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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경제는 중앙시장에서 시작했다 백귀현 중앙시장번영회장
글쓴이 원주시 기록관 (rmshome) 작성일 2024-04-18 09:16:08 조회수 61

원주의 경제는 중앙시장에서 시작됐다

백귀현 중앙시장번영회장

  

 

중앙시장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어디서나 물물교환은 있었고 원주에서는 중앙동이 중심이었다. 중앙시장이 공식적으로 개설된 것은 1953년이다. 올해로 70년이 됐으며 그동안 세월 동안 중부 영서 권의 도매기능을 담당했다. 경기도 여주, 충주, 횡성, 제천 등 인근 지역 상인과 시민이 주 고객이었다. 각 지역에서 중앙시장을 찾다 보니 도매 상인의 물건을 날라주는 지게꾼도 꽤 많았다. 현재 원주 우체국 자리가 지게꾼의 주요 거점 장소였다. 원일로 동아 서관 앞은 농민이 시골에서 농산물을 가져오면 그 농산물을 사서 도매로 다시 넘기는 되메기꾼이 많았다. 동아 서관 앞이 버스 정류장이다 보니 콩, 팥을 비롯해 곡식을 가지고 나오면 중간에서 가로채기 하듯 물건을 사 갔다. 당시 100원이면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던 평원 집은 되메기꾼이나 지게꾼이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중앙시장에는 반찬 골목, 지구 상회, 형제상회 등 도매업이 많았고 누빔 이불을 파는 이불 가게는 문전성시였다. 수선집과 교복 전문점도 중앙시장의 대표 상가였다. 지금은 아동복 골목인 곳에 만두가게 노점이 있었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중앙로에 많았던 것도 지금은 추억의 한 장면이다.

 

중앙시장은 유난히 화재가 많았다. 큰 화재가 세 번이나 났었는데 첫 번째 화재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후 30여 채 정도만 남기고 모두 불에 탔다. 폐허가 된 곳이지만 사람들은 다시 모였고 좌판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았다. 그러다 195328일 중앙동 60-2번지에 중앙시장 상설시장을 짓게 된다. 이후 두 번째 화재는 19561014일로 한 상가에서 불이 나 2, 3328개 점포가 모두 불에 탔다. 당시만 해도 중앙동에 사는 상인들이 많아 집과 생업의 터전을 모두 잃게 됐다. 이재민만 1,0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1군 사령부는 천막을 치고 쉴 곳을 마련해 줬고 원주시에서도 백미를 지원했다. 다시 좌판을 깔고 시장이 열렸으며 196533일 중앙시장이 다시 개설되고 1970982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지어졌다. 총 가나다라 4개 동이 지어졌다. 도매시장 역할을 했던 중앙시장은 2층에서는 생산을 하고 1층에서는 판매를 하는 방식으로 영업이 이뤄졌다. 세 번째는 201912일 낮 1220분쯤이다. 나동 1층 신발가게에서 전기난로를 사용하다 불이 났는데 상가 1, 2층이 불에 탔다. 이날 소방 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 원주 소방서와 인접 소방기관, 원주시, 군부대 등에서 동원된 장비 41, 인원 320명을 진화 작전에 투입했으나 40개 점포를 태우고 1시간 50분 만에 진화됐다. 그러나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본 상가는 100여 개가 넘으며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시장 상권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앙시장이 가장 활성화됐던 시기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다. 교통이 편리해지기 전이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1980년대 대리점 문화가 발달하면서 도매시장 기능이 약화됐다. 그럼에도 아직 중앙시장은 원주의 중심지이고 사람들의 오가는 발길 속에 따뜻한 정이 묻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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