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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구동

단구동은 1970년대까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계곡과 저수지가 많아 농경지에 사용할 물을 나르기가 쉬웠고 천매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원주시설관리공단(구 원주소방서), 남원주중, 원주시립중앙도서관 방향은 평평한 들이어서 벼와 복숭아 농가가 많았다.  갯가말, 개건너, 관놈, 구루니, 귀론, 나비허리 등 곳곳에 자연부락이 조성돼 있었고 물을 댈 수 있는 저수지도 있어 농사짓기에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 단구동

    단구동은 1970년대까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계곡과 저수지가 많아 농경지에 사용할 물을 나르기가 쉬웠고 천매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원주시설관리공단 (구 원주소방서), 남원주중, 원주시립 중앙도서관 방향은 평평한 들이어서 벼와 복숭아 농가가 많았다.  갯가 말, 개 건너, 관놈, 구루니, 귀론, 나비 허리 등 곳곳에 자연부락이 조성돼 있었고 물을 댈 수 있는 저수지도 있어 농사짓기에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단구동이 급격히 도시화로 바뀐 시기는 1980년대부터이다.  원주시가 토지의 지목, 형질, 구획 등을 변경해 본격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면서 아파트가 건립됐고 이로 인해 인구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곡·단관택지가 조성되면서 주거, 문화, 교육, 편의시설 등이 잇따라 갖춰졌다.  명실상부한 원주 최대의 주거생활 지역으로 거듭나게 됐다.

  • 나환자촌, 택지 개발로 사라져

    단구동 천매산을 중심으로 서쪽과 남쪽 기슭에는 경천원이 있었다.
    1957년 대명원과 성락원에 수용돼 있던 나환자 중에 28세대, 60여 명이 군대식 통제를 견디지 못하고 소위 야반도주 형식으로 뛰쳐나와 그해 6월 집단부락을 형성하고 조합을 설립하면서 경천원이란 이름으로 또 하나의 나환자촌이 형성된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경천원에는 1963년 138세대, 566명, 1982년 147세대, 605명, 1992년 120세대, 650명이 거주했다.

  • 1993년 경천원

  • 경천원에 정착한 나환자들은 초기부터 수익성이 있는 축산업을 택해 자활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  닭 890마리, 돼지 60마리, 소 1마리, 양 4마리로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으며 협동조합 운동과 원주기독병원 선교단체의 지원을 통해 믿음 생활로 비교적 빠르게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이후 경천원 주민들은 헌신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던 원주기독병원 설립자 모례리 박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으며 2007년 원주기독병원에 기증했다.
    경천원은 구곡 택지가 조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 단구동사무소

  • 새로운 형태 지방행정기관
    대동 출범

    단구동은 2015년 5월 새로운 형태의 지방행정기관인 대동(大洞)으로 출범했다.  대동은 인접해 있는 2개 동 지역 인구가 7만 명을 넘을 경우 확대 개편하는 것으로 2014년 12월 말 기준 단구동(4만7,500명)과 반곡관설동(2만4,000명) 인구가 이에 해당했다.
    이에 따라 단구·반곡관설 행정복지센터가 운영되면서 원주시청에서 처리하는 인허가와 신고, 복지업무 130여 개를 빠르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