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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가 있어 운치를 더했던 곳 이영수 치악관광여행사 대표
글쓴이 원주시 기록관 (rmshome) 작성일 2024-04-18 11:38:11 조회수 14

플라타너스가 있어 운치를 더했던 곳


 

 

한때 원주의 대부분 결혼식을 치렀던 곳이 있다. 30분 단위로 예식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명일빌딩 일대가 번화가였다. 2000년을 넘으면서 예식장도 대형화되고 결혼 문화도 조금씩 바뀌었다. 치악예식장도 20여 년의 긴 세월을 끝으로 임대업에 뛰어들었다. 1980년부터 운영했던 치악산관광도 마이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예전 같지 않았다. 지금은 이영수 대표가 치악관광여행사를 운영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가 태어나 자란 곳도 바로 이 자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539월 원주군 산림계로 부임했다. 19559월 원주군이 원주시와 군으로 나뉘게 되면서 산림계가 하나 더 늘었고 그의 부친은 산림주사로 승진, 영월군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횡성군을 거쳐 원주에 터를 잡고 밤나무 원목 장사를 했다. 당시에는 전체 블록이 네모 형태였다. 절반은 목재를 가공하는 제재소였고 텃밭과 살림집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제재소 이름이 명일임업사였다. 명일임업사는 지금의 자리에 196310월 설립됐다. 그 자리에 건물을 세웠고 건물 이름이 명일빌딩이 됐다. 할아버지의 중간 이름자와 아버지의 마지막 이름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세월이 오래되었지만, 명일빌딩 인근의 가게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1~2곳 빼놓고 예전 모습 그대로다. 자가용이 흔하지 않던 시절 시작한 치악산관광은 꽤 잘되는 편이었다. 한때는 명일빌딩에 대한항공 지점도 와 있었다.

 

어린 시절의 중앙동과 평원동

겨울에는 원주천에서 얼음 배 타고 빠지기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 물이 많아 여름이면 물놀이 인파가 몰렸고 가장 인구가 많던 중앙동 일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단계택지를 시작으로 무실동 등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인적이 드문 도시가 됐고 상권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아직도 낮에는 유동 인구가 제일 많지만, 저녁 상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과거 62번 버스가 지금의 중앙로(B 도로)를 통과하던 시절에는 오래된 플라타너스가 운치를 더했다. 이 대표가 기억하는 과거 자유시장은 정말 살맛 나는 시장이었다. 미제 물건을 팔던 양키 시장도 있었고 순댓국, 해장국도 사 먹던 기억이 있다. 시장이 아이들 놀이터였다. 중앙동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중앙동 바로 옆 평원동에는 갈빗집이 유명했는데 논산갈비, 태능갈비, 돌탑갈비 등이 즐비했다. 이 대표는 중앙시장이 어떻게든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시장 화재의 흔적을 그대로 둔 상황도 아쉽기만 하다고 말한다.

 

구도심이 살아서 그게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원주시는 이런 말을 하면 알아서 한다고 하지만 그게 벌써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중앙시장이 원주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이곳을 획기적으로 바꾸면 좀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중앙시장이 어떤 식으로든 빨리 변화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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