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서운선(徐云先) | |
활동분야 | 항일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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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강원 원주 |
출생년월일 | 1912년 29세 |
사망년월일 | 미상 |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이 국망(國亡)의 조짐이 심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평민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전국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서운선은 분연히 일어나 의병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에 나섰다. 그리하여 탁한종(卓漢宗), 엄봉진(嚴奉鎭), 김룡(金龍) 등의 동지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 등지에서 부일배를 처단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이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피체된 그는 1912년 3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을 받고 같은 해 4월 형집행으로 순국하였다.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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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자료 | 註·朝鮮總督府官報(1912. 4. 9)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28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