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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원주소개 > 원주둘러보기 > 원주의 인물 > 독립유공자 상세보기 - 성명, 활동분야, 출생지, 출생년월일, 사망년월일, 상세내용, 사진, 근거자료 제공
박갑주(朴甲胄)
활동분야 3.1운동
출생지 강원 원주
출생년월일 미상
사망년월일 미상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좌선봉장(左先鋒將)으로 충청도와 강원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광무황제가 퇴위 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였고, 8월에는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되는 준식민지 상황이 되자 박갑주는 원주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그는 원주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이강년 의진에 합류하였다. 이강년은 정미7조약에 격분하여 재봉기 하였는데, 여기에 김상태(金尙台)를 비롯한 백남규(白南奎)·변학기(邊鶴基)·성익현(成益鉉)·김운선(金雲仙) 등 유능한 해산군인과 합류하여 대부대가 되었다. 이강년 부대는 북으로 강원도 낭천(狼川;화천)·인제(麟蹄)에서 남으로는 경상도 안동(安東)·영양(英陽)에 이르기까지 주로 태백산맥을 동서남북으로 오르내리고 넘나들며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다.
박갑주는 이강년 의진에서 별초군(別抄軍)으로 용맹성과 전투력은 발휘하였다. 1907년 10월 전동에서 부하 10명을 거느리고 강변에 매복하였다가 적을 공격하여 3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부상케 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5일 단양 지역에서 적들이 무고한 우리 백성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보고 총군 몇 명을 거느리고 적들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그해 10월 의병진의 좌선봉장이 되었다. 그는 의병의 중진들과 의병활동을 논의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근거자료 註·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4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550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246·258·260·263·29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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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