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콘텐츠
마을사람
민속풍물시장 오일장의 오래된 이야기 장옥룡 님 현금순 님
글쓴이 원주시 기록관 (rmshome) 작성일 2024-04-18 11:05:11 조회수 19

원주 민속풍물시장 오일장의 오래된 이야기

 

원주 풍물시장에 가면 특별한 사람 2명을 만날 수 있다. 풍물시장이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 많고 따뜻한, 이제는 아흔을 바라보는 아줌마 같은 할머니 두 분이다. 오일장이 서는 풍물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들썩인다. 과거처럼 외지에서 들어오는 장돌뱅이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외지인이 많다. 풍물시장에 작은 가게를 가진 상인들도 가장 바쁜 날이다. 오늘도 평소처럼 밥을 준비하고 싱싱한 채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두 분. 30여 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킨 연배 비슷한 두 할머니의 이야기다.

 

오일장의 스타 상추 아줌마




 

풍물시장 장날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상추 아줌마로 불리는 장옥룡(86) 할머니가 펼쳐 놓은 야채 가게(제천상회)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됐다. 난전처럼 펼쳐진 바닥에는 배추며 호박, 무 등이 가득하다. 장 할머니를 찾아가자, 주위 상인들이 풍물시장 스타라며 치켜세운다. 풍물시장이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풍물시장은 장 할머니에게 은인이나 다름없다. 일찍 남편을 먼저 보내고 3남매를 키울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존재가 바로 이곳이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장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상추를 조금씩 뜯어다 중앙시장에서도 팔았다. 그때부터 상추 아줌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러다 1989년 지금의 풍물시장이 들어서면서 이곳에 자리를 폈다. 벌써 30년도 넘게 이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 잘 키우고 밥은 먹고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매일 장이 설 때였어요. 얼마나 장사가 잘됐는지 몰라. 상인들도 엄청나서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지. 그때 비하면 지금은 수입도 10분의 1로 줄어들었지. 지금은 장돌뱅이들도 많이 안 와. 그때처럼 잘 되면 얼마나 좋겠어. 5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지 뭐.”

 

풍물시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앞쪽에는 키 작은 집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건물이 제법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허름한 집이 많았다. 풍물시장 역시 아무것도 없이 가게마다 새시 두 짝만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살만하던 시절이었다. 풍물시장이 생기고 나서 건물들도 하나둘 생겨나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매일 서던 장에서 5일 장으로 바뀌면서 수입은 반의반 토막이 났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슨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느냔 생각을 해요. 여기서 많은 사람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데 5일에 한 번 장사가 반짝한다고 되겠어요? 안타까울 뿐이에요.” 장 할머니가 펼쳐 놓은 채소는 새벽시장에서 구한다. 호박이며 배추, 무 등 다양하다. 장이 서야 나오지만, 새벽시장은 매일 나간다. 필요한 것을 미리미리 구해놓는다. 장날 팔다 남은 채소는 단골식당에 저렴하게 팔고 있다. 오래된 나름의 방식이다. 호박은 한 개에 천 원, 가지는 두 개에 천 원, 배추도 팔고, 무도 팔고, 감자도 팔았다. 처음에 함께했던 사람들은 지금 그의 단골이다. 오며 가며 쉬었다 가고 물건도 사준다.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23년째 2,000원짜리 백반 돼지 분식




 

한쪽으로 길게 늘어선 가게들이 즐비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라야 2~3평이 고작이다. 그곳에 술집이며 찻집,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평소에는 희미하게 켜져 있는 형광등조차 쓸쓸해 보일 정도로 왕래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 중간쯤 23년째 2,000원짜리 백반을 팔고 있는 돼지 분식이 자리 잡고 있다.

 

가게 주인 현금순(87) 할머니는 장날이면 새벽 5시 풍물시장에 도착한다. 단구동이 집인 현 할머니는 버스가 없어 가끔은 택시를 탄다. 과거에는 매일 장날이어서 돼지 분식의 풍경도 장날답게 붐볐다. 떡 팔던 할머니들이 많아 단골도 꽤 있었다. 할머니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서 단골도 뚝 떨어졌다. 지금은 장날이라도 사람들이 드물다. 단골들만 가끔씩 찾고 있다. 돼지 분식 메뉴는 3가지다. 비빔밥과 보리밥, 백반. 돈이 될까 싶어 1,000원짜리 커피도 팔지만 영 시원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반의 반찬은 무려 일곱 가지다. 콩자반과 김치, 콩나물 등 반찬과 계절에 따라 장국, 미역국, 오이냉국을 내놓는다.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장날만 문을 여는 것도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매일 장이라도 열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 현 할머니가 이 자리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처음엔 야식을 팔았다. 야식을 팔게 되니 자연스럽게 술도 팔았다. 그런데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그것이 신병이란 걸 알게 됐다. 절에서 생활도 해봤지만 좀처럼 낫지를 않았다. 그때 축복처럼 다가온 것이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술장사를 접고 밥만 팔았다. 2,000원씩 받겠다는 것도 그때 하느님과 한 약속이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지금까지 그때 약속한 금액 그대로 받는다. 너무 저렴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식자재도 저렴한 것을 사용해야 했다. 저렴하지만 될 수 있으면 신선한 재료를 이용하려고 애쓴다. “평생 좋은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남은 인생 선한 일 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팔고 있지. 처음에는 장사가 제법 됐지. 오일장이 되면서 영 장사가 안돼. 그렇다고 하느님과 한 약속이 있으니, 음식값을 올려 받을 수도 없어. 그저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장사하는 거지. 23년 전에는 식당에서 제일 비싼 음식이 4,000원이었고, 제일 싼 메뉴가 3,000원 받았어. 그래도 그때는 2,000원 받아도 돈을 벌었어. 사람이 많았으니까.”

 

현 할머니가 힘들지만 2,000원씩 받고 문을 여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느님의 좋은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자신이 힘들었을 때 하느님이 힘이 되었듯이 다른 누군가 삶이 힘들 때 한 번쯤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현 할머니는 이제 곧 점심시간이 다가온다며 테이블에 수저와 컵을 놓는다. 초여름 해가 느릿느릿 넘어갈 즈음 두 할머니도 장사를 끝낼 준비를 한다. 과거의 영광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면서.

 

파일
파일
작성한 게시물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비밀번호 :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