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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1) "함께 쓰고, 읽고, 꿈꾸는 문학 도시" - 원주시청 문화예술과 창의도시팀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2-28 15:14:13 조회수 276

 


 

함께 쓰고읽고꿈꾸는 문학 도시

 

 원주시청 문화예술과 창의도시팀 -
 

 

  

 

‘창의도시 네트워크(UCCN, 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는 국제연합기구 유네스코(UNESCO) 산하의 글로벌 플랫폼이다. 2년에 한 번, 문학·음악·민속공예·디자인·영화·미디어·미식 등 7개 분야에 걸쳐 치열한 심사과정을 통해 가입을 진행한다. 쉽게 말해 유네스코로부터 창의성과 잠재력을 인정받은 도시 간의 국제 연결망이다. 원주시는 지난 해 여기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현재 전 세계 84개국 246개 창의도시와 상호교류의 기회를 획득함과 동시에 도시 브랜드 격상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시민과 행정이 협력해 이뤄낸 성과 

   

원주는 한국 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대문호 박경리 작가가 <토지> 집필을 마무리하며 여생을 보냈던 고장이다. 걸출한 문인들의 이력에서 원주를 찾는 일 또한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원주가 ‘문학의 도시’라는 인식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라는 이정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곽정호 문화예술과장은 말한다. “원주는 이미 문학적 자원이 풍부한 도시예요. 박경리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유산은 물론이고요, 우리 지역 작가들이 매년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촉발되는 계기가 없었을 뿐입니다.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문학 분야의 주요 거점임을 인증 받은 거죠.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을 위해서는 보통 2-3년의 준비기간을 거친다. 원주의 경우 조금 달랐다. 2014년 故 김영주 토지문학재단 이사장의 제안을 계기로 처음 밑그림을 그린 이래 최종 선정까지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원영진 창의도시팀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요즘 표현으로 민관 거버넌스가 원칙입니다. 다소 느릴 순 있어도 꼭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민이 제안하고 관이 행정적 힘을 실어주는 식이었죠. 그런 식으로 협업체계를 이뤄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첫 걸음마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이었다. 뒤이어 시청에 전담조직인 창의도시팀이 꾸려지고 여기에 ‘유네스코 창의도시 육성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 힘을 실었다.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해 관계자 토론회와 시민네트워크 회의를 개최했고 이를 토대로 원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덕분에 까다로운 유네스코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이런 흐름이 최종 선정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기존의 추진위원회는 자연스럽게 운영위원회로 개편됐다. 이들은 여전히 창의도시 사업의 큰 축이다. “민간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주신 덕분에 저희가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들의 제안이 저희의 방향성이 됩니다. 채널도 다양하고요. 담당자로서 고민이 많습니다만 크게 보면 고무적인 상황이죠.” 창의도시팀 양병길 주무관에게 운영위원회는 든든한 동료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시민의 창의성을 연료삼아, 도시 간 협력을 향해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UN에서 2015년에 채택된 의제로 2030년까지 이행하며, 17대 목표, 169개 세부 목표로 구성됐다.) 라는 대원칙을 전제로 협력하고 교류한다. 지난 2019년 창의도시 가입 기념식에서 원창묵 시장은 “원주의 풍부한 문화적 자산, 시민들의 활발한 활동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이루면서 지역과 분야의 경계를 넘어 국내외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고, 원주시를 시민과 함께하는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만들어나가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원주 또한 세계 각지의 창의도시들과 활발히 교류 사업을 진행 중이다. 비록 코로나19 국면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상당부분 온라인으로 전환하며 활로를 찾았다. “사실 처음엔 막막했죠.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콘텐츠가 문학이잖아요. 사람은 모이지 못했지만 작품은 모였습니다.” 원영진 창의도시팀장은 예기치 못한 한계 덕분에 조금 더 창의적인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 3월에 스페인 그라나다의 주도로 열린 「세계 시의 날」 행사는 대표적 예다. 원주문인협회와 원주여성문학인회 회원들의 작품이 랜선을 타고 이역만리를 건너갔다.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해 문자 언어를 초월하는 교류도 진행됐다. “러시아에 율리아노브스크(Ulyanovsk)라는 문학 창의도시가 있어요. 전 세계의 작가들이 각자 선호하는 집필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는 온라인 전시를 기획했어요. 관련해서 원주에서는 박경리 선생님의 집필공간을 찍어서 보냈죠.” 올 한 해 온라인을 통한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교류 내용을 소개하는 양병길 주무관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교류가 이어진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지만 자꾸만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긴 해요. 원주는 가입 첫 해잖아요. 좋은 기획이 참 많았거든요. 한편으론 마음이 바쁘기도 합니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에도 원주시를 포함해 10개의 창의도시가 있다. 해외 뿐 아니라 국내 네트워킹 또한 주요한 과제임을 원영진 창의도시팀장은 강조했다. “가까운 이천은 공예와 민속예술 분야 창의도시고요, 음악 창의도시인 통영은 원주와 박경리 선생님이라는 교집합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꾸준히 국내 창의도시 간에 교류가 진행 중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창의도시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이를 통해 발전하라는 것이 유네스코의 요구사항입니다.” 

 

시민의 자부심이자 창작자의 원동력   

 

유네스코 로고는 사용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단순히 도시규모가 크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중한 작업 끝에 원주도 얼마 전 로고를 확정했다. 말하자면 인내의 산물이다. “시민들 보시기에 로고가 나오기까지 조금 오래 걸린 것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절차 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련해서 버스정류장 이미지 부착이라든지 상징물, 홍보물 제작 작업이 지금 진행 중이고요. 머지않아 원주시 곳곳의 문학 거점마다 유네스코 로고를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후일담을 전하며 원영진 창의도시 팀장은 어렵게 만들어진 로고인 만큼 원주시민에게도 자랑거리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저는 일단 시민들의 창작이 개인의 영역임과 동시에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의 활동이라는 인식이 더 확장되길 바라요. 일방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희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자 합니다. 결과적으론 원주시가 문학창의도시로서 교류할 수 있는 콘텐츠도 나날이 풍부해질 테고요.” 이와 같은 의식 고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변확대가 중요하다고 양병길 주무관은 말한다. “시민들이 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문화 콘텐츠를 생활과 가까운 곳에서 쉽게 접해야겠죠. 모두가 창작자이자 소비자가 되어서 함께 향유하는 형태로요. 이를테면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창의도시로서 할 수 있는 글로벌네트워킹에 가장 근접해있는 사업 중 하나입니다. 국내외의 작가들이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면서 충분히 창작활동을 하고 원주에서의 경험과 추억, 노하우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거죠.”  

 지난 1년이 창의도시라는 집을 세우기 위해 바닥을 고르고 주춧돌을 세우는 기간이었다면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릴 예정이다. 여전히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지만 원영진 창의도시팀장은 의지를 드러냈다. “원주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는 루트가 있어요. 예를 들어 ‘뮤지엄 산’에 오신 분들은 대개 ‘박경리문학공원’도 갑니다. 가까운 춘천이나 횡성에 왔다가 원주를 들르는 분들도 그래요. 강원도 문학여행의 콘텐츠로 김유정과 박경리를 연상하는 식이죠. 이런 연계점을 찾아서 원주시의 문학 관련 명소를 안내하는 ‘유네스코 문학지도’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자연경관이나 관광명소보다도 문학을 테마로 하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창의도시의 간사도시인 영국 노팅엄(Nottingham)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원주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이자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제1차 법정 문화도시다. 그림책을 비롯해 두 사업 간 교차되는 지점을 활용해 다채로운 교류를 해보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 또는 아랍지역 문학도시 중 한곳과 교류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서로 오고갈 순 없어도 책은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거든요. 우리 그림책 활동가들이 해당 지역의 이야기를 소재로 창작한 결과물을 보내주는 계획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문학 네트워크인거죠.” 이 같은 국제교류와 더불어 오는 10월에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원주’라는 타이틀이 시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예정이다. 문학창의도시 가입 1주년을 기념해 시립중앙도서관 2층에서 박경리 작가를 포함해 원주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주제로 서가를 큐레이팅 해 전시한다. 

 

우리 모두의 창의도시 

 

“결국에는 사람이에요. 이전까지는 산업화를 통해서 도시발전을 도모했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잖아요.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산업을 통해서 서로 교류하며 앞으로 나아가자는 게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핵심입니다. 원주시의 창의도시 1년차는 그런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민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원영진 창의도시팀장은 창의도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시민임을 강조했다. 시민의 창의성이 행정력과 만나면 반드시 시너지가 생긴다. 창의도시는 씨줄과 날줄처럼 민과 관이 협력해 직조되는 하나의 거대한 창작물인 셈이다. 이제 막 워밍업을 마친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원주의 내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박경리, 「바느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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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행복원주]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