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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철, 중앙동 인도는 농산물 벼룩시장 곽병은 임동란 부부
글쓴이 원주시 기록관 (rmshome) 작성일 2024-04-18 10:58:44 조회수 14

수확 철이 되면 중앙동 인도는 농산물 벼룩시장

 




1989
년 부부의원을 중앙로 인근에 개원한 곽병은·임동란 부부는 원주에서 개원하는 의사들이 선호하는 당시 A 도로(원일로)를 마다하고, B 도로(중앙로) 인근을 택했다. 병원 자리도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됐다. 원래 당구장이었던 곳을 얻었다. 부부가 기억하는 A 도로에는 멋진 상점이 많았고 B 도로에는 중국집 등 음식점과 약국이 많았다. C 도로는 대부분 시골 분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B 도로와 C 도로 중간에 병원이 들어선 것은 부부의원이 처음이었다. B 도로는 횡성으로 가는 62번 버스가 다녔고 정류장도 있어 장날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부의원 개원 초기 병원 식구들은 백반을 시켜 먹었다. 식당에서 백반 쟁반을 머리에 이고 배달해주곤 했다. 그러다 차츰 병원에서 밥을 해 먹기 시작했다. 부부의원 옆 공주한약방과 병원 건물주 할아버지, 그리고 독집 할아버지는 이 일대 3인방으로 통했다. 독집 할아버지는 백구두를 신고 사이클을 탔다. 지금도 남아있는 영일세탁소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오리지널 터줏대감인 셈이다. 인근에는 아이들이 즐겨 찾는 오락실과 문구점이 있었고 만두가 유명했던 중국집과 벼룩시장도 열렸다. 새벽부터 시골에서 나온 아낙네와 할머니들이 난전에 농산물을 펼쳐 놓고 팔았다. 팔다 남으면 병원에 찾아와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있었다.

 

옥수수가 나오는 여름철에는 A 도로 입구에서부터 C 도로까지 고무대야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옥수수를 팔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팔았다. 병원에 오는 사람마다 옥수수를 사와 나눠 먹었다. 농산물 수확 철이 되면 환자들이 가져온 농산물로 병원은 그야말로 제철 채소가 넘쳐났다. 부부는 그런 병원이 드물었을 것이라고 기억한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정()이라고 말한다. 원주의 중앙통이다 보니 약국도 많았고 원주에서 제일 컸던 연수당 한약방도 자리 잡고 있었다. 약국은 원성 약국과 서울 약국이 원주 시내 최고의 약국이었다.

 

곽병은 원장은 군 복무를 계기로 원주와 인연을 맺었고 1989년 원주에 아내 임동란 선생과 부부의원을 개원했다. 원주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곽 원장은 장애인과 홀몸노인들을 돌보는 봉사를 수십 년 동안 묵묵히 실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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