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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5) "준비와 숙고를 넘어 결실 맺는 한 해로" - 정종은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2-28 15:15:27 조회수 246

 


준비와 숙고를 넘어 결실 맺는 한 해로  

- 정종은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혁신’이라는 단어에는 비장한 각오가 숨어있다. 가죽 혁(革)에 새 신(新), 가죽을 새롭게 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같은 뜻의 영단어 ‘innovation’도 다르지 않다. in(들어오다)/nova(새로운 별)/tion(명사형 어미)으로 구성된 이 말을 직역하면 새로운 별을 들여온다는 뜻이 된다. 신성(新星, nova)은 천문학적으로는 어둡던 별이 갑자기 밝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데, 대개는 폭발에 의해 발현된다. 이처럼 혁신은 기존의 관행이나 형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다.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더 나아가는 셈이다. 

 원주시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이래 어느덧 두 번째 달력을 넘겼다. 지난 2020년이 흙을 고르고 거름을 내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싹을 틔울 차례다. 새싹은 안온한 씨앗껍질을 기꺼이 뚫고 자라난다. 이 또한 혁신이다. 2021년이 준비와 숙고를 넘어 결실을 맺는 한 해가 될 것이라 말하는 정종은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운영위원을 만나본다. 

 

Q1.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이하 문학창의도시) 원주의 2020년을 평가해주신다면? 

오랫동안 준비했던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이 실제화 되면서 열의가 높았죠. 지난 한 해 동안 운영위원들이 여러 차례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했습니다. 유네스코와의 관계가 주는 긍정적인 기회를 활용한 계획들이 많이 수립이 되었고요. 다만 코로나19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 때문에 포럼이라든지 연계 사업 등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실행이 어려웠어요. 그런 부분은 다소 아쉽죠. 올해는 보다 공세적으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데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도시’와 ‘문학창의도시’를 2020년에 같이 시작하면서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있거든요. 시민들의 삶 속에서 피부에 와 닿는 성과가 2021년에는 나오길 바라요. 그런 담론을 체감할 수 있는 시점인 거죠.   

 

Q2. 지난 2020년 7월에 있었던 <유네스코 창의도시 원주, 문화외교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서 원주만의 ‘지역문화 혁신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현재 원주의 지역문화 기반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해볼 수 있을까요? 

먼저 혁신 체계 이야기를 해볼게요. 혁신이 제도화되는 걸 말하거든요. 한 번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혁신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내는 개념이고요. 참여정부 때부터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마다 혁신체계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이 부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지자체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원주가 국내적으로는 ‘문화도시’로 선정이 됐고 국제적으로는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이 됐습니다. 이런 인정에 부합하는 증거가 필요한 때가 왔어요. 그리고 그 증거는 지역문화 혁신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를 보면 되는 거예요. 지역혁신체계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핵심리더와 코어그룹이 있어야 해요. 지역사회에 혁신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거죠. 두 번째 단계로,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상호학습이 일어납니다. 세 번째로는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함)을 하게 돼요. 하나씩 시도를 하다 보면 혁신성과와 제도화과정이 일어나요. 이런 과정을 전제에 놓고 원주가 어디쯤 왔는지 진단해보자면 저는 두 번째 단계인 거 같아요. 어떤 분야마다 혁신리더들이 있어요. 여기에 공감하는 코어그룹들은 생긴 것 같아요. 다만 이들 간의 네트워크가 아직 초기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이제 트러블 슈팅을 하면서 상호 학습의 질이 올라와야 하거든요. 네트워크와 상호학습이 한 발 더 나아가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Q3. 앞으로 원주의 문화콘텐츠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공간이라는 기본적인 인프라 위에서 정말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문화인재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느냐를 생각해보면 아직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이 시점에서는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이 필요하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창의적인 인재들이 있다면 그들이 역량을 뽐낼 수 있는 플랫폼 또한 필요하죠. 이를테면 박물관과 공연장은 꼭 필요한 인프라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오가며 놀이터와 서식지가 되기는 힘들어요. 가치 창출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모으고 기르고 확산하는 플랫폼으로 공간들이 나아가야 합니다. 또 유통도 중요하죠.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들어봤자 팔리지 않을 텐데, 하는 자조적인 인식이 있는 거예요. 지역의 인재들과 연계하면서 전국적으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뭔가가 설립이 되고 운영이 되면 좋겠죠. 지역의 인재들에게 분야별로 지원을 제안하고, 질 좋은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생산하고 소비되게끔 하려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조언하고 협력하는 전문가들이 공공 부문에 있어야 합니다. 

 

Q4. 부천을 비롯해서, 국내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된 타 도시와 비교했을 때 원주가 가진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봐요. 하나는 강원도가 가지고 있는 지리성이 있는 거고요. 사상적인 역사성이 있죠. 다른데서 쉽게 경쟁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원주가 가지고 있는 생명사상이라든지 협동, 나눔의 사상, 이런 부분들은 고유한 것이고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이라든지 문화도시로 선정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다만 그런 것들이 실질적으로 다양한 관련 사업에 녹아들고 활동의 보호막이 되어야죠. 생동하는 사상이 되어야 하는 게 과제입니다. 선정된 이후에 콘셉트와 방향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의 문제예요. 현장으로 사상이  녹아들어 가느냐의 여부입니다. 아직까지는 아쉬워요. 강원도의 지리성도 상당히 중요하죠. 미국의 정치 상황이 바뀐 지점이니, 예를 들자면 ‘평화특별자치도’와 같은 정책들이 강원도에서 추진된다면 조금 전 말씀 드린 원주의 생명‧평화사상과 같은 콘텐츠들이 충분히 배경이 될 수 있겠죠. 

 

Q5. 유네스코 창의도시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네트워킹입니다. 현재 원주시가 국내외 다른 도시들과 교류, 협력할 준비가 잘 되어있는 편인가요? 

‘준비가 잘 되어있나’하는 질문도 이제는 그만해야할 때가 됐어요. (웃음) 고민과 검열은 그만하고 이제는 정말로 교류를 해야 합니다. 다만 교류를 할 때, 사람들이 원주에 왔을 때 깊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잖아요. 관련해서 인력도 더 육성이 되어야 하고요. 책자나 상품들도 국제교류를 고려해서 국‧영문 혼용으로 제작되어야겠죠. 이 부분이 하나 있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사업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필요하죠. 선정을 준비하는 단계와 선정 이후는 다르니까요. 실제적으로 흥미로운 교류를 같이하는 경험이 쌓여야 하고요.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도시의 위상에 걸 맞는 활동들이 계속 지속되길 바라고요. 이제는 한 단계 올라간 시도들을 해야 하는 상황이죠. 야심 차게 또 적극적으로 성과와 증거를 산출해야 합니다. 우리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패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다양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Q6. 코로나19라는 특수성 때문에 많은 제약이 생겼는데요,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사업을 진행해야할까요? 

코로나19가 선진국, 세계화, 도시화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화를 붕괴시켰어요. 선진국들이 감염위기관리능력이 없다는 게 드러났잖아요. 또 선진국들과 교류하고 배우자는 게 세계화 신화잖아요. 비슷한 맥락에서 도시화 신화가 있죠.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우리가 사회적 멈춤과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 걸로 보고요. 더불어서 지역과 이웃의 재발견이 일어나고 있어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부분인데. 사회적 멈춤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지 여부가 궁금해요. 전환을 위한 멈춤이었느냐 아니면 다시 예전으로 가기 위한 멈춤이었느냐. 중요한 포인트예요. 근원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멈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지역의 재발견’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더 매력적으로 지속해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언택트(un-tact)’는 일상화가 될 것 같고요. 훨씬 더 중요해지는 거죠. 언택트가 일상화되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정말 ‘딥택트(deep-tact)’한 경험을 줄 수 있게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온라인 언택트와 오프라인 딥택트가 어우러진 소통방식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과제예요. 

 

Q7. 원주가 보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창의도시 네트워크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참고해볼만한 사례가 있을까요? 

광주광역시에 ‘플리마코’라는 협동조합이 있어요. 20대를 주축으로 한 시각예술 기반 협동조합이에요. 조합원들이 거의 200명이에요. 협동조합 만드는데 만족한 게 아니라 문제의식이 재밌어요. 왜 우리는 주말마다 작품을 들고 서울로 가야하나. 그러면서 아트마켓을 조금씩 하고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감성이 젊잖아요. 그러니까 인스타를 통해서 작품을 통해서 알음도와주기도 하고 계속 진화를 하는데 베이스로는 협동조합과 아트마켓이에요. 광주지역에서 공간을 제공해주고 거길 되게 힙하게 만들면서 지난 2-3년 사이에 조금씩 알려진 거죠. 예술경영대상 장관상을 탔어요. 여기만 안보고 거기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을 한 거죠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그런데 문화예술 협동조합으로 청년들이 묶여서 있으니까 뭐가 나오는 거예요. 흔히 ‘탤런트 마그넷(talent magnet)’이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지역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끌어당기는 ‘인재자석’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플리마코’가 좋은 사례라고 생각을 해요. 

 

Q8. 원주가 가진 문학 자원 중 보다 더 성장, 발전의 여지가 있는 콘텐츠(분야)가 있을까요? 

문학이 다른 분야와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디지털 헬스케어가 원주와 강원도의 주력사업이잖아요. 문학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거죠. 지역의 대표산업이나 중요한 문제가 연결이 되어야 해요. 지역의 콘텐츠가 지역 현안과 어떻게 엮일 것이냐. 그림책이든 웹소설이든 어떤 분야가 됐든지 방금 말씀드린 연계협력 포인트를 잘 찾고 전략을 짤 수 있다면 예술가와 지역이 서로의 요구를 알고 같이 홍보도 하고 호흡해 나가면서 장점을 활용해 나가는 방향을 찾아야죠. 

 

Q9.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거버넌스의 형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방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핵심리더와 코어그룹이 관이나 공공이 아닐 수 있어요. 민간이 주도권을 가질 수도 있는 거죠. 민간과 공공이 상호학습을 하면서 문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녹아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일례로는 서울 성북구에서 ‘공유성북 원탁회의’라는 걸 굴렸었는데, 자치단체장이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석을 했어요. 계속 문제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고 핵심멤버로서 참여를 하니까 거기서 논의가 되면 결론이 나는 거죠. 자연스럽게 상호학습이 이뤄지는 거예요. 이런 상호학습과정에서 ‘P.P.P.P(public, private, people, partnership)’가 중요한데, 지역혁신체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Q10. 올 한 해 문학 창의도시 원주는 어떤 모습이길 기대하시나요? 

계속해서 강조했듯이 이제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준비와 숙고를 넘어서 결단과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고요. 야심차게, 공격적으로 사업성과와 증거를 산출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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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1년 [행복원주]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