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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골목 우리 장터 백영태 이인순 대표
글쓴이 원주시 기록관 (rmshome) 작성일 2024-04-18 14:28:09 조회수 13

소고기 골목


 

 

레트로 열풍을 타고 노포집이 인기다. 놀랍게도 MZ세대들이 노포집을 찾아다닌다. 주로 오래된 식당을 표현하지만, 중앙시장 소고기 골목에는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키는 진정한 노포집들이 있다. 골목에 들어서기만 해도 그 정취가 느껴진다. 좁고 어둑한 골목 사이사이 소고깃집 간판들이 이어진다. 가게 입구 옆에는 좁다랗게 숯불 피우는 자리가 있다. 불편한 자세로 매일 같이 땀을 흘렸을 자리다. 쌓여있는 숯불 화로에는 노포의 세월이 그대로 묻었다. 가장 오래된 소고깃집은 50년 가까이 영업을 해오고 있다. 반백 년 시장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이다. 사람들이 노포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골들에게는 변함없는 맛이 가장 큰 이유겠으나 꼭 맛 때문만은 아니다. 노포에는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주인들이 있다. 변함없이 맞아주고 넉넉한 인심으로 상을 차리며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서빙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시대지만 소고기 골목에 그런 풍경은 없다. 사람들은 따뜻한 정을 찾아 이곳에 오기도 한다. 과거에 레트로가 향수에 기대었다면 지금 MZ세대에게 레트로, 뉴트로(New-tro)는 경험한 적 없는 따뜻함에 대한 애정이다. 물론 맛도 보장한다. 단골들은 날고기로 먹어도 탈이 없다고 할 만큼 신선한 한우 특수부위를 맛볼 수 있다. 대를 이어 자리를 지켜 온 현지인 맛집 우리장터주인 내외를 만나봤다.

 

Q. 언제부터 영업을 했나요?

백영태 사장 1992년부터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30대 때부터다. 그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식육점을 운영했다. 아버지께 고기 손질을 배우면서 시작해 10년 넘게 아버지와 장사를 했다. 내가 어릴 때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식육점을 운영하셨다. 그러고 보니 3대를 이어 이 가게 터에서 70년 이상 장사를 했다. 그렇게 오래된 줄도 모르고 장사하고 살았다. 우리가 소고깃집 문을 열 때 골목에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호집을 포함해 소고깃집이 서너 집 있었던 것으로 기억 한다. 지금은 이 골목에 한우를 판매하는 식당이 서른 곳 정도 된다.

 

이인순 사장 이천이 고향이다. 시집오면서부터 원주에 살았다.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가 아이들이 막 초등학교 들어갔을 무렵이다. 그때만 해도 군인 손님이 많았다. 군인들이 회식하러 많이들 찾아주셨다. 처음에는 지금 주방 자리만큼, 그리고 2층도 아주 좁은 공간만 꾸며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차츰차츰 손님이 늘어 세를 놨던 바로 옆 가게 한 칸을 헐어 가게를 넓혔다. 또 얼마 지나 한 칸을 더 늘리고, 2층도 넓히게 됐다. 그러니까 지금 1층 가게 면적이 과거에는 3개 점포가 있던 자리다. 옛날에는 식당이고 상점이고 다 작은 가게들이었다.

 

Q.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식육점을 하시던 때의 기억은?

백영태 사장 그때 가게는 판잣집이었다. 우리만 아니라 시장 가게들이 다 그랬다. 나무판자를 대충 얹어놓고 가게를 꾸며 장사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전국소년체전이 열리기 전 도시를 정비할 때 여기 시장도 시멘트 건물로 지어졌다. 어려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식육점 하실 때는 용돈 타러 가게에 들렀던 기억이 많다. 당시 집은 지금 학성초등학교 인근에 있었다. 사야 할 것이 있을 때 등하굣길에 들러서 용돈을 타 갔다. 그럼 부모님은 꼭 바로 주시지 않고 한참을 서서 기다리게 하고 뜸을 들이시다 주셨다. 중학생 때는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아버지께 졸라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스케이트가 비싸서 제일 싼 것으로 사달라고 한동안 조르고 졸라 아버지가 사주셨다. 원주천이 얼어 빙판이 되면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케이트 대회도 열리고 그랬으니까. 앉아서 타는 썰매도 만들어 타고 그랬던 시절이다.

 

Q. 과거 중앙시장 풍경은 어땠나요?

백영태 사장 옛날 재래시장이었다. 그래도 아주 번성했던 시장이다. 인근 지역에서도 물건을 떼러 와서 대량으로 싣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짐을 날라다 주는 리어카꾼들도 많았다. 불도 여러 번 났다. 큰 화재는 과거에 두 번 정도 있었다고들 기억하지만, 옛날 가게들은 전부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에 불나는 집이 많았다. 또 작은 가게들이 바로 붙어 있으니 옆 가게로 불이 번지기도 하고. 그런 일은 자주 있었다. 예전에 시장에서 장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토박이었다. 80년대 떠올리면 그때는 시장에 가게들이 아침 7시면 문 열고 밤 11시까지 장사하고 그랬다. 시장에 다방도 참 많았다. 지금은 원주에 여기저기 상권이 많이 발전했지만, 과거에는 상권이 여기 중앙동 하나였으니 언제나 붐볐다. 90년대에 들어와 원주에 대형마트가 생기고 다른 상권이 형성되기 전에는 가게들이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장사를 했다.

 

Q. 장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이인순 사장 오래된 단골손님들이 많다. 긴 시간 잊지 않고 와주시는 게 감사하다. 어떤 손님은 연애할 때 와서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그때 그 아기가 또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해서 왔더라. 우리는 너무 커서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손님이 얘기를 해줘서 알았다. 그럴 때 보면 오래 장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 부모님 따라 왔던 아이 손님들이 다 커서 찾아와 아는 척을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오랜만에 오셔서 여태 장사하냐고 물으시기도 한다.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그런 얘기 들을 때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느낀다. 인터넷에 보면 후기도 올라와 있고 그렇다는 데 손님들이 그렇게 올려주시는 줄도 몰랐다. 젊은 손님들이 오시면 가게 사진, 음식 사진을 많이 찍어 가신다. 맛있다고 해주시고 또 찾아와 주시고 하니 감사하다.

 

Q. 사장님들에게 이 가게는 어떤 곳인가요?

이인순 사장 그냥 가게에 나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30년 넘도록 집에서는 잠만 자고 늘 가게에 있다 보니 여기 나와 있어야 편하다.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가끔 무슨 일이 있어 낮에 집에 잠시 머무르기라도 하면 집이 그렇게 낯설다. 낮에 집에 있어 보지 않아서 우리 집에 낮에 볕이 얼마나 드는지도 모른다. 몸이 좀 아파도 집보다 가게 2층에 누워 자는 게 편하고, 의자를 붙이고 쪽잠을 자도 여기가 마음 편하다. 감기도 집에서 편히 앓아 본 적이 없다. 가게를 하면서는 어디 놀러 가도 편하지가 않다. 집보다 편한, 그런 곳이다. 남편과 함께 장사하니 밤낮으로 붙어 있다. 누가 말하기를 우리 같은 부부는 남들보다 두 배의 세월을 같이 산 것이라고 한다.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애들도 다 길렀다. 누가 이렇게 물어오니 지난 시간을 얘기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생을 해오고 있는 장사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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