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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와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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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원주에는 5개의 역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안창역(安昌驛, 현 지정면), 단구역(丹丘驛, 현 단구동), 신림역(神林驛, 신림면),
신흥역(新興驛, 현 영월군 주천면), 유원역(由源驛) 등이다.

원주를 경유하는 중앙선이 개통한 시기는 1940년과 1942년으로, 철도 이전에 도로망이 조성되고 거기에 철도까지 개통되어 원주는 강원도의 중심 교통중심지로 부상하였다. 더욱이 1973년 6월에는 청량리에서 제천까지 전 구간이 전철화 되고, 곧이어 만 1년 후에는 제천-고한선이, 그리고 1975년 12월 5일에는 고한에서 북평까지 전구간이 전철화 되었다.이러한 교통로가 발달함에 따라 이 지역 시장은 크게 변화하였으며, 특히 험악한 치악산을 넘어가기 위해 우회로로 건설된 반곡역은 반곡동 주민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반곡동은 위치상으로 치악산 너머 동쪽과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원주를 올 때 거치는 곳으로, 원주는 과거시대부터 서울·경기 지역과 영서 남부 내륙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였다. 따라서 이곳의 생활권은 충북 쪽과 경상도 쪽 그리고 강원도 쪽 모두 연결된다.

한편 육상교통과 함께 떼놓을 수 없는 것은 조운로였는데,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흥호리는 조선시대에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조창(漕倉)인 흥원창(興源倉)이 있었던 곳이다. 흥원창은 원주·영월·평창·횡성·정선·강릉·삼척·평해 등지의 전세(田稅)와 세곡(稅穀)을 서울까지 운반하던 중간 집합지였다. 이렇게 원주천을 거슬러 온 배는 원주교(쌍다리) 부근의 배말까지 왔다고 한다. 배말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배를 매는 말뚝이 있었다' 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배울 최순연씨 집 앞 느티나무까지 배가 다녔다고 하며, 느티나무 주변에는 '명주 꾸러미 하나가 다 들어가는 소(沼)' (윤장현, 남, 79세, 배울)가 있을 정도로 마을의 한복판까지 큰 강을 이루어 서울에서 소금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자년 수해(1936년도 수해로 추정)로 영랑천이 범람하면서 메워져 논·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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