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 가구 골목
가구를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물론 오늘 오후 주문한 식품이 내일 아침 현관문 앞에 와 있는 일도 그러하듯이. 원주에서는 과거 가구를 사기 위해 모두 이곳을 찾았다. 중앙동 가구 골목은 언제나 사람들로 그리고 가구를 실어 나르는 배송 차들로 붐볐다. 어느덧 20년 전 풍경이 되었지만 말이다. 중앙동 시장 일대가 그러하듯 이곳 역시 낡은 판잣집 건물들이 헐리고 하루아침에 현대식 건물이 올라온 것은 1980년 소년체전 직전이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윤락가 골목이었다.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던 엄마들은 해가 지면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팔자 좋게 시집가서 아이 낳아 키우냐”며 화를 내던 업소 여성들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소년체전을 준비하며 새 건물들이 들어섰고 윤락가 시대는 막을 내렸다.
거리가 번듯해지고 당시에 인근 군인극장 편부터 지금은 철거되고 사라진 문화극장까지의 거리다. 당시 원주에서는 가구점이 밀집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파트도 많지 않았고, 아파트라 해도 지금처럼 기본 가구가 붙박이장으로 맞춰져 나오는 일이 없었다. 결혼할 때, 이사를 할 때, 아이들이 자라나 책상 세트를 사줄 때도 모두 이곳에서 가구를 구매했다. 90년대 후반 무실동 등 외곽으로 택지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남원주가구단지, 대성 가구단지가 형성됐다. 일부 가구점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다소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횡성으로 향하는 시내버스가 다니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장사가 괜찮았다. 그 뒤로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고, 가구 판매 시장의 변화로 중앙동 가구 골목은 급한 침체기를 맞아야 했다. 과거 새로운 출발의 설렘을 안고 가구를 고르던 추억이 깃든 골목, 지금은 두 곳의 가구점이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43년째 운영 중인 ‘원주 가구 총판’
인터뷰 - 남왕희 대표
외삼촌께서 이 거리에, 가구 골목이 형성되던 초기부터 가구점을 운영하셨다. 20대에 와서 외삼촌께 일을 배우며 시작했다. 지금 나이가 칠십이 됐으니, 돌아보면 이 골목에 와서 정신없이 일하며 청춘을 다 보냈다. 놀러 한 번 못 가 보고, 평생 장사만 하다 세월이 흘렀다. 올해로 43년째 운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골목 대부분이 가구점들이었다. 그때는 가구 살 때 모두 이 동네로 왔었다.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늘 분주했던 골목이다. 장 사가 가장 잘 됐던 때는 20여 년 전이 가장 호황기였다. 2000년대 후반에 중앙로 차 없는 거리 조성 당시 이 골목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당시 상인들과 반대 운동하며 막아냈다. 가구점은 차가 들어오지 못하면 망하는 장사다. 우여곡절 끝에 차는 계속 다니게 됐지만, 경기는 계속 어려워졌다. 창기부터 운영한 가구점들은 이제 다 사라졌다. 우리 가게와 옆에 동일가구 두 집만 남았다. 지금은 가구점은 아니지만, 이 길에서 가구 골목 초창기부터 살면서 장사하신 분들은 건너편 동원쌀상회가 오래된 가게다.
지금은 개인 사업으로 가구점 운영하는 가게는 어느 곳이나 장사가 어렵다. 아파트는 가구가 다 만들어져 나오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가구점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골목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를 하기 어렵다. 그래도 조만간 인근에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는데 조금이나마 이 거리 상인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