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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 건축물 이야기 서교하 원주근대도시건축사 연구소장
글쓴이 원주시 기록관 (rmshome) 작성일 2024-04-18 14:31:54 조회수 18

중앙동 건축물 이야기




 

원주 지역 근대건축물에 대한 연구와 보존 활동을 해오고 있는 서교하 원주근대도시건축사연구소장을 만났다. 사무실이 중앙동에 위치해 있다. 과거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으며, ‘구도심원도심으로 바꿔 쓰는 일을 지역에서 시작하기도 했다. 그는 원주의 중심지인 중앙동의 건축물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오고 있다. 건축물을 통해 원주라는 도시 발전에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중앙동의 오랜 역사와 오늘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건축 역사를 따라가 본 원주 중앙동

 

건축에 대한 학습과 연구는 그 지역의 역사와 철학, 특히 인문학에 대한 연구를 수반한다. 건축물은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 사람과 사람의 많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하나의 건물이 점이라면 그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입체가 된다. 모든 건축물이 생겨나고 변화되고 또는 사라지는 과정에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원주라는 도시는 고려시대 때 그 지명이 생기고 천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 건축적 관점에서 천년의 원주 역사가 정리된 자료가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게 됐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 정도 역사를 가진 도시라면 천 년 전 모습부터 현재까지의 변화가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된다. 그리고 그 연구들을 통해 정리된 자료들이 계속 축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주는 그런 자료가 없다. 옛 문헌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내용들, 또는 그림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전부다. 현재의 도시 구조와 비교해 과거에는 어디에 어떤 건물들이 있었고, 그 거리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고 생활했는지 궁금하다. 중앙동을 비롯해 원주의 근대건축물과 그 역사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게 됐던 계기다. 원주에 대한 건축적 관점에서의 연구는 역시 중앙동에 위치한 강원감영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측량기법에 의해 지역마다 지적도가 만들어 진 것이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당시 처음으로 마을과 마을, 지역을 잇는 도로들을 정비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189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개조사업,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인 치도 사업이 그것이다. 그전에는 그냥 강 따라 물길 따라, 사람들이 다니던 대로 길이 나 있을 뿐이었다. 구불구불했던 길을 곧게 펴고, 길과 길을 잇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치도 사업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해 세부측량을 통해 지역마다 지적원도를 만들었다. 원주 역시 1916년 측량을 통해 만들어진 강원감영의 지적원도가 있다. 원주의 모습이 과거부터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국가기록원 보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지적도의 원본이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전부 사람이 다니면서 측량을 하고, 손으로 그린 것이다. 110년 전에 이렇게 정밀하게 측량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적원도는 현재 강원감영을 포함한 중앙동 일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지적도에 드러나 있는 건물들, 원주천 위치 등을 지금의 모습과 대조해 보기 시작했다. 지적원도를 스캔해 캐드 도면으로 그렸다. 그리고 현재의 지적도와 오버랩 시켰다. 보정을 거쳐 위치를 맞춰보니 당시에 어떤 건물이 어디에 있었는지 특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들여다보니 당시 치도 사업을 통해 제일 먼저 곧게 정비된 길이 지금의 중앙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감영의 위치와 연결된 길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적원도를 봤을 때 당시에 지어져 있었으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 건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또 하나 대조할 수 있는 자료를 확인한 것이 1913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남산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중앙동 일원의 전경이 모두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때 전국의 주요 도시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원주의 모습이라면 아무래도 강원감영이 위치한 이 곳 중앙동이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니 이곳을 촬영했을 것이다. 사진을 통해 지적원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건물들, 담장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 확인된 것들로 다시 의문점을 쫓아간다. 고려 때부터 이어진 원주목(原州牧) 시절이다. 조선시대 때 전국을 8도로 나눠 강원도에서는 원주를 수부(首府)로 하여 감영을 설치하기 전에는 원주목 관아(官衙)가 있었다. 현재 원동성당이 있는 자리에 천주교 원주교회가 있기 전 목관아가 위치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터만으로는 활용하기 좁아 인근으로 감영을 설치하고 그 자리는 부속 건물의 부지로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감영의 선화당, 내삼문, 후원, 객사, 포정루 등 위치도 사진에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주변으로 집들이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그 사이 이어진 마을 길까지 보인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강원도의 중심이었던 500년 감영의 역사와 함께 중앙동의 변화를 들여다본다.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 원주라는 지역, 우리 지역의 원도심인 중앙동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100년이 넘은 지적원도와 자료들을 통해 중앙동의 시대별 건축물과 도로의 변화를 정리해 가고 있다. 건물이 생성되고, 더러는 사라지고, 또 남아 있는 것들을 정리한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복원하고 보존해야 한다

 

건물은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 삶의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이다. 인물과 역사적 이야기가 함께 설명된다. 그만큼 건축물은 용도로써의 쓰임을 넘어 지역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강원감영이 최근으로 오면서 일부 추가로 복원되었으나 아직 많은 부분의 복원 작업이 필요하다. 중앙동에는 그 외에도 근대건축물에 해당하는 건축물이 여럿 있다. 아직 등록되지 않은 건축물도 많다. 그 건축물들이 쉽게 사라지도록 둬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건들도 많은 건축물이 사라졌다. 도시화, 근대화라는 명목하에 일제강점기 당시 철거된 건축물들. 그리고 또 한국전쟁 때 많은 건축물이 전소됐다. 또 하나는 1980년 강원도에서 개최된 전국소년체전을 준비하면서 1970년대 말부터 A·B·C 도로(지금의 원일로·중앙로·평원로)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 지었다. 아쉬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치악체육관이 지어지기도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흔적들이 시대별로 켜켜이 쌓여있어야 한다. 그런 시기를 증명하는 구조물, 건축물, 도로 등 이런 것들이 보존되어 현재와 같이 어우러지면서 역사를 증명한다. 역사가 단절되지 않으며, 도시는 풍요로워진다. 지자체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나와 같은 민간인 혼자의 연구와 보존 활동으로는 부족하다. 원주의 역사와 변화를 아카이빙하고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정리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동에서 시작해 변천해 온 원주의 이야기가 연구되고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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