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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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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

화전이 가능한 지리적 위치상 밭작물이 중요했던 1통에서는 삼짇날(음력 3월 3일)과 중앙절(음력 9월 9일)에 마을 제사를 지냈으며, 유만의 경우에는 벼 수확이 끝나는 음력 10월에 마을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서리실의 경우에는 삼짇날과 중앙절에 제를 지내다가 언제부턴가 음력 10월에 제를 지냈는데, 아마도 생업활동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반곡동 마을제사 특징 중 하나는 제를 지내는 날짜이다.

또한 반곡동 마을제사는 대동계조직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잇다. 반곡동의 마을제사를 치루는 비용은 각출하는 것이 아니라 봉대, 유만, 서리실 모두 대동계 자금으로 치렀다고 한다. 그리고 유만의 경우 마을제사가 긑나고 음복할 때 대동계의 모임이 이루어졌으며, 서리실의 김영환씨는 마을제사가 곧 대동계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당고사

봉대마을

봉대에서는 마을제사를 당치성, 당제사라고 하는데, 일 년에 두 번, 매해 음력 3월 3일, 9월 9일에 지낸다.
제를 지내기 삼일 전에 궃은일을 안보고 깨끗하고 부정 없는 사람을 택해서 도가로 정한다. 도가가 되면 개와 닭은 먹을 수 없었고, 축관은 따로 뽑지 않고 도가가 축을 읽는 일도 맡아서 하였다. 도가집으로 선정 되면, 3일 동안 부정한 사람 들어오지 말라고 왼새끼를 꼬고 하얀 종이를 몇 개 달아서 대문에 금줄을 쳤다. 도가집 문 앞에 황토를 깔지는 않았다. 그리고 도가는 비(빗자루)를 가지고 가서 당을 청소하고 새끼에 종이를 달아서 당집에도 금줄을 둘렀다.

유만마을

양력 10월~11월 사이에 지내며, 제를 지내는 날짜는 철학관이나 지관 혹은 식견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당고사를 주관하는 유사는 깨끗한 사람 중에 상주는 안되고 부인이 달거리를 하지 않는 나이든 분들 중에서 뽑았다. 당집에는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금줄을 둘렀고, 당고사날을 받으면 당집이 갯가에 있어서 당 위에서는 빨래를 못하게 금하였다.
제물은 한해는 돼지머리, 한 해는 소머리를 올리는데, 돼지로 올리는 해는 마을에서 잡기도 하였다. 당제는 11~12시 사시에 지내는데, 제관이 축문과 소지를 함께 올렸다. 축문의 형식은 따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서술형으로 마을의 안녕을 바란다는 식으로 하였다.
당제를 지내고 떡과 돼지고기를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고, 당제를 지낸 다음날에는 음복과 함께 대동회를 가졌다.

서리실마을

당제는 밤 12시에 횃불을 밝히고 지게를 짊어지고 올라가서 지냈으며, 제물은 돼지고기, 동북어 두 마리, 사과, 밤, 대추를 올렸다.
서리실에서 당제를 지낼 당시 제사를 주관하는 '지주(제관)' 는 생기복덕을 가려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선정하였고 제관이 되면 상이 나거나 부인이 월경 중인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마을제사는 대동계 자금으로 지냈는데, 대동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쌀 한 말이나 떡 한 말 혹은 술 한 통 등의 신입료를 내고 들어와서 '합장(같은 동네 사람이 된다는 뜻)' 을 해야 했다고 한다.

우물치성

봉대마을

마을에는 주민 모두 함께 쓰는 대동우물이 있다.
해마다 한 번 여름에 날을잡아 우물을 청소하고 난 뒤, 밥을 지어 우물에 가져다 놓았다. 우물청소는 마을주민들(우물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하지만, 치성은 마을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방묘(뱅이둑)마을 우물청소는 봄에 한 번(음력 3~4월), 가을에 한 번(음력 8월) 날을 잡아 방묘 주민들끼리 했다. 우물청소에는 가구당 한 명씩 남자가 출역하였고, 청소를 하고 나서 깨끗한 한 집에서만 밥과 술을 준비해서 우물 앞에 가져다 놓고 치성을 드렸다.
이렇게 치성 드리는 것은 방묘 주민들끼리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했고, 우물에 밥과 술을 올려 제를 드리고 난 뒤, 물을 떠가라고 해야 우물을 쓸 수 있었다.

유만마을

유만 우물은 웃담, 아랫담에 한 개씩 두 개가 있었다.
우물청소는 날을 정하지 않고 아무 때나 했다고도 하였고, 한 달에 한 번씩 청소를 했다고도 하였다. 청소는 남녀 상관없이 모두 함께 하였다. 마을차원이나 개인적으로나 우물에서 치성 드리는 것은 없었지만, 심재선씨는 청소한 날 우물 앞에 밥 한그릇씩 떠 놓았다고 하였다.

서리실마을

공동우물을 사용할 때는 일 년에 두 번씩 청소를 했다.
서리실 마을에서는 청소를 하고 나서 우물 뚜껑을 덮어놓고 가까운데 사는 사람이 술한잔을 가져다 놓은 뒤에야, 뚜껑을 열어서 물을 마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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