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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의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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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의 혼례

반곡1통, 방묘마을 사람들

박옥현 씨는 20세에, 부인은 18세에 결혼했는데, 종신애비로는 부인 집안의 친척 노인이 섰다. 장가를 갈 때는 처가인 횡성군까지 100리길을 걸어서 갔는데, 새벽3시에 떠나서 10시 반쯤에 신부의 마을로 들어갔다.

처갓집에 갈 때에는 형님이 상감, 곧 옷손으로 함께 갔고 그밖에 신부 측이 준비하는 농, 이불, 입을 옷 등을 지고 올 사람 4명을 사서 데리고 갔다. 박옥현 씨 부인에 따르면, 신랑집에서 채단은 비단, 뉴똥치마, 모본단저고리 옷감으로 해서 주었다고 한다.한 짓(한 벌)을 받았는데, 치마 두 짓 호박단 저고리 한 개로 당시로서는 최고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대례를 치루고 원래는 하루 자고 가지만 비가 와서 하루 저녁을 더 자고 이튿날 새벽에 두 분이 걸어서 왔다. 혼수로는 농을 해 왔는데, 집에서 짠 두짝 농이었다. 요 한 채와 이불 한 채 짝을 맞춰서 넣어왔다. 옷은 입을 만큼 치마저고리를 만들어왔다. 시댁으로 들어올 때는 문턱에 바가지를 놓고 밟고 들어왔는데, 이는 재앙을 '예방하는 것' 이라고 한다. 또 시어머니는 장독을 끌어안았는데, 이것도 재앙을'예방하는 것' 이라고 하며, 이렇게 해야 잘 산다고 답했다.

봉대마을

중국 만주태생인 봉대마을의 엄중화씨는 25세인 1963년쯤에 결혼했는데, 부인은 같은 마을사람으로 이웃집 중매로 만났다.
처갓집에 갈 때에는 4명이 메는 가마를 타고 갔는데, 가마는 동네 어른들이 메어 주었다. 밥과 팥을 놓고 대례를 지냈으며, 엄중화씨는 걸어서 들어오고, 부인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해란 씨(71세)는 21세에 행구동에서 시집 왔는데, 면서기였던 오빠 친구가 중신을 섰다. 남편은 우봉 이씨이며, 본가는 경상도 상주였는데, 병이 나서 이 마을로 '피접' 을 왔다가 만난 것이다. 혼례를 치룬 당일 날 시댁으로 왔는데, 혼수는 농, 이부자리2채, 옷 한 죽씩을 해왔다. 채단으로는 치마저고리 두 벌을 받았는데, 옷감을 베르도, 양단, 뉴똥이었다.

반곡2통(뒷골)

이도화씨는 23세에 시집을 갔는데, 고종사촌 언니가 중신을 섰다. 시댁은 부론면 노림리였고, 남편은 김해 김씨이다. 혼례는 구식으로 올려서, 대례는 친정에서 올렸다. 대례음식은 여자 쪽에서 만들었는데, 가래처럼 만들어서 올린 용떡을 놓고 지냈다. 신부는 원삼, 신랑은 사모관대를 입고 혼례를 올렸다.

채단으로는 베르도 치마, 뉴똥치마를 각각 치마 한 감씩 받았는데, 이 옷감으로는 노랑저고리 분홍치마, 혼례복을 만들어 입었다. 시댁에 온 뒤 삼일 뒤에 친정에 갔다. 이를 '삼일도백이' 라고 하였다. 시댁에서는 떡과 엿을 싸 주었고 신랑하고 둘이서 함께 다녀왔다. 친정에서도 시댁하고 똑같이 떡과 엿을 준비해 주었고 시댁식구 드리라고 버선을 해가지고 돌아왔다.

반곡3통(유만마을)

최성침씨 부인은 1962년 만종에서 시집을 왔다. 대례는 최성침씨의 처가에서 지냈는데, 택시를 타고 가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혼례 당일 날에는 '팔자 좋은' 아들 딸 많이 낳은 할머니들이 허리를 만들어 놓았다가 '대례청' 에서 옷감이 오자 바로 치마를 만들어주었다.

삼일도배기를 갈 때는, 시댁에서는 술과 대나무로 만든 '도방구리(반짇고리)' 에 엿을 담아서 가져갔다. 돌아올 때는 친정에서는 인절미, 엿, 정종을 내주어 들고 왔다고 한다.

원주에 있는 형부의 매주 중신으로 결혼한 심재선씨 부인은 음력으로 9월 초사흘에 혼례를 올렸다. 대례를 치루는 시간을 정하지 않았는데, 시가 없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시댁에서 채단으로 치마 2개, 저고리 한 개를 보냈고, 저고리는 친정에서 이미 만들어 놓았고, 시댁에서 보낸 베르도, 뉴똥 치맛감을 동네 사람들이 가져다가 허리를 달아서 치마를 만들었고 이를 입고 대례를 올렸다.

대례를 치루고 가마는 친정에서 시장거리부터 타고 갔는데, 친정에서 시장거리까지는 3km 정도 되었다. 시댁에 와서 안방에 앉아 있는데 삶은 국수를 담은 바가지와 젓가락을 주면서, 신부가 안 먹으면 신랑을 주어야 한다고 해서 먹었다. 신랑집에서 치루는 잔치는 신부가 오기 전에 낮에 했다.

반곡4통(서리실 마을)

천석환 씨는 23살인 1956년에 친척 아저씨의 중매로 뒷골에 살던 부인과 결혼했다. 사모관대는 서리실마을의 대동계 기물을 빌려서 입었고, 가까운 곳이라서 친구 두 명이 기마를 태워서 처갓집으로 이동했다. 처갓집에서 본가로 와서는 국수를 삶아서 조상들에게 인사하는 '사당차례' 를 했다.

방묘마을

박옥현씨(77세)에 따르면 상이 나면 행상을 할 때, 배울마을, 방묘마을, 봉대마을 모두 (1통 전부)가 상여를 메었다 1통 전부, 5개 반이 함께, 대동계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상여를 멨다..
상여는 소위 '양반' 도 다 멨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묻자, 메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아서 그 집에 초상이 나도 그 집에는 일절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먹는 것을 당연히 다 대접해야 했다. 저녁마다 대접을 했고, 당시에 나누어 주는 음식을 '성북' 이라고 해서 염할 때 제사를 지내고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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