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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원주소개 > 원주둘러보기 > 원주의 인물 > 독립유공자 상세보기 - 성명, 활동분야, 출생지, 출생년월일, 사망년월일, 상세내용, 사진, 근거자료 제공
김덕제(金德濟)
활동분야 항일의병
출생지 강원 원주
출생년월일 미상
사망년월일 미상
활동내용 항일의병 : 1907년 군대 해산 당시 정위(正尉)로서 원주 진위대(鎭衛隊) 대대장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특무정교(特務正校) 민긍호(閔肯鎬)와 더불어 비밀리에 거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할 것을 모의하고 동지와 대중 규합에 힘쓰는 한편 총기 탄약을 분배하여 무장 봉기하였다. 8월 3일 부근의 일본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부하 장졸을 모두 의병으로 조직하였다.
8월 5일 충주 수비대장 이궁(二宮) 소위가 부하 19명을 인솔하고 원주방면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적발하고 교전하여 적을 물리쳤다. 이 급보에 접한 서울의 일본군사령관은 보병 47연대 제3대대의 2개 중대가 기관총 4정으로 무장하고 공병 1개 소대를 대동시켜서 원주로 급파하였다.
김덕제는 전 의진을 2부대로 나누어 자신이 1부대를 이끌고 평창(平昌) 강릉(江陵) 방면으로 진출하여 양양(襄陽) 간성(杆城) 고성(高城) 통천(通川) 흡곡( 谷)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한편 민긍호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제천(堤川) 충주(忠州) 죽산(竹山) 장호원(長湖院) 여주(驪州) 홍천(洪川) 등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강원도 동해안 쪽으로 진출한 김덕제는 그곳 의병들과 합세하여 3천 명의 대부대를 형성하였으며, 그 해 8월 14일 평창(平昌) 진부(珍富)를 점령하고 우편국원 2명을 사살하였으며, 각부(脚夫, 심부름꾼) 1명을 체포하여 격문을 사방으로 살포케 함으로써 강원도 평안도 일대로부터 많은 의병을 영입시킬 수 있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근거자료 註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14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471 500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666 6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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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