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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원주소개 > 원주둘러보기 > 원주의 인물 > 독립유공자 상세보기 - 성명, 활동분야, 출생지, 출생년월일, 사망년월일, 상세내용, 사진, 근거자료 제공
박경팔(朴敬八)
활동분야 항일의병
출생지 강원 원주
출생년월일 미상
사망년월일 미상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방수장(防守將)으로 경기도와 충청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이 체결되어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7월 광무황제 강제 퇴위와「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더니 이어 군대를 해산시켜 우리나라를 준식민지 상황으로 몰고 갔다.
박경팔은 이같은 국망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중부지방에서 재봉기한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였다. 이강년 의병장은 을미년에 거병하여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가 정미7조약에 격분하여 다시 봉기하였다. 이강년 부대는 김상태(金尙台)를 비롯한 백남규(白南奎)·변학기(邊鶴基)·성익현(成益鉉)·김운선(金雲仙) 등 유능한 해산군인과 합류하여 대부대로 성장하였다. 이후 이강년 부대는 북으로 낭천(狼川;화천)·인제(麟蹄)에서 남으로는 안동·영양에 이르기까지 주로 태백산맥을 동서남북으로 오르내리고 넘나들며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다.
박경팔은 이같은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여 방수장으로 일본군과 여러 차례에 교전을 벌여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 후 1908년 정월 그는 경기도 용소동(龍沼洞)에 유진하고 있었는데, 이 때 진동참모(鎭東參謀) 김연성(金演性)과 안동장(安東將) 김용익(金龍翊)이 적들에 쫓겨 군사 30여 명을 거느리고 용소동에 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그는 그들과 합세하여 적들을 물리치는 전과를 올리는 등 의병활동을 하였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근거자료 註·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4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550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263·265·29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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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