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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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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마을은 각 통마다 대체로 인구가 배 이상 증가하였는데, 6.25전쟁의 영향이 컸음을 알 수 있는데,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군속으로 와서 정착을 한 경우가 그 예다.

지역적으로는 강원도 평창군과 횡성군 등 강원도 지역에서 전입해 온 경우가 가장 많고,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전입한 경우도 있다.

반곡1동

1동은 자연마을인 봉대, 방묘, 한가터, 배울, 무내미로 구성되어 있으며 뱅이둑이나 뒷뱅이는 방묘의 다른 이름이다.방묘, 배울, 봉대는 형재 모두 합쳐 100여 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지만,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30가구에 불과하였고, 화전마을이었던 한가터를 제외하면 1동은 1960년대 이후에 40세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당시 한가터 화전민들은 농사 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산에서 화전을 일구어서 콩과 옥수수농사만 지었다고 한다. 현재 봉대마을에는 한가터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 많다.

반곡2동

2동은 삼보골과 뒷골로 구성되어 있는데 삼보골은 삼부골, 뒷골은 후동이라고 한다. 2동 역시 50여 년 전에 70호 넘게 살고 있었으며 그중 뒷골에는 40가구 정도가 살았다. 2007년 기준 삼보골까지 합쳤을 때 총 149세대가 살고 있다.최근에는 반곡동이 원주 도심과 가까운 입지를 차지하면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반곡동 주변의 인구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난 시점은 1990년대 이후 택지 개발과 함께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반곡3동

버들만이라고도 부르는 유만은 반곡 서남쪽 원주천 상류변에 있는 마을로, 6·25전쟁 전에 14~18세대를 이루었고, 전쟁 중에 유입인구가 늘어 전쟁 직후 30호 정도였다고 한다. 2007년 기준 110세대가 산다.

반곡4동

서리실과 진대울로 구성되어 있는 4통은 6·25전쟁 직후 약 60세대 정도가 거주하였는데, 2007년에는 진대울을 포함하여 186세대이고 이중 서리실의 호수는 80여 호다. 마을에 38사단이 들어서면서 4통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는데, 본래 반곡동의 중심마을은 서리실로 세대수도 가장 많았다고 한다. 현재 마을구성원 중에는 해방 이후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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