행사와 강연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2010년 서울대학교에서 개최한 “Chopin-Cometh” 국제 페스티벌을 맡아 음악회와 워크샵 등을 기획하였다. 2주간 펼쳐진 이 페스티벌에서는 세계적인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캠브리지 대학의 존 링크 교수를 비롯, 폴란드의 표트르 팔레치니 교수, 독인의 사첸 교수들이 참여하여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2년 11월 첫 국내 앨범 를 SONY Classics를 통해 발표하며 전국 5개 도시 투어 리사이틀과 함께 본격적인 국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참여하여 화제가 된 연극 <노베첸토>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동시에, 솔로이스트로서 독주 및 협연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또한 도시 재생 예술 프로젝트 <달려라 피아노>와 ‘BACH in the Subways’의 예술감독으로 참여하여 음악예술의 사회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2015년에는 ‘엄마야 누나야’, ‘섬집 아기’ 등 친숙한 동요를 피아노곡으로 재해석한 음반 ‘NUNAYA’가 유니버셜을 통해 발매되었고 서울 및 전국투어 연주를 성황리에 마쳤다.

제4유형
원주시립예술단이 제공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