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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원주소개 > 원주둘러보기 > 원주의 인물 > 독립유공자 상세보기 - 성명, 활동분야, 출생지, 출생년월일, 사망년월일, 상세내용, 사진, 근거자료 제공
박정수(朴貞洙, 호:悔堂)
활동분야 항일의병
출생지 강원 원주
출생년월일 미상
사망년월일 미상
유인석(柳麟錫) 의진의 중군 참모로 활약하였으며, 을사의병 때는 원용팔(元容八)과 함께 의병을 모으는 활동을 하였다. 박정수는 일제가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단행하자 분연히 궐기하여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였다. 유인석 의진은 1896년 2월 일본군과 15일간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가, 3월 8일 제천(堤川)으로 다시 돌아와서 머물게 되었다.
이후 제천의진은 경군(京軍)과 일본군의 연합부대의 공격에 대항하여 5월 23일부터 4일간 대접전을 벌였다. 중군장 안승우(安承禹)는 정부에서 파견된 참령(參領) 장기렴(張基濂)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그를 따르던 19세의 홍사구(洪思九)도 스승과 함께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이에 박정수는 유인석의 중군 참모로서 중군장 안승우와 홍사구의 시신을 적진에서 수습하였다. 그리고 그는 많은 전투에 참여하고 보고들은 바를 적어 두었다가, 이강년 의병장의 창의록인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과 안승우 의병장의 창의록인 『하사안공을미창의사실(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 등을 저술 편집하였다.
이후 박정수는 삼계(三戒) 원용팔과 을사륵약이 있기 2개월 전인 1905년 9월 중순에 만나 재거사를 모의하고, 각처에 격문을 보내며 의병을 집결시켰다. 그의 거의 취지에 따라 각 처의 지사 및 민중들이 공명하여 충북과 강원도 지역이 모두 호응하였으며, 원주의 동쪽 주천(酒泉) 지방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장병들이 1천 명이나 모여들었다. 문집으로는 『회당집(悔堂集)』이 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근거자료 註·호서의병사적(이구영편역, 1993) 474·501면 ·의암문하동문록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9·6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165·335·710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3·17·57·197·211·258·308·315·350·409·466·471·483· 4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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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