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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행자천국(步行者天國)

대한민국의 교통은 자동차가 중심에 있습니다. 최근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교통수단이 주목을 받으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공 자전거 제도, 자전거 전용도로 부설, 전기자동차 구매 비용 지원 같은 정책을 운영하고 몇몇 곳은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지만 선도적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는 제도나 시설 양 쪽 모두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자전거 나라라 불리는 독일에는 도시 간 급행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에 자전거를 직접 싣고 탈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2차선 도로에도 자전거 전용 도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알프스 산맥부터 무려 70,000km가 넘는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어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자전거의 나라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자동차는 편리한 교통수단입니다. 친환경 교통수단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잘 마련해놓은 국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 상당수의 국가가 자동차를 중심적인 교통수단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전기 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카, 그리고 여러 가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가 계속 연구되고 있는 것은 현재 인간 생활에서 자동차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나라는 자동차가 교통의 중심인 나라입니다. 4차선, 8차선으로 이루어진 넓은 자동차 도로에 비해 보행자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은 턱 없이 좁게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요. 심지어 골목길 곳곳까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없어 골목길을 걸을 때 뒤에서 자동차가 오면 양쪽 길가에 바짝 붙어서 걸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교통의 중심에 자동차가 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일까요? 자동차를 위한 넓은 도로를 보면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도로를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쓸 수 있다면……?”

만약 그 넓은 도로를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넓은 차도에 비해 인도가 너무 좁아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오늘 소개해드릴 일본의 ‘보행자천국’ 제도는 이 질문의 대답이 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보행자천국(步行者天國)이란 말 그대로 보행자들을 위한 천국을 조성하자는 목적을 가진 제도로 달성하기 위하여 일정 지역을 지정하여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거리로 들어올 수 없게 법적으로 제한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일본의 가장 유명한 보행자천국 시행 장소로는 도쿄의 교통 중심지이자 여러 전자상가와 서브컬처 상점들이 모여 있는 아키하바라(秋葉原)인데요. 아키하바라는 매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4월부터 9월, 10월부터 3월은 1시부터 5시까지) 중심 거리 약 570미터를 통제하며 그동안 사람들은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키하바라의 보행자 천국,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다만 아키하바라를 비롯한 도쿄의 보행자천국 지정 도로 이용에는 몇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본래 목적이 도로 교통을 보행자 우선으로 전환하여 안심하고 즐거운 산책이나 쇼핑을 하고, 자동차의 배기가스나 소음 등의 공해를 방지하는 것인 만큼 길거리 판매나 전단지·티슈 등의 배부, 공연 활동이나 촬영회, 서명과 모금활동 등은 금지됩니다.

처음 시행했을 당시에는 과도한 호객 행위나 촬영회, 길거리 라이브 같은 여러 행동이나 행사가 열려 곤란한 상황이 몇 번 벌어졌을 뿐 아니라 살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한동안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보행자천국의 부활을 요청하였고 2011년 4월 17일부터 재개되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습니다.

 

2011년, 아키하바라의 보행자천국이 재개될 당시의 사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10만여 명이 모였습니다.

 

물론 아키바하라가 보행자천국으로 지정된 최초의 장소는 아닙니다. 도쿄에서 일정 지역을 보행자천국으로 지정한 사례는 1970년 8월 번화가인 긴자에서 시행한 것이 최초이며 일본에서는 1969년 훗카이도의 아사히카와시의 헤이와토리 쇼핑공원(平和通り買物公園)이 최초입니다.

최초의 보행자천국인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은 요일을 지정하는 아키하바라와는 달리 영구적인 보행자천국으로 폭 20m, 총 길이 1km의 거리로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아사히카와시의 시장을 지냈던 이가라시 고조가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입니다.

그 배경에는 1960년대의 일본의 경제성장이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일본 내에 자동차들이 많아지자 교통사고가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아사히카와시 역시 인구가 늘어나고 자동차가 많아지게 되자 교통사고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됩니다. 특히 술집과 상점들이 모여 있는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의 하루 자동차 교통량이 1만대를 넘어서게 되자 교통사고도 크게 증가하게 되었는데 이에 이가라시 시장은 보행자와 상점을 이용하는 손님을 보호하고 사람을 위한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영구적인 보행자천국을 만드는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의 모습, 어쩐지 원주 문화의 거리가 떠오르는군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의 도로는 국도였는데 이를 관리하는 도로청에게는 황당한 제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통량이 줄어들면 매출이 감소할 거라 우려한 상인들 역시 반대했습니다. 훗날 이가라시 시장도 자신이 행정에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모르고 밀어붙였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관계부처와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이가라시 시장은 꾀를 내어 당시 여름 축제 기간 동안만이라도 교통 통제를 해볼 것을 요청했고 도로청 역시 한정된 기간이라면 가능하다며 이를 승인하게 됩니다.

이 실험적인 요청은 대성공을 거두어 아사히카와시의 시민들은 12일 동안 마음껏 텅 빈 거리를 이용하여 밤낮 축제를 즐겼고 자연스럽게 축제기간 동안 상가의 매출도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에 시민들, 상인들은 물론 시 의회까지 시장의 편으로 돌아서서 보행자천국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게 되자 도로청은 결국 이를 승인하고 새로운 국도 1km를 옆 블록에 개설하기로 결정합니다.

시민들은 이 결정에 환호하며 결정이 번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에 3만 송이의 꽃을 심고 가꾸었으며 그것은 지금 공원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시민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람이 살아가는 거리를 만든 셈이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환경이라는 이슈가 주목받게 된 지금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은 보행자천국의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얼마 전까지 국도였던 장소에 꽃을 심고,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일본의 영구적인 보행자천국은 헤이와토리 쇼핑공원을 비롯하여 4곳이며 날짜가 지정된 보행자천국은 아키하바라 지구를 포함한 14곳입니다. 지역마다 시행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행자천국은 보행자를 보호하고 상가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부터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거나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중심인 거리를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역할을 지역사회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도로를 폐쇄하고 4월에 서울로7017이라는 전국 최초의 보행자 전용길 개장을 앞두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중앙버스전용차로가 개통되는 종로 일대 역시 보행특구로 지정할 예정입니다.

 

서울시가 2017년 4월 개장을 추진 중인 보행특구, 걷는 서울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서울로7017이 성공적인 사례가 되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보행자 중심 도로 구역 지정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요? 우리도 넓은 차도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을 날을 꿈꾸며, 보행자가 중심이 될 수 있는 거리를 꿈꾸며 조금이나마 그 성공을 응원해 봅니다.

 

 

 

참고 자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252200005&code=620101

http://www.yp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8827

http://www.keishicho.metro.tokyo.jp/kotsu/doro/hok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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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1.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