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공연정보

원주시립교향악단 제144회 정기연주회

 

‘정치용과 원주시립교향악단’

2021년 3월 25일(목) 오후 7:30

치악예술관

 

                                        

지휘 : 정치용

협연 : 김민지(첼로)

                                      

PROGRAM

슈만 - 만프레드 서곡 op.115

R. Schumann - Manfred Overture, op.115

 

슈만 - 첼로 협주곡 a단조 op.129

R. Schumann - Cello Concerto in a minor, op.129  

 

슈만 - 교향곡 제2번 C장조 op.61

R. Schumann - Symphony No.2 in C Major, op.61 

 

 

 

Programnote

슈만 / 만프레드 서곡 op.115

〈만프레드〉는 고뇌하는 낭만적 인간상을 그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의 시 《만프레드》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바이런이 그려내는 낭만적인 방랑자 만프레드는 가슴 깊이 품은 번민으로 인해 여러 곳을 방랑하던 끝에 마침내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과거에 자신이 버리고 떠났던 연인 아스탈테의 영혼을 만난 만프레드는 그녀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비로소 오랜 고뇌로부터 구원받는다.

이처럼 전형적인 낭만적 인간상을 음악으로 담아낸 ‘만프레드’ 서곡은 표제적인 특징을 가지기보다는, 슈만 자신이 바이런의 시가 그린 만프레드에게서 느낀 인상을 그려내고 있다. 슈만은 이 곡을 작곡하던 당시 자신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뇌했다고 토로한다. 음악학자 피터 오스왈드(Peter Ostwald)도 ‘슈만이 내면의 목소리 혹은 환청에 고통스럽게 직면하여 쓴 것이라고 평했다.

 

슈만 / 첼로 협주곡 a단조 op.129

슈만은 1850년 그의 나이 마흔 살에 뒤셀도르프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어 음악가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한 해 전이었던 1849년 슈만은 심각한 정신적, 예술적 위기를 겪었던 차였다. 1844년 슈만은 자신이 편집장과 비평가로 활동하던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도 팔고, 클라라와 두 자녀들과 함께 라이프치히의 생활을 접고 드레스덴으로 옮겨 삶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드레스덴은 슈만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도시였다. 이곳의 음악계는 라이프치히만큼 활발하지 못했고, 궁정오페라의 지휘자였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라이벌이 되어야만 했다. 때마침 뒤셀도르프에서 명망 있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활동 중이던 페르디난트 힐러(Ferdinand Hiller)가 자신의 직위를 그만두고 슈만을 후임자로 두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렇게 시작된 뒤셀도르프에서의 삶의 문을 여는 1850년, 슈만은 에너지로 넘쳤고 뒤셀도르프에서의 새로운 예술 활동에 고무되어있었다. 부임한 지 3달 만에, 그는 〈교향곡 3번 ‘라인’〉과 〈첼로 협주곡〉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향곡 3번〉이 뒤셀도르프와 그 밖의 지역에서 여러 번 연주되면서 찬사를 받는 동안, 〈첼로 협주곡〉은 슈만이 살아있는 동안 연주될 기회가 없었다. 슈만이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이든 이후로 어떤 주요 작곡가도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쓰지 않았고, 칼 마리아 폰 베버만이 몇몇 가벼운 작품을 쓴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첼로 협주곡을 남긴 작곡가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첼리스트인 경향이 있었다. 물론 슈만 역시 첼리스트는 아니었지만, 사실 한동안 첼로를 연주했었다. 오른손 부상으로 피아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는 첼로를 집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슈만이 얼마나 첼로라는 악기를 마스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이 악기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기 한 해 전에도 그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을 작곡했었다. 슈만의 〈첼로 협주곡〉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지만 중단 없이 이어서 연주된다. 악장 간의 연결은 브리지 패시지들로 강조되고, 이는 전체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악장 간에 나타나는 모티브들의 유사성은 전체 작품을 하나의 통합체로 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1악장을 시작하는 첫 세 개의 화음은 1악장과 2악장을 연결하는 경과구에서 다시 등장하고, 최종적으로는 마지막 악장의 주제를 예비하는 선율로 등장하기도 한다. 1악장에 등장하는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는 전체의 애수에 찬 ‘A단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전체의 유일한 카덴차는 마지막 악장의 끝부분에서야 등장한다. 특이하게도 이 카덴차는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배경으로 연주된다.

 

슈만 / 교향곡 제2번 C장조 op.61

슈만을 평생 괴롭혔던 우울증은 1843년부터 다시 재발하기 시작했다. 클라라와의 사랑과 결혼으로 호전되었던 우울증이 재발한 것에는 슈만 자신의 열등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지 못했던 슈만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펼치면서 가계를 이끌어가는 클라라에게 열등감과 죄책감을 함께 느꼈다. 또한 1844년 클라라의 러시아 연주여행에 동행하면서 건강까지 악화되어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힘겨운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특히 같은 해 게반트하우스의 지휘자에 지원했다가 실패한 경험은 그를 깊은 좌절로 밀어 넣었다. 이러한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드레스덴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작곡에 매진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심기일전하여 야심차게 착수한 것이 바로 이 〈교향곡 2번〉으로, 좌절을 딛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영웅적인 분투를 담고 있다. 슈만의 다른 세 편의 교향곡과는 달리 고통과 좌절 속에서 작곡된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이 보여주는 영웅적인 서사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클라라와 함께 바흐의 작품들을 연구했던 과정들이 도움이 되어, 정교하고 깊이 있는 대위법을 보여준다.

 

 

 

 

 

 

지휘자 프로필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자 정치용은 뛰어난 바톤 테크닉과 곡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통찰력 있고 깊이 있는 지휘로 단원들을 이끌어가는 품격 높은 음악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서울음악대학 작곡과를 거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 거장 미햐엘 길렌을 사사했다. 오스트리아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주목받은 그는 잘츠부르크 국제여름음악제 부지휘자를 거쳐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 뮌헨 심포니, 미시간 스테이트 심포니, 프라하 방송교향악단, 러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객원지휘하며 경력을 쌓았고, 귀국 후 창원시립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등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최근까지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관현악, 발레 등 음악 전반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정치용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작품의 국내 초연을 가장 많이 한 지휘자로도 유명하다. 오페라 지휘에도 탁월한 능력을 선보여 ‘호프만의 이야기’, ‘코지 판 투테’,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라보엠’, ‘카르멘’,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을 지휘했고, ‘행주치마 전사들(임긍수 작곡)’, ‘백범 김구와 상해 임시정부(이동훈 작곡)’, ‘메밀꽃 필 무렵(김현옥 작곡)’, ‘천생연분(임준희 작곡)’ 등을 초연했다. 특히 2007년에 국립오페라단에서 특별 기획한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를 국내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제5회 김수근 문화상 공연예술상, 제3회 문화관광부 선정 젊은 예술가상, 제3회 뮤지컬 대상 음악상, 한국음악상 본상 및 제28회 음악평론가협회 제정 서울 음악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정치용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지휘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 협연자 프로필

첼리스트 김민지는 2003년 미국 아스트랄 아티스트 내셔널 오디션에서 우승하면서 미국 무대에 데뷔하였다. 만 16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 2000년 졸업과 동시에 도미하여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석사, 전문 연주자 과정 및 최고 연주자 과정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하였으며, 2005년 프랭크 헌팅턴 비비 장학금 수여자로 선정되어 프랑스 툴루즈 콘서바토리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하였다. 

국내에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콩쿠르에서 모두 1위로 입상하였고 난파콩쿠르, KBS 신인음악콩쿠르에서는 대상을 차지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엠마누엘 포이어만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전세계적으로 오직 12명만이 초청된 참가자 중 한국인 최초로 장학금을 수여 받았고, 프리미오 아르투로 보누치 국제 첼로 콩쿠르 2위, 아담 국제 첼로 콩쿠르 3위, 허드슨 밸리 현악 콩쿠르,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 현악 콩쿠르, HAMS 국제 첼로 콩쿠르 등에서 모두 1위에 입상하고 우승자 특전으로 음반을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어빙 클라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는 1위 입상과 함께 위촉작품 특별상을 거머쥐었다. 

필라델피아 킴머, 트리니티 센터, 보스턴의 조단 홀, 가드너 박물관 등 여러 곳에서 독주 및 협연 무대를 가졌으며, 시카고 마이러 헤스 콘서트 시리즈, WMFT 시카고 라디오에 라이브 리사이틀이 방송되었다. 해든필드 심포니, 허드슨 밸리 심포니, 마린 심포니, 산타 크루스 심포니, 산타 로사 심포니, KBS 교항악단, 서울시향, 수원시향, 원주시향, 인천시향, 청주시향, 군산시향, 충남도립교향악단, 대구MBC 교향악단,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국내 외 주요 오케스트라에 초청되어 솔리스트로서의 빈틈없는 행보를 거듭하였으며 예술의전당이 주최한 베토벤 전곡 시리즈에 발탁되어 김대진이 이끄는 수원시향과의 협연 하였으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한동일과 베토벤-브람스 전곡시리즈, 차세대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김태형과의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완주하고 러시아의 떠오르는 별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리사이틀을 성황리에 개최하는 등의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는 한편, 교향악축제에 초청되어 청주시향과 협연하며 솔리스트로서의 입지를 재확인 시켜주었다.

김민지는 로린마젤이 이끄는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오케스트라의 부수석(아시아 최초) 및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을 역임 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금호 아시아나 솔로이스츠, 첼리스타 첼로 앙상블, 오푸스 앙상블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제4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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