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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바그다드

    04-30

      “세계의 인재가 모인 유라시아 도시”- 이라크, 바그다드 Mustansiriya Madrasah(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 - 고등 교육 시스템을 제공한 중세 시대의 학술 단지   19세기 중반, 잇따른 서양 배에 출몰로 조선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닷길을 더 굳게 걸어 잠그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펼친다. 옆 나라 ‘청’이 영국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치르며 패배한 사건도 통상수교 거부정책 정책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160년이 흐른 지금, 바닷길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왔던 미국과 프랑스는 세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조선은 결국 외국에 문을 열고 일본 식민지 시절을 거쳐 1945년 대한민국으로 독립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대부분의 기술과 사상은 서양으로부터 들어왔고 동양은 서양 그늘에 가려진 지 오래이며, 세계사는 여전히 서양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서양이 본격적으로 세계사의 중심으로 떠오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5세기에 이르러 포르투갈이 인도 신항로를 개척하기 전,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는 이미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지금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있다.   빛나는 이슬람의 도시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3개의 대륙에 걸쳐 있는 광활한 이슬람 제국의 가운데에 바그다드가 있었다. 820년대에 이미 전 세계와 무역으로 교류했던 바그다드는 멀리 중국 광저우까지 진출했다. 그곳에는 제국 각지의 무슬림뿐만 아니라 소규모 집단의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이 머물렀다. 700년대 중반,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아바스 왕조 출신 ‘알 만수르’는 신하들과 함께 계획도시 바그다드를 건설한다. 당시 바그다드에 왔던 당나라 작가는 “그곳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산물을 구할 수 있다. 온갖 것이 팔리고 모든 것이 값싼 이 시장에서 수레들은 수많은 물건을 나른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번창했다. 현대 역사학자 프레데릭 스타(S. Frederick Starr)는 바그다드에 관해 이렇게 평가한다. “로마나 그리스, 아라비아의 도시들에 초점을 맞춘 현대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너무 오랫동안 배제되고 무시되었지만, 중앙아시아에는 가장 세련된 도시 문화 중 하나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도시들 몇 개가 있었다.”  읽고 쓰는 사람들 우리가 흔히 ‘아라비안나이트’라고 부르는 〈천일야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가 바로 바그다드이다. 〈천일야화〉에는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당시 바그다드는 세계 무역 중심지였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건 물산과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식도 있었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제지술의 발전으로, 각종 문서 자료들이 널리 유통되었다.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 근처 바다에서 발견된 7세기경 바그다드-광저우를 잇는 ‘벨루통 난파선’에는 잉크병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의 바그다드 지역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9세기 중반에 이르러 수많은 문서와 책을 간직한 대규모 왕립 기록보관소 지혜의 집(Bait al-hikma)이 문을 열어 찬란한 바그다드의 시대를 이끈다.  쏟아지는 지식과 몰려드는 학자 전 세계로 이어진 무역만큼이나 여러 지역에서 온 인재들이 모여 학문의 장을 열었다. 당시 서쪽에서는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로마의 학자들이 동쪽에서는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이 바그다드로 몰려들었다. 세계 3대 과학 혁명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로, 시기로 따졌을 때 알렉산드리아와 런던 사이에 있는 바그다드는 수많은 분야의 지식인들의 학문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 학자들은 광학, 의학, 화학, 공학, 물리학, 건축학 등의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쌓았다. 학자 알 콰리즈미(Muḥammad ibn Mūsā al-Khwārizmī)는 수학, 기하학, 과학, 점성학 등을 공부하며 특히 수학 영역에서 눈부신 업적을 이룩했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아라비아 숫자에 의한 사칙연산이 그의 성과이다. 알 콰리즈미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한 방대한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수집하고 정리했다.    &nbs..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10-29

    <문학창의도시> “작은 토끼 ‘미피’가 태어난 곳”-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42km 떨어진 곳에 위트레흐트(Utrecht)가 있다. 이곳은 12개 주 중에 하나인 위트레흐트 주(州)에 주도이다. 2021년 기준으로 약 35만 명이 살며 네덜란드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위트레흐트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여행한 곳이자 유럽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의 고향이다. 쫑긋한 두 귀, 동그란 얼굴 끝에 있는 코와 입을 합친 듯한 엑스 모양, 굵직한 검은 테두리와 단출하지만 선명한 색상을 가진 ‘미피’는 1955년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 작가인 딕 브루너(Dick Bruna 1927-2017)의 손에서 탄생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은 ‘작은 토끼’의 고향 미피(Miffy)를 주인공으로 그린 그림책은 전 세계로 50개 언어로 번역되어 8천 5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 첫 번째 책 제목은 “작은 토끼(nijntje, 1955)”였다. 이후 사과(the apple, 1953), “볼렌담의 토토(toto in volendam, 1955), “동물원에 미피(miffy at the zoo,1955), “작은 왕(the small king, 1957), 아이스크림(tijs, 1957) “자동차(the car, 1957)”를 줄줄이 펴냈다. 출판 초창기에는 직사각형 판형이었다가 1963년부터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16cm 정사각형 판형으로 바뀌었다. 미피의 원래 이름은 네덜란드어로 작은 토끼를 뜻하는 ‘nijntje(나인체)’였고 출판 초창기에는 각 나라에 언어에 맞춰 ‘작은 토끼’라 번역했으나, 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어디에서든 미피로 불린다.     오직 빨강, 파랑, 노랑, 초록으로그리는 미피 작가는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 시절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명 서점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이때 프랑스 여행을 하며 여러 예술가의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페르낭 레제(1881-1955)로부터 하얀 바탕에 검은 선을 그리고 면과 선을 분리하고, 앙리 마티스(1869-1954)로부터 단순한 형태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체득한다. 딕 브루너는 미피에 네덜란드 모더니즘(데 스틸)을 투영한다. 데 스틸 운동을 대표하는 건축가와 화가, 디자이너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특히 흰 바탕에 검은 격자를 그리고 격자 안에 빨강, 노랑, 파랑을 채운 몬드리안 방식을 미피에 적용한다. 지금도 미피와 관련한 모든 책, 상품 등에 적용하는 색상 기준을 머시스 재단(미피 상표권을 관리하는 재단)에서 엄격히 관리한다.    빨강, 파랑과 노랑의 구성 II(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피터 몬드리안 (1930) 어린이들을 위한미피 박물관  작가는 곧 일흔을 바라보는 미피 책에 적극적으로 변하는 시대를 담았다. *미피만의 방식으로 어린이에게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과 아픔, 고통과 양식의 가책, 장애와 죽음 등을 표현했다. 나이가 많거나 피부색이 다른 캐릭터를 등장시켜 다양성을 향한 메시지도 전했다. 사람들은 미피에 열광했고 마침내 2016년에 위트레흐트 중심가에 어린이들을 위한 ‘미피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딕 브루너는 박물관이 문을 열고 이듬해에 89세에 나이로 숨을 거둔다. 미피의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미피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네 가지 색으로 표현한 감정과 네 줄짜리 글을 전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책으로 뒤덮인문학 중심 도시  한편, 미피 말고도 위트레흐트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약 150년 전에, 위트레흐트 얀스케르크 7번지에 문을 연 비즈벨드(Bijleveld) 서점이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930년대에 위트레흐트를 여행하며 이곳에 들렀다. 작가는 “네덜란드어만큼이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책도 많고 책방도 정말 많다”라는 생각을 일기에 적었다. 비즈벨드는 서점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운영한다. 20세기 후반에 철학가 에리히 프롬, 시몬 보부아르 등이 쓴 책을 펴냈다. 이밖에도 위트레흐트는 수백 명의 작가와 시인들에게 영감이 되는 곳으로, 수많은 인문학 교수와 네덜란드 내 최대 규모의 출판사 본사가 있다.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문학 행사도 열린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시의 밤(DUTCH POETRY NIGHT)’ 축제가 있다. 8시간 동안  2,000명의 관객을 두고 시를 주제로 연극과 뮤지컬 활동을 펼친다. 2021년 현재 38회를 맞았다.   ─*<릿터> 25호, 2020 8/9월호 <그림책 속에 현대미술 – 점, 선, 면 속 아기 토끼 미피>, 이지원 ​      &nbs..

  • 영국, 노리치

    09-11

    문학창의도시 (6) “인쇄의 도시, 작가의 땅”- 영국, 노리치   노리치는 영국 동쪽 노퍽주에 있으며 중세 시대부터 산업혁명까지 영국의 중요한 도시였다. 중세 도시의 모습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어 인기 있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받는 노리치는 지난 2012년 유네스코 문학도시로 지정되었다.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사람들16세기 종교개혁으로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당시 영국의 제2의 도시였던 노리치로 이주한다. 이들은 영국 왕실에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직물 산업으로 노리치에 경제 부흥을 이끈다. 직물 산업뿐만 아니라 노리치에서 최초로 인쇄소를 운영한 네덜란드인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앤토니 드 솔렘프네(Anthonie de Solempne)로 네덜란드의 시와 신학, 노리치의 네덜란드 이민자들로 구성된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책들을 인쇄했다. 지금도 노리치에는 그의 인쇄업을 기리는 파란색 명판이 걸려있다.  노리치 출신, 유명 작가들네덜란드인으로부터 인쇄 기술이 들어오고 한참 시간이 흘러 노리치는 유명 작가 배출 양성소로 명성이 자자해진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주인공 ‘스티븐스’를 내세워 1930년대 영국 격동기를 그려낸 <남아 있는 나날>로 1989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1993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특히 가즈오 이시구로가 공부한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는 이언 매큐언, 앤 엔라이트, 트레이시 슈발리에 등 수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한편, 약 20만 명의 인구를 갖춘 노리치는 국립작가센터를 유치한다. 아프리카와 제3세계 문학의 세계진출을 위해 통 번역센터도 갖추며 문학창의도시의 명목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nbs..

  • 미국, 아이오와시티

    08-26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5)“옥수수 말고 책”- 미국, 아이오와시티미국은 지역마다 색이 뚜렷해서 동부, 중부, 서부 스타일이 있다. 뉴욕은 미국 동부 지역을 대표한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서부 지역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중부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바다 같은 미시간 호를 낀 시카고? 맞다. 시카고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고 싶은 도시는 이곳이 아니다. 시카고에서 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아이오와 주(State of Iowa)의 아이오와시티(Iowa city)이다. 지금 아이오와 주의 주도는 디모인(Des Moines)이지만, 아주 잠시 아이오와 주의 주도였던 적이 있다. 아이오와시티는 지난 2008년에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에 가입했다.   책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도시 아이오와 주의 전체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약간 큰 정도지만 전체 인구는 약 310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16 수준이다. 아이오와시티에는 7만 5천 명이 산다. 이 중 절반은 학생이다. 1847년에 설립한 아이오와 대학교(The University of Iowa)와 1966년에 설립한 커크우드 커뮤니티 대학(Kirkwood Community College) 등이 자리한 대학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 수준의 농업 생산량을 자랑하는 미국의 ‘곡창 지대’로 옥수수와 계란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담한 아이오와시티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너른 옥수수 밭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기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이처럼 연중 변화무쌍한 날씨와 한가로운 도심, 가까운 자연 환경은 아이오와시티에 사는 사람들을 책의 세계로 이끌었다. 퓰리처 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했으며, 오랜 전통에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he University of Iowa';s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 IWP)을 통해 세계 각국의 우수한 작가들과 교류한다.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IWP) 1897년 봄 학기에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첫 문예 창작 수업이 열렸다. 약 40년 후인 1936년에 시인과 소설가들이 모여 ‘작가 워크숍(Writer';s Workshop)’ 모임을 만든다. 모임의 주축은 당시 미국에서 주목받던 현직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로, 함께 어울리며 미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다. 이들 중 한 명이었던 폴 앵글(Paul Engle)은 1941년부터 1966년까지 ‘작가 워크숍’에 참여하며 대표직까지 맡다, 1967년 매년 전 세계에서 출판된 수십 명의 작가들이 아이오와 시를 방문하여 글을 쓰고 협업할 수 있는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IWP)을 공동 설립한다. IWP는 전 세계의 작가들을 아이오와시티로 불러들였다. 이곳에 모인 세계 각국의 작가들은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며 서로의 문학과 영감을 나눈다. 창립 이래로 지금까지 150개 이상의 국가에서 1,500명이 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한국 작가들은 1970년대부터 2020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약 40명 이상이 참여했다. 황지우, 김영하, 나희덕 작가도 IWP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매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열리는 IWP에서는 세미나, 워크숍, 낭독회 및 공연, 주간 토론회, 강연, 각종 창작 프로그램 등이 열린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참여 작가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문학 작품과 문화를 공유한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도 교류하며, 아이오와시티를 비롯해 미국 내 도시를 여행할 수도 있다. ​&nbs..

  • 아일랜드, 더블린

    08-01

    흑맥주와 문학의 나라, 아일랜드. 노벨 문학상 수상자만 네 명에 이르고 이들이 내놓은 수많은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4) ​“문학의 도시, 작가의 고향” 아일랜드, 더블린   흑맥주와 문학의 나라, 아일랜드. 노벨 문학상 수상자만 네 명에 이르고 이들이 내놓은 수많은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1804년 《걸리버 여행기》를 조나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897년에 《드라큘라》를 발표한 브램 스토커(Bram Stoker),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로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G.B.Shaw)도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리고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영미 문학으로 꼽힌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가 있다. 영미 문학의 거장 ‘제임스 조이스’더블린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단연 제임스 조이스이다. 1882년 더블린에서 태어난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20세기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라틴·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각 언어에 능통했고 37년간 망명인으로서 해외에 살며 아일랜드와 고향 더블린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집필하였다. 1907년 연애 시를 모은 시집 《실내악》을 발표하고 1914년에는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을 출간했다. 1918년에는 《율리시스》 일부를 미국 잡지에 발표하고 1922년 정식으로 간행했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의식의 흐름'; 기법과 독백의 사용, 신문·영화·극·음악·고전작품 등의 제목과 대사 등을 패러디하여 이전의 소설 형식을 뒤엎은 작품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오늘날 《율리시스》는 20세기 위대한 영미 문학으로 손꼽힌다. 더블린 시내 중심가에 작가를 기리는 ‘제임스 조이스 센터’가 있다.  더블린에서 만나는 《율리시스》《율리시스》는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이 1904년 6월 16일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더블린 거리를 돌아다니며 일어난 일을 담은 소설이다. 1954년에 책을 사랑하는 팬들은 소설 속 시간과 같은 6월 16일에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딴 블룸스데이(Blooms day)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날은 당시의 복장을 갖춘 가이드가 소설을 낭독하며 관람객을 이끌고 더블린 곳곳을 돌아다닌다. 주인공이 돼지 콩팥으로 만든 아침을 먹으며 “입천장에서 희미한 오줌 냄새가 풍긴다.”라고 묘사한 식사도 직접 맛볼 수 있다. “더블린 작가 박물관”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소개하는 ‘더블린 작가 박물관’도 있다. 노벨 문학상을 네 명이나 배출한 나라답게 수상 작가 외에도 다른 여러 작가들의 자료도 둘러볼 수 있다. 아일랜드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예이츠(W.B.Yeats), 《도리어 그레인의 초상》을 쓰고 독특한 패션과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기를 끌었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에 관한 희비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도 만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스며든 문학더블린 곳곳에는 이곳 출신의 작가들의 이름을 딴 다리가 있다. 더블린의 한강과도 같은 리피강(Liffey River)을 따라가면 ‘제임스 조이스 다리’ ‘숀 오케이시 다리’ ‘사무엘 베케트 다리’가 있다. 더블린 시내 광장과 거리에는 국립 도서관, 더블린 작가 박물관, 국립 인쇄 박물관, 트리니티 대학 등이 있다. 더블린 시의회는 권위 있는 ‘국제 더블린 문학상’을 후원한다. 1995년에 설립한 ‘더블린 문학상’은 전 세계 160여 개국 도서관에서 출품작을 뽑으며 세계 최고의 현대 소설가들이 수상했다. &nbs..

  • 호주, 멜버른

    08-01

    멜버른은 호주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이자 빅토리아의 주도이다. ‘남반구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호주 대표 도시이다.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3)“반짝반짝 빛나는” 호주, 멜버른(Melbourne) 멜버른은 호주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이자 빅토리아의 주도이다. 2019년 기준으로 약 500만 명 이상이 산다.19세기 중반에 시작된 금강 산업으로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남반구의 파리’라는 별명으로 호주의 문화예술을 이끄는 대표 도시이다. 2008년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에 가입했다.   남반구의 서유럽예나 지금이나 프랑스 파리는 문화와 예술의 대명사다. ‘남반구의 파리’라는 별명을 얻은 멜버른도 파리 못지않은 ‘핫플레이스’이다. 호주 오픈 테니스부터 F1 자동차 대회 등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가 열리고 호주의 작가, 독립 출판사, 서점의 중심지이다. 3,000여 개의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어 미식의 도시로도 널리 알려졌다. 도시가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오래된 건축물은 ‘남반구의 런던’이라는 또 다른 별칭을 선물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재임할 당시에 유행하던 빅토리아 양식이 그대로 멜버른으로 옮겨와 과거의 미래가 함께하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  호주의 첫 공공도서관호주에서 1854년에 세워진 곳이자 세계 최초의 무료 공공도서관 중 하나인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Victoria State Library)은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있다. 매해 1.9만 명 이상 방문한다. 약 8,094㎡(2,400평)에 규모를 자랑하는 도서관은, 수십 년에 걸쳐 시대가 원하는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공간을 재편성 했다. 2021년 현재는 24개의 개별 건물로 나뉘어 방문객을 맞는다. 또한 작가 셰익스피어부터 찰스 다윈, 패트릭 화이트까지를 포함한 희귀한 책들을 소장 중인데, 예약 할 경우 관람이 가능하다.   다양한 책방의 도시 멜버른 사람들은 호주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1인당 책, 잡지, 신문을 더 많이 소비한다. 빅토리아주에만 289개의 지역 도서관이 있으며, 전체 회원이 250만 명이다. 호주에서 가장 큰 서점부터 독립서점까지 다양한 콘셉트를 가진 서점도 많다. 대표적으로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라이프 스타일 아이템과 책을 모아놓은 ‘해피 벨리 숍(Happy Vally Shop)’이다. ‘타셴(Taschen)’ 같은 유명 예술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책뿐만 아니라 개성 있는 문구류와 음악 관련 상품도 함께 판매한다. 이 밖에도 건축과 예술 서적을 전문으로 파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와 요리 전문 서적을 파는 ‘북스 포 쿡스(Books for Cooks)’도 있다.​ &nbs..

  •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08-01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2)​ “긴 겨울밤 속에서 삶을 찾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Reykjavík)아이슬란드 땅 면적은 남한과 거의 비슷하지만 전체 인구는 원주시 인구와 비슷한 35만 명이다. 아이슬란드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 레이캬비크에 몰려있다. 수도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처럼 아이슬란드는 물과 얼음의 나라이다. 그리고 화산과 바람의 땅이다. 무엇보다 겨울철 해가 뜨는 시간이 짧아 12월과 1월에는 흑야(黑夜) 현상을 만날 수 있다.   책 읽는 사람들얼음, 화산, 바람 그리고 흑야까지. 극한의 자연환경 탓일까.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책을 즐겨 보고 자주 펴낸다. 인구 중 절반이 연간 최소 8권의 책을 읽고 90% 이상이 최소 1권을 읽는다. 인구 대비 작가 비율도 세계에서 가장 높아서 인구 약 32만 명 중 1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10%나 이른다. 황금시간대에 TV 인기 프로그램은 책 관련 프로그램이고 시청률도 높다.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jólabókaflóð(크리스마스 책 홍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책 선물이 인기가 많다.  kvöldvaka&Saga아이슬란드의 겨울밤은 수개월이 이어질 정도로 길다. 과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긴 겨울밤을 이겨내기 위해 ‘kvöldvaka(저녁)’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 말은 아이슬란드어로 ‘깨어있다’는 의미이다. 과거 아이슬란드인들은 긴 겨울밤을 이겨내기 위해 전통 주택 안에 둘러앉아 양털을 다듬고 옷을 꿰매거나 도구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낭송하고 게임을 하고 경전을 읽으며 혹독한 겨울밤을 버텨냈다. 이때 이들이 나눈 이야기는 13세기 초에 기록된 아이슬란드의 산문체 영웅담으로 930~1030년에 아이슬란드에 살았던 명가(名家) 사람들의 삶을 다룬 ‘Saga(사가)’이다. 사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 신화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문학창의도시, 레이캬비크2011년, 비영어권 최초로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가 되었다.레이캬비크는 탄탄한 문학 역사와 높은 독서량, 다양한 문화 시설을 갖춘 도시이다.  GRÖNDALSHÚS WRITER';S HOME(작가의 집) 외에도 다양한 박물관과 극장, 갤러리 및 대학 등 문화시설이 풍부하다. 또한 Saga 등 중세문학의 본거지이다. 9세기부터 전해지는 아이슬란드어를 사용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격년으로 ‘아이슬란드 국제 문학 축제’도 열린다.​&nbs..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06-05

    2004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가 세계 최초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이곳은 여러 명의 학자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들이 태어나고 활동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1)    “지식이 미래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  첫 번째 ‘문학’ 도시, 에든버러2004년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가 세계 최초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가 되었다. 에든버러는 15세기부터 시작한 의무 교육 제도를 덕분에 여러 명의 학자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들이 태어나고 활동했다. 16세기에는 스코틀랜드 인쇄술의 발상지이자 출판의 중심지였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책들을 보유했다. 최초의 ‘문학’ 도시답게 ‘작가 박물관’ ‘스코트랜드 국립도서관’ ‘스토리텔링 센터’ 등을 갖췄다. 매년 8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며 이때 ‘에든버러 국제 도서 축제’도 함께 진행한다. 에든버러를 대표하는 작가스코틀랜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윌터 스콧’, 최고의 추리 소설 《셜록 홈즈》 작가 ‘코난 도일’,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 걸출한 문인들이 모두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활동했다. 윌터 스콧은 역사소설가·시인·역사가로 《최후의 음유 시인의 노래》, 《마미온》, 《호수의 여인》의 3대 서사시로 유명하다. 코난 도일은 창조 캐릭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 소설을 썼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인간의 다중 인격을 주제로 한 《지킬 앤 하이드》를 남겼다. 현대에 이르러 작가 J.K.롤링이 에든버러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해리포터》를 써서 21세기 최고의 스타 작가가 되었다. 교육, 행정, 금융의 도시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의 무대가 된 에든버러는 글래스고에 이어 스코틀랜드 제 2의 도시이다. 2021년 현재 약 48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으로 손꼽히는 에든버러 대학교가 있는 교육 도시이자 탄탄한 행정, 금융이 발달한 상업도시이다. 18세기 당시 에든버러는 유럽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고 우수한 인재들로 가득했다. 현대 자본주의 이론을 정리한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데이비드 흄, 제임스 밀 등 현대 경제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이때 대거 출현했다. 이렇게 모인 수많은 학자들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발전시켰고 에든버러는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인 도시로 널리 알려진다.&n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