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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작성일 2024.03.02 조회수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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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동(盤谷洞)
작성자 관리자
[위치]
반곡동은 원주시청에서 남동쪽으로 약 6㎞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치악산 줄기를 경계로 판부면 금대리, 서쪽으로는 원주천을 경계로 하여 단구동, 남쪽으로는 관설동, 북쪽으로는 행구동과 접하고 있다.
[연혁]
원래 원주군(原州郡) 부흥사면(復興寺面) 이리(二里)・삼리(三里)・사리(四里)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만・월운정・후동・삼보동・한가터・방묘동(方畝洞)을 병합하여 반곡리(盤谷里)라 하여 판부면(板富面)에 편입되었다.
1955년 원주읍(原州邑)이 원주시(原州市)로 승격할 때 원주군이 원성군(原城郡)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원성군 판부면 반곡리가 되었다.
1973년 원주시에 편입되어 원주시 반곡동이 되었다.
[유래]
지형이 소반처럼 생겼다고 하여 반곡(盤谷)이라 하였다.

[지명]
가래실산 [산]
[위치] 서리실 북동쪽에 있는 높이 211.1m, 205.5m, 223.5m, 206.6m 등 200m급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을 말한다.
[유래] 골짜기가 여러 갈래로 많이 갈라져 있으므로 가래실산이라 하였다.
[내용] 이 산은 반곡동 혁신도시 지구의 넓은 지역에 걸쳐 있는, 이곳을 대표하는 산이다. 산의 줄기가 동쪽으로는 봉대를 거쳐 치악산 줄기에 닿고 북쪽으로는 오리현천, 남쪽으로는 입춘내에 이른다. 반곡동 전체가 혁신도시로 개발되며 지형이 크게 변형되었지만 이 산은 현재 가래실공원으로 남아있다.
[풀이] ‘가래’는 ‘갈래(分)’의 옛말이며 ‘실’은 골짜기를 뜻한다. 이 산이 봉우리가 뚜렷하지 않고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흩어져 골짜기가 많으므로 ‘골짜기가 여러 갈래로 많이 갈라진 산’의 뜻으로 붙여진 지명이다.

개구리봉 [산]
[위치] 오리현 남쪽, 옛 봉대초등학교 북쪽 사이에 있는 낮은 언덕을 말한다. 현 대사관 식당 앞으로 봉대길이 나 있는 곳이다.
[유래] 고개 모습이 마치 개구리가 엎드린 모습이므로 개구리봉이라 부른다.

개구리재 [고개]
[위치] 옛 봉대초교에서 북쪽으로, 오리현을 향해 난 개구리봉의 낮은 고개를 말한다. 현 오리현2교 쪽으로 봉대길이 나 있는 곳이다.

개웅정보 [보]
[위치] 버들만이 앞 개웅지들에 있는 원주천의 보(洑)를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개웅정보’라 하였다.

개웅지들 [들]
[위치] 버들만이 마을에서 남쪽 원주천에 이르는 넓은 들을 말한다. 오향골 아래, 원서터들 북쪽에 있다. 남동쪽으로는 구술골이 이어진다. 개웅지들과 원서터들 중간으로 동부순환로가 지나고 있다.

갱골 [골]
[위치] 반곡역 철도관사에서 남동쪽으로, 반곡봉을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진골 남쪽, 검은골 북쪽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 중간에서 검은골이 갈라져 나간다. ‘행골’이라고도 한다.

거란지골 [골]
[위치] 삼보골 양지담에서 북서쪽 구시울골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거문골(黑門洞) [골] → 검은골

건너들 [들]
[위치] 오리현과 봉대 사이에 있는 들을 말한다.
[내용] 개울 건너에 있다고 하여 건너들이라고 한다.

검디버덩 [골]
[위치] 한가터 북동쪽, 향로봉 아래 아홉모래 중의 한 골짜기를 말한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내용] 주민들이 나무를 하고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던 아홉모래 중의 한 곳으로, 들이 넓다고 한다.

검은골 [골]
[위치] 갱골 중간에서 남동쪽으로, 반곡봉을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미력골 북쪽에 있다. ‘거문골’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거문골(黑門洞)’이라고 하였다.
[내용] 뒷골 마을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36명의 명의로 매입한 골짜기라 한다.

고대나무골 [골] → 고지나무골

고래실 [들]
[위치] 심묵골의 다른 이름이다.
[유래] 수렁논이었으므로 고래실이라 하였다.

고지나무골 [골]
[위치] 한가터 서쪽, 풍열이골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간 골짜기를 말한다. ‘고대나무골’이라고도 하다.

공동묘지골 [골]
[위치] 구술골 끝에서 동쪽으로 난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현 영서고등학교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 골짜기 위에 버들만이 공동묘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술골 [골]
[위치] 반곡동 개웅지들 위에서 남쪽으로, 현 영서고등학교 뒤편까지 이어진 골짜기를 말한다. 골짜기 끝에서 동쪽으로 공동묘지골이 이어진다.
[유래] 골짜기 형상이 ‘구시(구유)’처럼 우묵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구시올골 [골] → 구시울골

구시울 [골] → 구시울골

구시울골 [골]
[위치] 반곡동 뒷골 공동묘지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버덩말골 서쪽, 거란지골 북쪽에 있다. 현 버들초등학교 남쪽 5번 도로가 난 곳이다. ‘구시올골’, ‘구지올’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구시울(求是洞)’이라 하였다.
[유래] 골짜기 형상이 ‘구시(구유)’처럼 우묵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구용골 [골]
[위치] 한가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구지올 [골] → 구시울골

금두산성(金頭山城) [성]
[위치] 향로봉 남서쪽, 행구동 보문사 앞 산줄기와 반곡동, 판부면 금대리 금두고원에 걸쳐 있는 옛산성을 말한다.
[유래] 금대리 뒤, 금두계곡 위에 있으므로 금두(金頭)산성, 금후(金後)산성이라 하였다.
[내용] 이 성은 금대산성(金臺山城), 금두산성(金頭山城), 금후산성(金後山城)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성과 해미산성의 이름이 혼동되고 있으나 이 성은 금대리 뒤에 있다고 하여 ‘금후산성’, ‘금두산성’, 또는 ‘금대산성’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
대리에서 성으로 올라오는 계곡이 ‘금두계곡’이며 성의 안쪽에 ‘금두고원(치악평전)’이 있고 성의 동쪽에는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의 ‘금두골’이 있기 때문이다. ‘두(頭)’는 ‘뒤’의 소리를, ‘후(後)’는 ‘뒤’의 뜻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 성의 축조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축조 방식이나 유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축이 남아있으나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고 남쪽 완만한 경사지에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기록에는 물을 막아 수공작전을 썼다고도 하나 지대가 높아 물이 귀하므로 믿을 수 없다. 남쪽으로는 영원산성 쪽이 잘 보인다. 성 안에는 금두고원(치악평전)으로 불리는 평탄지대가 있고, 성터에서 와편과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금두재 [고개]
[위치] 한가터 오양골에서 동쪽으로, 금두산성으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조선지지자료〗에 ‘금두(金頭嶺)’라 하였다.

길아재 [고개] → 길아치

길아재봉 [산] → 길아치봉

길아치 [고개]
[위치] 한가터에서 남동쪽으로, 한가터골과 널목재골을 지나 금대리 일론으로 넘어가는 긴 고개를 말한다. 고개 높이는 650m이다. ‘길아재’, ‘질아재’, ‘질아치’, ‘널목재’, ‘늘목재’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길아치(吉峨峙)’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길아치(吉峨峙)’라 하였다.
[풀이] ‘길+(ㅏ)+치>길아치>질아치’, ‘길+(ㅏ)+재>길아재>질아재’가 되었다. ‘길’은 길다는 뜻이고 ‘치’와 ‘재’는 고개를 뜻하며 ‘ㅏ’는 매개모음이다. ‘길>질’은 구개음화에 따른 변화이다.

길아치봉 [산]
[위치] 한가터 남동쪽, 널목재골 끝에 있는 724.3m 높이의 봉우리를 말한다. 봉우리 서쪽 아래에 길아치가 있고 동쪽 급경사 아래에는 금대리 금두계곡이 있다. ‘길아재봉’이라고도 한다.

널목이 [마을]
[위치] 널목재골 입구에 있던 마을이다. 〖조선지지자료〗에 ‘늘목이(乻目里)’라고 하였다.

널목재 [고개] → 길아치

널목재골 [골]
[위치] 한가터골 끝 널목이에서 선바우골과 갈라져 남쪽으로, 길아치가 있는 673.8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조선지지자료〗에 ‘늘목이(乻目嶺)’라고 하였다.

노가지골 [골]
[위치] 삼보들에서 남서쪽으로 난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늘목이(乻目里) [마을] → 널목이

늘목재 [고개] → 길아치

다락골 [골]
[위치] 한가터 터골에서 남동쪽으로 721m 봉을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횟골 남쪽 위, 널목재골 북쪽 아래에 있다.
[유래] 다락바우가 있어서 다락골이라고 하였다. 또는 다래나무가 많아 다락골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다락바우 [바위]
[위치] 한가터 다락골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덩말골 [골]
[위치] 구시울골에서 동쪽으로, 뒷골 음달말을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현 버들초등학교 동쪽, 삼보공원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둔지들 [들]
[위치] 원서터들 서쪽에 붙어 있는 들을 말한다. 현 관설동 화훼단지에서 원주천 건너 동쪽에 있는 들이다. 원주천에서 북쪽으로 개웅지들과 연결된다. 둔지들과 원서터들 사이로 외곽순환도로가 나 있다.

뒷골(1) [골]
[위치] 반곡동 뒷골 마을이 있던 골짜기를 말한다. 삼생이골에서 동쪽 반곡역에 이르는 골짜기로, 현 보배사거리 동쪽 도로와 뒷골공원이 있는 지역이다.

뒷골(2) [골]
[위치] 입춘내 개울의 삼생이골 맞은편에서 가래실산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말한다. 현 미리내사거리에서 양지뜰삼거리에 이르는 지역이다.
[내용] 이 골짜기는 논밭이 형성되어 있었고 가래실산을 넘는 길이 나 있었다. 현재 산 너머의 안골을 거쳐 양지배울로 이어지는 양지로가 나 있다.

뒷골 [마을]
[위치] 봉대 남쪽, 반곡역 서쪽 아래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외둔지들에서 반곡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던 마을이다. 현 위치는 반곡역 서쪽 아래 달마중길을 중심으로 한 마을, 보름달어린이공원, 삼보공원, 뒷골공원지역이다. 한자로 적어 ‘후동(後洞)’이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뒤(後洞)’이라고 하였다.
[유래] 마을이 반곡동의 동쪽, 골짜기 먼 뒤쪽인 입춘내 상류에 있으므로 ‘뒷골’이라 하였다.
[내용] 입춘내는 외둔지들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뱅이둑’으로, 다른 하나는 반곡역이 있는 쪽으로 물줄기의 뿌리를 두고 있는데 반곡역 쪽의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논밭이 형성되고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이를 ‘뒷골’이라고 불렀다. ‘뒷골공원’에 마을 이름을 남겼다.

뒷골성황당 [당]
[위치] 옛 뒷골교에 있던 성황당을 말한다.
[내용] ‘城隍之神’이라는 위패가 있었으며 1930년대까지 고사를 지냈다.

띠아골 [골]
[위치] 한가터골 중간에서 남서쪽으로, 506.4m 높이의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띠아골 동쪽 건너에 무심정골이 있다.

마장골(麻場-) [골]
[위치] 봉대교 동쪽, 봉대마을의 북동쪽에 있다.
[내용] 삼베를 많이 재배해서 마장골이라고 한다.

무네미 [마을]
[위치] 무네미저수지 옆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무네미저수지 [못]
[위치] 한가터에 있는 저수지로 한가터골 신선천의 물을 모은다. 행구동과 경계가 되는 곳이다. ‘한가터저수지’, ‘신선낚시터’라고도 한다.
[내용] 1940년에 준공하였다.

무래울골 [골]
[위치] 원주천과 오리현천이 합류하는 현 반곡교에서 남동쪽으로, 인터불고호텔 북쪽과 동쪽의 가래실산으로 이어지는 넓은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물이 나오는 골짜기이므로 무래울이라 하였다.
[내용] 이 골짜기의 상류는 현재 인터불고호텔의 골프장 전체를 거쳐 가래실산 중앙으로 우묵하게 들어가 있다. 골짜기의 하류에는 반곡블루밍1차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남동쪽으로 인터불고호텔, 골프장, 가래실산으로 이어져 있다. 반곡중학교 앞 ‘무래울사거리’에 이름을 남겼다.
[풀이] ‘무래울’은 문막의 ‘무내기’나 무실동의 ‘물실>무실’과 같이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물(ㅐ)울>물애울>무래울’이 되었다. ‘울’은 ‘골・마을’을 뜻한다. ‘물골’ 또는 ‘물이 나오는 골짜기’의 뜻이다.

무심정골 [골]
[위치] 한가터골에서 동쪽으로, 480.1m 봉을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띠아골과 마주보고 있다.

물여울 [마을] → 입춘내

미력골 [골]
[위치] 음달말 동쪽 웃골 끝에서 남동쪽으로, 높이 484.3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반곡역 남동쪽, 검은골 남쪽에 있다.

반곡(盤谷) [마을] → 반곡리
[위치] 지금의 반곡동 전체 지역을 말한다. ‘반곡리’, ‘반곡동’이라고 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반곡리(반곡, 반곡동, 이리)’라 하였다.
[유래] 지역이 소반처럼 생겼다하여 반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반곡동(盤谷洞) [마을] → 반곡리

반곡봉(盤谷峰) [산]
[위치] 반곡역 남동쪽, 한가터 남서쪽에 있는 높이 506.4m의 봉우리를 말한다. 진골과 갱골, 검은골, 한가터의 호랑바우골이 모두 이 봉우리를 향하고 있다.

반곡역(盤谷驛) [역]
[위치] 뒷골 동쪽 위에 있는 옛 중앙선 철로의 역을 말한다.
[내용] 일제강점기인 1941년에 치악산의 벌목운반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지방 역사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근대의 서양 목조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이 장악하여 격전을 치룬 곳이기도 하다. 영업이 개시된 1941년부터 산간지역인 이 지역의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밤나무골 [골]
[위치] 한가터골의 현 정주사에서 남쪽으로, 높이 572.5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띠아골 남쪽 위에 있는 골짜기이다. ‘밤산골’이라고도 한다.

밤산골 [골] → 밤나무골

방묘동(方畝洞) [마을] → 뱅이둑

방묘천(方畝川) [내] → 뱅이둑천

방이두둑 [마을] → 뱅이둑

배나무골 [마을] → 배울

배나무골고개 [고개]
[위치] 배울에 있던 고개 이름이다. 현재 위치는 알 수 없다. 〖조선지지자료〗에 ‘나무골고(梨木洞峴)’라 하였다.

배마을 [마을] → 배울

배물 [마을] → 배울

배울 [마을]
[위치] ‘영냉이들’을 중심으로 오리현천 좌우에 있는 마을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주로 현재의 영랑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양지배울까지의 주변 마을을 말한다. ‘배나무골’, ‘배마을’, ‘배물’, ‘이곡(梨谷)’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울(梨谷)’이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배울(이곡)’이라 하였다.
[유래] 배나무가 많았으므로 배울이라 하였다.

배울들 [들]
[위치] 입춘내 음달말 서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입춘앞들과 무래울골의 북쪽, 영냉이들 남쪽 오리현천 건너에 있는 들이다. 현 벽산블루밍2차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뱅이 [마을] → 뱅이둑

뱅이두둑 [마을] → 뱅이둑

뱅이두둑들 [들]
[위치] 뱅이두둑 앞에 있던 들을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뱅이두둑들’이라 하였다.

뱅이두둑저수지 [못] → 뱅이둑저수지, 봉대저수지

뱅이둑 [둑]
[위치] ‘뱅이들’ 남쪽에 있던 뱅이둑천의 둑을 말한다.
[유래] 입춘내 상류 뱅이둑천의 물을 막기 위해 둑을 쌓고 그 위 둔덕에 밭농사를 지었는데 이 둔덕의 이름 ‘뱅이둑’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뱅이둑 [마을]
[위치] 한가터 및 반곡동 동쪽 깊은 골짜기에 있던 마을로 봉대 남서쪽, 한가터저수지 서쪽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현 금두생태통로 남서쪽, 금두삼거리와 황금사거리, 뱅이둑사거리에 이르는 주택지역에 있던 마을이다. 마을 안에 ‘웃담’과 ‘아랫담’이 있었다. ‘방이두둑’, ‘뱅이’, ‘뱅이두둑’이라고도 하였다. 이를 한자로 적어 ‘방묘동(方畝洞)’이라고 하였다. ‘뱅이둑사거리’와 ‘뱅이둑수변공원’에 마을 이름을 남겼다. 〖조선지지자료〗에 ‘방이두둑(方畝)’이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방
묘동(方畝洞, 뱅이두둑)’이라 하였다.
[유래] 하천 옆에 둑을 쌓아 ‘뱅이둑’이라 하였는데 이 이름이 곧 마을 이름이 되었다. 입춘내 상류지역인 뱅이둑천 주변에 화전민들이 살면서 산과 버덩을 개간하여 밭농사를 주로 하였는데 두두룩한 밭이 둥그런 둔덕처럼 보여서 ‘뱅이두둑’이라 하였다.
[풀이] 이곳에는 ‘방이, 뱅이, 뱅이둑, 뱅이두둑, 버덩이, 버둥이’ 등의 지명이 전한다. ‘뱅이’는 ‘방이’가 ‘ㅣ’모음 역행동화를 일으켜 ‘뱅이’가 된 것이므로 ‘방이두둑’의 어원은 ‘방둑(防川)’이다. 방천에 둑을 쌓고 두둑한 둔덕에 농사를 지었으므로 ‘방둑’, ‘방이두둑’이라 하였다. 원 지명에 나타나는 ‘버덩’, ‘버둥이’는 둔덕, 두덕과 같은 뜻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방이두둑’이라 하고 한자로 ‘방묘(方畝)’라고 기록하였다. ‘方’은 ‘방이’, ‘뱅이’의 소리를 취한 것이며 ‘畝’는 밭두둑, 밭이랑이라는 뜻을 적은 것이다. 즉 ‘방이+두둑>방이두둑>뱅이두둑, 뱅이둑’으로 변천하여 온 것으로 풀이된다. ‘방둑’의 의미를 지닌 ‘방이두둑’이 ‘뱅이둑’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정착되었고 행정명으로는 ‘방묘동(方畝洞)’이라 하였다.

뱅이둑저수지 [못] → 봉대저수지
[위치] 봉대 마을 남서쪽, 뱅이둑 북쪽 아래에 있던 저수지를 말한다. ‘봉대저수지’라고도 한다. 혁신로의 봉두생태통로가 난 곳이다. 〖한국지명총람〗에 ‘뱅이두둑저수지’라 하였다.

뱅이둑천 [내]
[위치] 입춘내의 상류로, 한가터 남쪽에서 뱅이둑으로 흐르는 내를 말한다. 주변에 외둔지들과 뱅이들이 있다. ‘방묘천(方畝川)’이라고도 한다. 현 ‘뱅이둑수변공원’으로 조성되어 이름을 남겼다.

뱅이들 [들]
[위치] 뱅이둑 남동쪽에 있던 들을 말한다. 웃담 서쪽 아래에 있던 들이다. 들 아래에 현 금두삼거리 남동쪽의 강원혁신B1블록이 예정되어 있다.

버덩말골 [골]
[위치] 반곡동 구시울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현 반곡교차로 지역이다.
[내용] 버덩말골은 삼생이골로 이어져 입춘내와 외둔지들에 이른다. 서로 이어지는 이 두 골짜기에 도로가 넓게 개설되었다.

버덩이 [들]
[위치] 뱅이둑 마을 남서쪽에 있던 들을 말한다. 현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있는 지역이다. ‘버둥이’라고도 한다.

버둥이 [들] → 버덩이

버드만이 [마을] → 버들만이

버들만 [마을] → 버들만이

버들만이 [마을]
[위치] 반곡동 남서쪽 원주천 상류 변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 버들만이삼거리를 중심으로 하여 혁신도시 남단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버드만이’, ‘버들만’이라고도 한다. 이를 한자로 적어 ‘유만동(柳灣洞)’이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유만동(柳灣洞, 버들만)’이라고 하였다.
[유래] 강변에 버드나무가 많았으므로 ‘버들만이’라 하였다.
[내용] 마을 동쪽으로는 원주천이 흐르고 마을과 원주천 사이에 들이 넓게 형성되었다. 1910년대〖조선지지자료〗에 마을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지명이 나타나 있어서 지명만 있었거나 작은 마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경에 약 15호, 한국전쟁 직후는 약 30호, 2000년대에는 110호가 살았다고 한다. 마을 안에 ‘웃담(웃만이)’, ‘중간담’, ‘아랫담(아랫만이)’이 있다. 웃만이는 대부분 혁신도시 지역에 편입되었다.

버들만이들 [들]
[위치] 버들만이 마을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버들만이들’이라 하였다.

버들만이성황당 [당]
[위치] 버들만이에 있던 성황당을 말한다. 옛 반곡관설동주민센터 옆 둑에 있던 당집으로 현 동부순환로의 동부교 남동쪽 둑에 있었다. ‘유만동서낭당’이라고도 한다. 〖한국지명총람〗에 ‘유만동서낭당’이라 하였다.
[내용] 수령 약 200년의 갈참나무와 두 그루의 큰 소나무를 당목으로 삼은 당집이었다. 매년 음력 10월 초순에 마을의 평안을 위해 성황고사를 지냈다. 마을 전체가 혁신도시에 편입되어, 당목이었던 갈참나무와 소나무 한 그루는 웃만이소공원 이식하였으나 갈참나무는 고사하고 소나무만 살아 있다.

벌말 [마을]
[위치] 삼보골 마을 중 남쪽 삼보들에 있는 집성촌을 말한다. 삼보골저수지 북서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봇들논 [들]
[위치] 서리실 앞 개울가에 있던 논을 말한다. 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있는 자리이다.

봉대(鳳垈) [마을]
[위치] 오리현 남쪽, 한가터 북서쪽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옛 봉대초등학교가 있던 마을로 현재 마을은 거의 다 혁신도시 지구에 편입되었다. ‘봉두(鳳頭)’, ‘봉터’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봉터(鳳垈)’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봉두(鳳頭, 봉대鳳垈)’라 하였다.
[유래] 황새쟁이들 주변으로 마을에 황새들이 많이 왔으므로 ‘봉터>봉대’라 하였다. 또는 마을의 형상이 봉황이 내려앉은 모습이라고 하여 ‘봉터>봉대(鳳垈)’, 지형이 봉황(부엉이)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봉두(鳳頭)’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대체로 ‘봉
(鳳)’이 들어간 지명은 부엉이, 또는 황새와 연관되어 있다.
[내용] 옛날에는 뱅이둑, 한가터와 함께 원주의 오지였으나 서리실, 뒷골, 뱅이둑 등이 혁신도시로 지정됨에 따라 뱅이둑 북쪽의 봉대도 혁신도시에 편입되었다. 봉대초등학교가 원래의 자리에서 북서쪽 황새쟁이들로 옮겨가고 마을은 혁신도시 외곽지역으로 남아있다. 혁신도시에 ‘봉황사거리, 봉황길, 봉두공원, 봉황소공원, 둥지어린이공원, 봉두생태통로, 둥지생태통로’ 등에 마을 이름과 관련된 지명을 남겼다.

봉대골 [골]
[위치] 오리현에서 남동쪽으로, 한가터 아래에 이르는 골짜기를 말한다. 봉대천이 흐르는 골짜기이다.

봉대들 [들]
[위치] 봉대 마을 북서쪽, 봉대 마을과 봉대천 사이의 들을 말한다. 〖조선지지자료〗에 ‘봉들(鳳坮坪)’이라고 하였다.

봉대성황당 [당]
[위치] 봉대에 있는 성황당을 말한다. 마장골 동쪽, 철길 아래 소나무 당숲에 있다.
[내용] 치악산신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당고사를 지낸다. 10여 년 전에 폐지되었다.

봉대저수지 [못]
[위치] 봉대 마을 남서쪽, 뱅이둑 북쪽에 있던 저수지를 말한다. 현 혁신로의 봉두생태통로가 난 곳이다. ‘뱅이둑저수지’라고도 한다. 〖한국지명총람〗에 ‘뱅이두둑저수지’라 하였다.

봉대천(鳳岱川) [내]
[위치] 향로봉 남서쪽에서 시작하여 한가터, 무네미저수지, 봉대를 지나 오리현 마을 앞에서 오리현천에 합류하는 내를 말한다. 원주혁신도시의 북쪽 경계선으로 행구동과 경계를 이룬다. ‘신선천(神仙川)’이라고도 한다.
[유래] 봉대(鳳垈)를 지나므로 봉대천이라 하였다.

봉두(鳳頭) [마을] → 봉대

봉터 [마을] → 봉대

비득골 [골]
[위치] 한가터골의 오양골 남동쪽 위에서 남서쪽으로 높이 447.3m의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산제당골 [골]
[위치] 한가터와 뱅이둑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산신제를 지내는 산제당이 있었으므로 산제당골이라고 하였다.

산제당폭포 [폭포]
[위치] 산제당골 입구에 있는 폭포를 말한다.

삼보골 [골]
[위치] 삼보골 마을 양지담에서 동쪽으로, 중앙선 철로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삼보골(三寶-) [마을]
[위치] 버들만이 남동쪽, 뒷골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동쪽은 중앙선 철로와 치악산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관설동 섭재로 이어진다. 마을에 ‘벌말’과 ‘양지담’이 있다. ‘삼보동’, ‘삼복골’, ‘삼부골(三富-)’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삼보(三宝洞)’이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삼보동(三寶洞, 삼보골)’이라고 하였다.
[유래] 이곳에는 세 가지 보물(좋은 산, 좋은 물, 좋은 인심)이 있으므로 ‘삼보골’, 부자가 세 집이 살았기 때문에 ‘삼부골(三富-)’이라 한다고도 한다. 주민들은 대개 ‘삼부골’로 부른다.

삼보골고개 [고개]
[위치] 뒷골에서 삼보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조선지지자료〗에 ‘삼부골고(三富洞峴)’라고 하였다.

삼보골저수지 [못]
[위치] 삼보골 마을 남쪽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삼보들에 물을 댄다. 남쪽에 섭재저수지가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삼보동저수지’라 하였다.

삼보동(三寶洞) [마을] → 삼보골

삼보동저수지 [못] → 삼보골저수지

삼보들 [들]
[위치] 삼보저수지에서 북서쪽 아래로 난 들을 말한다. 벌말 서쪽과 북쪽으로 펼쳐진 들이다.

삼복골 [골] [마을] → 삼보골

삼부골 [마을] → 삼보골

삼부골고개 [고개] → 삼보골고개

삼생이골 [골]
[위치] 외둔지들 남서쪽, 버덩말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뱅이둑에서 내려온 물과 뒷골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남쪽으로 난 골짜기이다. 남쪽 고개 너머에 버덩말골이 있다. 현 삼생교에서 삼생사거리에 이르는 도로가 나 있다. 혁신도시 안 삼생교, 삼생사거리 등에 이름을 남겼다.

서리실 [마을]
[위치] 가래실산의 서남쪽 기슭, 현 인터불고호텔의 정남향 아래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마을이 혁신도시에 모두 편입되고 서리실사거리에 이름을 남겼다. 〖조선지지자료〗에 ‘셔리실(盤谷)’이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서리실’이라 하였다.
[유래] 가래실산의 산봉우리 아래에 있으므로 ‘수리실>서리실’이라 하였다. 배나무와 오얏이 많아서 서리실이라 하였다고도 하나, 이는 한자로 쓴 서리실(瑞李實)을 다시 해석한 것으로 원래의 이름과는 관련이 없다.
[내용] 마을 북쪽으로 가래실산을 등지고 있고 남쪽 앞에는 입춘내가 흐른다. 마을은 모두 혁신도시에 편입되어 마을 가운데로 도로가 나고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반곡관설동행정복지센터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들어서 있다. 마을 옆 서리실사거리에 마을 이름을 남겼다.
[풀이] 서리실을 한자로 ‘서리실(瑞李實)’로 쓰면서 ‘배나무와 오얏이 많아서’라고 하였으나 ‘실’은 골짜기를 뜻하는 고유어이다. 골짜기를 뜻하는 ‘실’을 과일을 뜻하는 ‘실(實)’로 쓴 결과 그 앞에 쓴‘리(李)’를 오얏 또는 같은 발음의 배나무(梨)로 설명하였다.
서리실은 ‘서리+실>서리실’인데 이때 ‘실’은 골짜기 또는 골짜기의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골’과 함께 널리 쓰이는 지명소이다. ‘서리’는 ➀‘수리’에서 음운 변화한 것, ➁겨울의 서리(霜), ➂‘사이, 가운데’를 뜻하는 옛말인 ‘서리’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➁의 경우 ; 서리(霜)와 관련된 지명 또는 유래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마을의 위치나 지형으로 보아 서리와는 거리가 멀다. ➂의 경우 ; ‘서리’는 ‘사이, 가운데’를 뜻하는 옛말이다. 반곡동은 입춘내를 중심으로 한 골짜기에 크게 세 개의 마을이 발달하여 있었다. 입춘내 상류에 뱅이둑과 뒷골, 입춘내 하류에 입춘내 마을, 그리고 서리실은 입춘내를 따라 그 중간에 있었으므로 서리실을 ‘사이에 있는 마을’, ‘가운데 마을’로 인식했을 수 있다. ➀의 경우 ; 서리실은 가래실산을 북쪽으로 등지
고 남쪽에는 입춘내를 내려다보는 양지바른 곳에 있던 마을이다.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서리실을 ‘수려한 봉우리 밑’이라고 하여 가래실산을 수려한 산봉우리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주민들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가래실산을 수리봉으로, 그 아래 골짜기를 수리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판부면 서곡리가 수리봉 아래에 있었으므로 ‘수리실’로 불리다가 ‘수리실>서리실>서곡(瑞谷)’으로 정착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서곡리의 ‘서(瑞)’와 서리실의 ‘서(瑞)’가 일치하는 것도 그것이 같은 어원을 가졌음을 뜻한다. 이때 ‘수리’는 가장 높은 곳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수릿날, 정수리, 독수리 등에 남아있다. ‘수리’는 ‘술・수리, 설・서리, 솔・소리’ 등으로 실현되어 수레너미, 수리봉(매봉, 응봉), 솔개, 솔치, 소리개, 소리재 등의 지명을 낳았다. 따라서 서리실은 가래실산을 높은 산이란 뜻으로 ‘수리봉’이라 보고 그 아래 골짜기를 수리실이라 하였으며, 그것이 음운 변천하여 ‘수리실>서리실’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선녀바우 [바위] → 선바우
[위치] 선바우골 정상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선바우’의 다른 이름이다.
[유래] 옛날 한가터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길동이와 선녀라는 남매가 있었다. 무척 가난하여 산나물로 연명을 하다가 어머니가 병들어 눕고 말았다. 약 한 첩 써보지 못한 남매가 울고 있을 때 길을 지나던 노승이 33가지의 약초를 구해 먹이면 나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남매는 32가지의 약초는 구했으나 바위 위에서만 자란다는 모연실이라는 약초는 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선바우 위에 있는 모연실을 보고 올라갔으나 그것은 모연실을 닮은 다른 풀이었다. 남매는 실망하여 그만 벼랑에서 떨어지고 말았는데 길동이는 선녀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살았고 선녀만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는데, 딸 선녀를 못 잊어 매일같이 바위에 가서 울다가 죽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선바우를 선녀바우라고 불렀다.

선바우 [바위]
[위치] 선바우골 정상 능선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선녀바우’라고도 한다.

선바우골 [골]
[위치] 한가터골 끝에서 널목재골과 갈라져 남서쪽 574.9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풍열이골 남쪽에 있다. 골 남서쪽 산 너머로 관설동 큰숯둔골로 이어진다. ‘큰선바우골’과 ‘작은선바우골’이 있다.
[유래] 골짜기 위 정상 능선에 큰 바위가 서 있으므로 선바우골이라고 한다.

솔무정 [마을]
[위치] 개구리봉이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오리현과 뱅이두둑 사이의 나즈막하고 좁은 능선이 마치 큰 구렁이가 구불거리며 개구리봉을 향해 입을 벌리고 쫓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솔무정이라 한다. 솔무정은 양지바르고 아늑하여 살기 좋으나 지형이 구렁이가 개구리를 삼켜버리는 형국이므로 재산을 모을 수 없어 곧 망한다고 한다.

수박골 [골]
[위치] 검은골 위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검은골을 지나 나무를 하러 다니던 골짜기이다.

수원지들 [들]
[위치] 입춘내 마을 서쪽, 입춘앞들 서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현 원주반곡아이파크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 있다.

신선낚시터 [못] → 무네미저수지

신선천(神仙川) [내] → 봉대천

신월운정(新月雲亭) [마을]
[위치] 월운정 북쪽, 입춘내 남서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월운정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실봉 [산] → 소초면 학곡리 비로봉
[내용] 치악산 비로봉의 다른 이름이다. 이곳에서 는 비로봉을 ‘시루봉’, ‘실봉’이라 하였다.

심묵굴 [들]
[위치] 서리실 아래에 있던 들을 말한다. ‘고래실’이라고도 한다.

아랫담 [마을] → 아랫만이

아랫만이 [마을]
[위치] 반곡동 버들만이 마을 중 서쪽 아래, 원주천 옆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아랫담’이라고도 한다.

아홉고개 [골] → 아홉모래

아홉골 [골] → 아홉모래

아홉모래 [고개] [골]
[위치] 향로봉 아래에 있는 아홉골, 아홉고개를 말한다.
[내용] 한가터 사람들이 향로봉 쪽으로 햇동재를 지나 나무를 하고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던 골짜기들이다. 산과 골이 아홉 개라는 뜻으로 ‘탑산거리’, ‘검디버덩’ 등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아홉골’,‘아홉고개’라고도 한다.
[풀이] ‘아홉모래’를 ‘아홉고개’, ‘아홉골’이라고도 하므로 ‘모래=고개=골’, 즉 여기에서의 ‘모래’는 산(고개)을 뜻하는 옛말 ‘몰’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몰’은 단계동의 ‘모래내’, 관설동・귀래리・운남리・신평리 등의 ‘모래재’에 남아있다.

안골(1) [골]
[위치] 음달배울 앞 앞산들에서 남쪽으로, 가래실산 서쪽을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안골(2) [골]
[위치] 황새쟁이들 가운데에서 남쪽으로, 가래실산 사이를 지나가는 긴 골짜기를 말한다. 고개 남쪽 너머는 가래실산 남쪽의 뒷골이다. 현재 이 골짜기를 따라 오리현천교 앞 교차로에서 남쪽으로 황새쟁이사거리를 지나 안골생태통로에 이르는 양지로가 나 있다.
[내용] 골짜기 끝에 해당하는 곳에 안골생태통로가 설치되어 이름을 남겼다.

암물 [샘]
[위치] 음달배울에 있던 샘을 말한다. 물이 하얬다고 한다.

앞산들 [들]
[위치] 영랭이들 남동쪽, 오리현천 건너에 있는 들을 말한다. 이 들에서 가래실산으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안골(1)이며 동쪽으로는 황새쟁이들이 이어진다.

양지담 [마을]
[위치] 삼보골 마을 중 북쪽 삼보골 골짜기 아래 양지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연애골 [골] → 혼인골

열녀문(烈女門) [정문]
[위치] 뒷골에 있던 최씨의 열행을 표창한 정문을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열녀문(烈女門)’이라 하였다.

영랑천(永浪川) [내] → 오리현천

오리현천(梧里縣川) [내]
[위치] 향로봉에서 시작하여 보문사, 국형사가 있는 고문골을 거쳐 오리현에서 봉대천을 합류하고 너르내에서 화천에 합류하는 내를 말한다. 행구동과 반곡동의 경계가 되는 내이다. ‘영랑천’이라고도 한다.
[유래] 이 내를 영랭이 앞을 흐르므로 ‘영랑천’으로 부르기도 하고 오리현 앞을 지나므로 ‘오리현천’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양골 [골]
[위치] 한가터골, 무네미저수지 남동쪽 위에서 동쪽으로, 향로봉을 향하여 난 골짜기이다.
오양골폭포 [폭포]
[위치] 오양골 입구에 있는 높이 약 15m의 폭포를 말한다. 오양골 입구 카페 그란지 북서쪽 계곡에 있다.

오향골 [골]
[위치] 개웅지들에서 북동쪽 버들만이 마을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현 버들만이삼거리 지역이다.

왕상목들 [들] → 왕성목들

왕상목저수지 [못] → 왕성목저수지

왕성목들 [들]
[위치] 버들만이 북동쪽, 왕성목저수지 서쪽 아래에 있던 들을 말한다. 현 진대울삼거리 동쪽 도로교통공단본부가 있는 곳이다. 〖한국지명총람〗에 ‘왕상목들’이라고 하였다. 왕성목소공원에 이름을 남겼다.

왕성목저수지 [못]
[위치] 버들만이 북서쪽에 있던 저수지를 말한다. 왕성목들에 물을 댔다. 현 도로교통공단본부가 있는 곳이다. 〖한국지명총람〗에 ‘왕상목저수지’라 하였다.

왕성묘지골 [골]
[위치] 반곡동 버들만이 아랫담 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현 왕성목소공원과 LH3단지아파트에 있던 골짜기이다.

외둔지들 [들]
[위치] 뱅이둑에서 내려오는 입춘내 양 옆에 있던 들을 말한다. 뱅이들 아래쪽에서 시작하여 두 물줄기가 합수되는 삼생이골에 이르기까지의 넓은 들
이다. 현 두물삼거리를 중심으로 하여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다.

웃골 [골]
[위치] 반곡역 남쪽의 음달말에서 남동쪽으로 난골짜기를 말한다. 골짜기 위로 미력골이 이어진다.

웃담(1) [마을]
[위치] 뱅이둑 마을 중 동쪽 높은 곳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뱅이들 동쪽 위에 있던 마을이다. 위치는 현 금두삼거리 동쪽, 강원혁신B1블록 예정지구이다.

웃담(2) [마을] → 웃만이

웃만이 [마을]
[위치] 버들만이 마을에서 남서쪽 위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현 웃만이소공원 자리에 있던 마을이다. ‘웃담’이라고도 한다. ‘웃만이소공원’에 이름을 남겼다.

원서터들 [들]
[위치] 반곡동 개웅지들 남쪽 원주천 동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현 버들만이삼거리 남쪽, 옛 반곡관설동주민센터 동쪽과 남쪽에 펼쳐져 있던 넓은 들이다. 현재 복합시설단지가 들어서 있다.

월운정(月雲亭) [누정]
[위치] 반곡동 38사단 안, 앞동산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유래] 1970년 38사단장 최모 준장이 옛 월은정 터에 남아있던 주초석을 이용해 정자를 짓고 월운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월운정(月雲亭) [마을]
[위치] 입춘내 남쪽, 단구동 옛 관터에서 봉천 건너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월운정(月雲亭)’이라 하였다.
[유래] 옛날 단구동 홍판서의 소실인 월은(月隱)이라는 기생이 놀던 정자 월은정(月隱亭)이 있었으므로 ‘월은정>월운정’이 되었다.
[내용] 질그릇, 문창호지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자기 공장이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입춘내에도 옹기공장이 있었다.

월운정둑 [둑]
[위치] 월운정 마을 앞에 있는 원주천의 둑을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월운정제방’이라고 하였다.

월운정보 [보]
[위치] 월운정 마을 앞에 있는 원주천의 보(洑)를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월운정보’라고 하였다.

월은정(月隱亭) [누정]
[위치] 옛 단구역에서 동쪽 원주천 건너, 현 월운정 마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를 말한다.
[내용] 〖여지도서〗〖관동지〗에 고을 동쪽 7리 단구천(丹丘川)가에 있으며 터만 남아있다고 하였다. 옛 지리지에 단구역이 5리 또는 7리로 나오므로 월은정의 위치는 현 월운정 마을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판서를 지낸 홍중효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원주에 돌아와서 ‘월은(月隱)’이란 기생에게 정자를 지어주고 이름도 ‘월은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홍 판서와 월은이 죽은 뒤 후손들이 정자를 헐어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현 단구동 홍유성 씨의 집 행랑채라고 전한다.

유만동(柳灣洞) [마을] → 버들만이

유만동서낭당 [당] → 버들만이성황당

음달말(1) [마을]
[위치] 뒷골 남동쪽, 반곡역 남서쪽, 중앙선 철로 아래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마을이 있던 자리에 현재 ‘음달말소공원’이 있다. 소공원에 이름을 남겼다.
[유래] 동쪽은 중앙선 철로와 치악산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삼보골로 이어지는 산으로 막혀 있어서 응달이 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음달말(2) [마을] → 음달배울

음달말(3) [마을]
[위치] 입춘내 마을 북동쪽, 영냉이들 남쪽 오리현천 건너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 벽산블루밍2차아파트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 남쪽이 높이 160m의 산으로 막혀 있어 응달이 지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음달배울 [마을]
[위치] 양지배울 남서쪽으로 영랑천 건너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 위치는 배울사거리 북동쪽 아래, 원주여자고등학교 동쪽 아래이다. ‘음달말’, ‘음지배울’이라고도 한다.
[유래] 남쪽이 산으로 막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이 가래실산, 배울생태통로 등으로 막혀 있고 지대가 낮아 응달이 지는 곳이다.

음지배울 [마을] → 음달배울

이리(二里) [마을] → 반곡리

입춘내(立春內) [마을]
[위치] 반곡동에서 북서쪽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원주천과 번재천, 오리현천이 합류하는 곳에 발달한 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입춘천’, ‘물여울’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입츈(立春川)’라고 하였다. 〖한국지명총
람〗에 ‘입춘천(立春川)’이라 하였다.
[유래] 입춘단(立春壇)이 있으므로 마을 이름을 입춘내라 하였다. 또는 지형이 아주 따뜻한 곳이어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곳이므로 입춘내라 하였다고도 한다.
[내용] 원래의 마을은 남아 있지만 주변 들판은 모두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서 마을이 포위된 형국이다. 마을 동쪽 무래울사거리까지 혁신도시로 개발되어서 남은 마을 지역도 곧 원래의 모습을 잃을 운명이다.
[풀이] ‘입춘단(立春壇)’이 있었으므로 ‘입춘단이 있는 내, 또는 들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입춘내’라 하였다. ‘내’는 내(川), 또는 들(壤)을 뜻하는 옛말이다. 여기에서는 큰 내가 합쳐지는 곳에 들도 넓게 형성되어 있으므로 어느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
지만 대체로 내(川)로 통용되고 있다.

입춘단(立春壇) [제단]
[위치] 영랑촌에 있던 제단을 말한다.
[내용] 5칸의 기와집으로 사방에 흙돌담을 치고 동쪽으로 문을 냈다고 한다. 〖여지도서〗에 ‘고을 동쪽 4리 영랑촌에 있다. 이 지방의 특유한 풍속으로 입춘 날에 흙으로 소를 빚어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였는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방 수령이 제주가 되어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였다고 하는데 언제 시작되고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입춘들 [들]
[위치] 입춘내 남쪽, 월운정 동쪽에 있는 넓은 들을 말한다. 들의 대부분이 군부대에 편입되었다.

입춘앞들 [들]
[위치] 입춘내 마을 북서쪽으로 난 들을 말한다. 입춘앞들 아래 부분에는 벽산블루밍 1차2차 아파트가 대단지로 들어서 있다.
[내용] 동쪽에 무래울골이 있고 북쪽에는 오리현천과 번재천, 서쪽은 원주천이 흐르면서 들 북서쪽 아래에서 모두 합류한다. 하천이 모두 합류하는 이곳에 넓은 들이 발달하여 ‘너르내’, ‘영냉이들’, ‘배울들’, ‘입춘들’, ‘입춘앞들’이 펼쳐있다.

입춘천(立春川) [내]
[위치] 뱅이두둑의 뱅이둑천과 뒷골의 내가 합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며, 서리실과 입춘내를 지나 원주천에 합류하는 내를 말한다. 현 원주혁신도시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다.

입춘천(立春川) [마을] → 입춘내

입춘천양어장 [못]
[위치] 입춘내 앞, 원주천 옆에 있던 양어장을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입춘천양어장’이라 하였다.

작은선바우골 [골]
[위치] 한가터 선바우골 중 서쪽으로, 565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작은암골 [골]
[위치] 반곡역 철도관사에서 남동쪽으로, 270m 높이의 봉우리를 향하여 난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갱골 서쪽 아래, 미력골 북쪽에 있다.

중간담 [마을]
[위치] 버들만이 마을 중 중간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 웃만이소공원 북서쪽 도로 건너 무항사가 있는 마을이다.

진골 [골]
[위치] 한가터골 입구에서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현재 기독교 대안학교인 산돌자연학교가 들어서 있다.

진대울 [들]
[위치] 진대울골에 있던 들을 말한다. ‘찜대월’, ‘천수바래기’라고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진울(陳垈坪)’이라고 하였다.

진대울골 [골]
[위치] 버들만이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현 버들만이에서 진대울삼거리를 거쳐 서리실사거리에 이르는 동부순환로 옆 골짜기로, 들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다. 진대울삼거리’에 이름을 남겼다.

질아재 [고개] → 길아치

질아치 [고개] → 길아치

찜대월 [들] → 진대울

천수바래기 [들] → 진대울
[유래] 천수답이었으므로 천수바래기라 하였다.

초당거리 [학교]
[위치] 뒷골의 마을회관 위쪽에 있던 임시 서당을 말한다.
[유래] 학동들이 여름 더위를 피해 풀집을 만들어 공부를 하였으므로 초당거리라 하였다.

큰산 [산] → 큰재

큰선바우골 [골]
[위치] 한가터 선바우골 중 남서쪽으로, 574.9m 높이의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큰재 [산]
[위치] 향로봉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다. ‘큰산’이라고도 한다.
[내용] 한가터 주민들이 나무를 하거나 산나물을 채취하던 향로봉을 ‘큰재’, ‘큰산’이라고 하였다.

탑산거리 [골]
[위치] 향로봉 서쪽 아래 아홉모래 골짜기 중 하나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터골 [골] → 한가터골

풍열이골 [골]
[위치] 한가터골 터골 남쪽 위에서 서쪽으로, 높이 572.5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골중간에서 고지나무골이 갈라져 나간다.

학바우 [바위]
[위치] 버들만이 남쪽, 원주천에 있던 바위를 말한다. 〖한국지명총람〗에 ‘학바우’라 하였다.
[유래] 학이 날개를 펴고 엎드린 것처럼 생겼으므로 학바우라 하였다.

학바우들 [들]
[위치] 버들만이 남쪽 학바우가 있는 곳의 들을 말한다. 〖조선지지자료〗에 ‘학바우들(鶴岩坪)’이라고 하였다.

학바우보 [보]
[위치] 학바우 앞에 있는 원주천의 보(洑)를 말한다. 학바우들, 버들만이들에 물을 댄다. 〖한국지명총람〗에 ‘학바우보’라 하였다.

한가대(韓加垈, 漢加垈) [마을] → 한가터

한가터 [마을]
[위치] 봉대 남동쪽 위 한가터골 안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일대(一垈)’, ‘한가대(韓加垈)’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에 ‘한가터(汗哥垈)’라 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 ‘한가대(漢加垈, 한가터)’라 하였다.
[유래] 골짜기의 넓은 터에 마을이 있으므로 ‘넓고 큰 터’의 의미로 ‘한+터>한터’가 되었다. 예전 한씨의 집성촌으로 큰 부자가 살았다고도 전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99호가 살았다고 하며 곡식이 잘 되어서 ‘작은 북간도’라고 불렸다고도 한다.
[내용] 무네미저수지 남동쪽 위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 곳곳에 마을이 있었다. 주 계곡인 한가터골 남쪽과 동쪽 8부 능선에까지 화전을 하고 산 옛집터와 밭터가 남아있다.
[풀이] ‘한’이 ‘一’, ‘韓’, ‘漢’, ‘汗’으로 각각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들은 ‘한’의 소리를 음차한 것으로서, 한씨 집성촌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 있다. 골짜기 안의 넓은 터에 마을이 있으므로 ‘넓고 큰 터’의 뜻으로 ‘한+터>한터’가 되었다.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한’을 ‘하나’로 보아‘일대(一垈)’, 소리를 음차하여 ‘韓, 漢, 汗’으로 적었다. ‘한가터’는 ‘한터’에 매개모음이 들어가 음운 변화가 일어난 결과이다.

한가터골 [골]
[위치] 한가터 무네미저수지에서 남동쪽으로 난 큰 골짜기를 말한다. ‘터골’이라고도 한다.
한가터봉 [산]
[위치] 한가터 다락골 동쪽 끝에 있는 704.4m 높이의 봉우리를 말한다. 봉우리 남서쪽에 길아치가 있고 동쪽 아래는 판부면 금대리 치악골이 있다.

한가터성황당 [당]
[위치] 한가터골 중간 횟골 입구에 있던 당집을 말한다. 현 정주사 동쪽 길옆에 터가 남아있다.
[내용] 느티나무를 당목으로 삼고 시멘트와 슬레이트로 지은 당집이 있었으나 약 10여 년 전에 폐지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한가터저수지 [못] → 무네미저수지

햇동재 [골]
[위치] 향로봉 아래, 아홉모래(아홉고개) 아래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횃동재’라고도 한다.

행골 [골] → 갱골

호랑바우 [바위]
[위치] 호랑바우골 안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우묵한 굴처럼 생긴 바위로, 옛날에 여기서 호랑이가 새끼를 쳤으므로 호랑바우라고 하였다.

호랑바우골 [골]
[위치] 한가터 띠아골에서 남서쪽으로, 반곡봉을 향하여 갈라져 나간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골 안에 호랑바우가 있으므로 호랑바우골이라 하였다.

혼인골 [골]
[위치] 한가터 정주사 남동쪽, 다락골 입구에 있는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연애골’이라고도 한다.
[유래] 바위로 둘러싸인 좁고 은밀한 곳으로 연애하기 좋다고 하여 연애골, 연애를 하여 혼인을 하므로 혼인골이라 하였다.

화채바우 [바위]
[위치] 검은골 안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내용] 뒷골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낼 때 이 바위를 흔들면 일주일 이내에 비가 왔다고 한다.

황새쟁이들 [들]
[위치] 가래실산 북쪽, 오리현교 남쪽에 있는 넓은 들을 말한다. 현 푸른숨9단지아파트와 부영8단지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이다. ‘황새쟁이사거리’와 ‘황새쟁이소공원’에 이름을 남겼다.
[유래] 황새가 많이 찾아오는 들이므로 황새쟁이 들이라고 하였다.

횃동재 [골] → 햇동재

횟골 [골]
[위치] 한가터 터골 정주사 앞에서 동쪽으로 높이 725.2m 봉우리를 향하여 난 골짜기를 말한다. 골입구에 성황당이 있었다.
[유래] 옛날 이 골짜기에서 회를 캤으므로 횟골이라 하였다.

후동(後洞) [마을] → 뒷골

【참고문헌】
원주지명총람(상) 원주시 : 20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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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