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 맨땅이 드러나면서 지역 간 생명체 교류가 늘어나게 된다. 이는 종간 경쟁을 일으키면서 생물 다양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를테면 멸종위기종인 아델리 펭귄과 지독한 부정(父情)으로 유명한 황제펭귄이 한 지역에서 만나면 하나는 남극 대륙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28일(현지시각) 호주 퀸즐랜드대 재스민 리 교수팀은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21세기 말에는 최대 1만 7000㎢, 현재 남극 대륙 중 빙하로 덮이지 않은 면적의 25%의 땅에서 빙하가 녹아 지금의 생물 다양성이 깨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리 교수는 “그동안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지에 대한 연구만 있었을 뿐, 남극대륙에 사는 생명체의 다양성에 관한 측면이 간과됐다”며 “이번에 처음으로 남극의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빙하가 없는 땅’의 면적 변화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펭귄이나 바다사자, 절지동물과 각종 미생물 등 남극의 생명체들은 빙하로 덮이지 않은 땅에 고립돼 자기만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 남극 대륙 중 빙하가 없어 생명체의 터전이 되는 곳은 대체로 노출된 산꼭대기나 절벽 비탈길, 계곡, 오아시스, 섬 등이다. 그 면적은 1㎢~수천㎢까지 다양하며, 전체 남극 대륙의 약 1% 이하를 차지한다.
연구팀은 기후 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지구온난화 속도로 볼 때, 남극 전 지역의 빙하가 녹아 평균 높이가 약 1m 낮아지고, 그로 인해 약 2100㎢부터 최대 1만7267㎢의 면적의 빙하가 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가장 큰 생물 서식지인 북쪽 남극 반도(North Antarctic Peninsula) 지역은 빙하가 없는 땅이 지금보다 3배 이상 커지리라 내다봤다.
리 교수는 “빙하가 녹는 것의 영향을 더 조사해야 하겠지만, 남극의 생물 다양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은 확실하다”며 “일례로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 모두 극지의 중심 쪽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는데, 그곳에서 두 종이 공생할지 어느 한 종이 사라질지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프링테일(Gomphiocephalus hodgsoni, 또는 톡토기)’이라는 곤충은 북빅토리아랜드(North Victoria Land)에 고립돼 각 위치별로 고유한 종으로 분화됐다가 약 500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만나 서로 교배의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 고립됐을 당시 각 종이 가졌던 특별한 신진대사 방법을 작동시키는 유전자를 잃고 하나가 된 바 있다.
리 교수는 “인간이 만드는 변화로 지금껏 고립된 자연 환경에서 특이적으로 적응한 생물 종의 특징들이 사라질 위기”라며 “파리기후협약대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C 이하로 유지해 생물다양성이 사라질 위험을 낮춰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