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전설 ①
은혜 갚은 꿩 이야기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게 되는 다소 빤한 결말이 주를 이루는데도 좀처럼 식상한 법이 없다. 옛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야 각자 다르겠지만 아마도 현실세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동물과 사람이 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한다거나 눈앞에 도깨비가 나타나 씨름을 제안하는 일은 실생활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으레 ‘판타지(fantasy)’라 부른다. 마을마다 이런 ‘판타지’ 하나쯤은 다 갖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어떤 전설은 지역의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누군가 원주를 ‘보은의 도시’로 기억한다면 그건 꿩 덕분일 것이다. 치악산 남대봉 어귀에는 신라시대 중건된 고찰, 상원사가 있다. 깊고도 험한 치악산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오르면 문득 시야에 종 하나가 들어온다. 바로 이 종이 먼 옛날 옛적에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투신한 장소다.
원주시 캐릭터 '꽁드리'
옛날에 무과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 몇날 며칠을 걸어 원주에 있는 적악산
(赤岳山) 재를 넘을 무렵
, 어디선가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알고 보니 바로 길 옆 바위 밑에서 큰 구렁이가 둥지 안의 어린 꿩들을 막 잡아먹으려 하는 중이었다
. 둥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어미 꿩이 구원을 청하듯 애타게 울부짖고 있었다
. 젊은이는 화살을 날려 구렁이를 쏘아 어린 꿩들을 구했다
.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두운 산길을 더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젊은이는 멀리 보이는 불빛을 쫓아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큰 기와집이었다. 산중에 번듯한 집이 있는 게 이상했지만 젊은이는 집 주인에게 간청해 하룻밤 유숙을 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험한 산길을 걸어 온 젊은이는 집주인이 준 식사를 맛있게 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몸이 선득 차갑고, 조여 오는 것이 아닌가. 눈을 떠 보니 큰 구렁이가 젊은이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당신은 오늘, 오던 길에서 살생을 했소. 당신 화살에 맞아 죽은 구렁이가 바로 내 남편이오. 나는 내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신을 여기로 유인한 것이오.”
다름아닌 집주인의 음성이었다.
“나도 살생은 원하지 않았지만 꿩이 하도 가여워 순간의 동정심 때문에 생전 처음 죄를 졌소. 하지만 큰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니 제발 살려 주시오.”
“오늘밤이 새기 전에 종소리가 세 번만 울린다면 우리 죄도 풀린다오. 그렇게만 되면 당신도 살려 주겠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때, ‘땡’, ‘땡’, ‘땡’ 세 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구렁이도 종소리를 들었는지 칭칭 감았던 젊은이의 몸을 스르르 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윽고 날이 훤히 밝아오자, 젊은이는 정신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젊은이가 누워있던 곳은 빈 절간 앞 바위 밑이었다. 종소리가 났던 종각을 찾아 올라가 보니, 그 밑에는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죽은 꿩들을 묻어주고, 과거 길을 포기한 채 빈 절을 고쳐 거기서 살았다. 그 절이 지금의 치악산 상원사(上院寺)요, 단풍색이 고와 적악산(赤岳山)으로 부르던 산 이름도 붉을 적(赤)자 대신 꿩 치(雉)자를 넣어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설화 줄거리 출처 : 원주시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