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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간이 붉게 익어가는 곳, 시홍서가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7-14 18:34:03 조회수 297

[인터뷰]
시간이 붉게 익어가는 곳, 시홍서가

 

 

독서는 그야말로 유익한 여가생활이다. 고요히 앉아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일상을 견디느라 생긴 마음의 균열이 저절로 메워진다. 문자를 해독해 머릿속에 저장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가. 종이 위에 새겨진 글씨를 읽고 내용을 소화시키는 동안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이 많은 도시는 살기 좋은 곳임에 분명하다. 서점이 많다는 건,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산다는 방증이니까. 만일 당신이 서점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면 그건 실로 자랑할 만한 일이다.

단계동 이화마을에는 시홍서가가 있다. 책방지기가 세심한 안목으로 차곡차곡 채워놓은 서가와 읽고 쓰는 사람의 고민이 오롯이 남아있는 책상 그리고 피아노가 얌전히 때를 기다리는, 고즈넉한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만으로 한편의 문학이 되는 기분이 든다. 한 여름 긴 오후의 한때를 골라 시홍서가의 김영미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시홍서가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시홍은 시간이 붉게 익어간다는 뜻이에요. 이는 성숙과 인내, 그리고 절정의 순간을 의미해요. 그러한 시홍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책들을 이 서점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말하자면 시간이 붉게 익어가는 책장이에요. ‘라는 건 인간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간은 시간성이다라고 한 말을 염두에 둔 작명이죠.

 

Q. 오는 8월이 시홍서가의 일주년입니다. 먼저 축하드리고요,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어느새 일 년이네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시간이 내어주는 힘이라는 건 획득하기 가장 쉽기도 하고 동시에 어렵기도 합니다. 1인 서점의 형태이다 보니, 완벽한 기획을 갖고 끌어나가기 보다는 일단 오래 지속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 가는 것이 목표라고나 할까요. ‘갈 길이 멀다라는 말에는 책방을 안정적으로 탄탄하게 꾸려가기에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얘기기도 하죠.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 정상화를 비롯해, 연구, 전시, 출판, 굿즈 제작 등 문화공간으로서 다양한 분들과의 협업과 실험, 홍보 이런 것들이 있어요.

 

 

 

Q. 원주에서 서점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원주를 선택한 이유는 원주가 무엇보다 강원도의 도시라는 점이예요. 귀향이란 의미가 커요. 원성군 신림면이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제 원적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산소가 원주에 있기도 하고요. 동해에서 자라 강원도에서만 교사로 12년 근무를 했지요. 젊어서는 대도시의 활력과 익명성을 동경하고 즐겼지만, 늘 나그네 의식이 있었죠. 곰곰이 들여다보니 제 속에 강원도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애향심이 있었어요. 원주는 강원도의 도시 중 타 지역과의 개방성이 뛰어난 곳이에요. 저는 강원도에서’, ‘강원도를 넘어선어떤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원주의 지리적 개방성은 학습과 수용이라는 점에서 아주 좋은 입지적 조건이었지요. 하필 서점인 것은 저에게 책이 쉽고도 친숙한 매체이고, 책이 가진 비전을 믿기 때문이에요. 겉으로는 작고 고요한 공간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시공간적인 무한 확장이 가능하잖아요. 책 속에 숨어서 책의 비전을 꿈꾸는 게 가능한 멋진 공간이죠. 우선 내가 행복한 공간이자, 동일한 꿈을 꾸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들에게 꿈꾸는 공간이 된다면 참 좋겠다 싶었죠.

 

Q. 단순히 책을 파는 역할을 넘어,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공간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시홍서가가 있는 이 집 마당에는 제가 이사 오기 전 부터 감나무 세 그루가 있었어요. 감나무는 예로부터 문무충효절(文武忠孝節)’, ‘5이라 불리는 다섯 덕목을 가진 나무로 여겨져 왔다죠? 감나무 잎사귀가 넓어서 글씨를 쓸 수가 있고(), 가지는 단단해서 화살촉을 만들 수 있고(),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충실하고(), 홍시가 되면 노인들이 먹기 좋고 (), 서리 내릴 때까지도 가지에 열매가 달려있는 절개가 굳은 나무()라고 하잖아요. 시홍서가도 감나무처럼 다양한 덕목을 지닌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문화공간이자 북카페이고 전시도 할 수 있는 통합된 공간을 생각했어요. 마치 살롱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교류하고 배워가는 곳이 되었으면 했죠. 아까 말씀드린 바대로 청년, 청소년들도 여기에서 좋은 어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Q. 그동안 시홍서가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진행하셨나요?
 

교사생활 할 때, 한 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 고장은 해를 품은 고장이라,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난단다.” 아이들이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가 참 중요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지역과 어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제 안에서 계속 쌓여갔던 것 같아요. 북토크라든가 원데이클래스 등 시홍서가에서 그동안 진행해온 프로그램도 그런 고민들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사실 올해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어요. 시홍서가는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결국 제가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차분히 읽고 생각하며 정체성을 다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올해 원주에서 열린 대한민국 독서대전 덕분에 좋은 기회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6월에만 북 콘서트를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원주의 정체성 탐구라는 주제로 원주 출신의 이현준 소설가를 모셨어요. 원주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원주에서 자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을 함께 살펴봤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죠. 학부모를 대상으로 애니어그램을 활용한 자녀교육이라든가 음악극 형식의 하우스 콘서트도 진행했습니다. 그 밖에도 한국작가회의에서 주관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활용해 고진하 시인을 모시고 원주의 지역정체성 탐구라는 대주제로 무위당 장일순과 동학사상’, ‘박경리 시에 나타난 생명사상등의 강연을 열기도 했고요. 이하림 작가, 박종무 동물연대 대표, 최영미 시인도 오셔서 원주시민들과 만났습니다.

 

Q. 이곳에서 전시도 열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방을 열면서 처음에 꿈꿨던 걸 다 해본 것 같아요. (웃음) 지난 423일이 책의 날이었잖아요. 서점으로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책의 처음>이라는 제목으로 수제본 전시회를 열고, 독서와 글쓰기 출판 서점탐방기 등 책과 관련된 책을 모아 도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리 큰 공간은 아니지만 애초에 책장을 낮게 한 것도, 한쪽 벽을 비워둔 것도 전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거든요. 아직 준비 중이긴 하지만 여기 지하실이 있는데, 독서모임을 하는 장소로 대관을 할 생각도 있어요. 상시로는 원주 문학전시관전시를 계획 중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원주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들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원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스터디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조금씩 준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Q.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청소년들이 오면 반갑고 소중해요. 이 동네에 산다면서 온 고등학생이라든지, 이화마을 끝에 무실 8단지에 산다면서 지나가는 길에 보고 왔다는 학생들을 보면 무척 반갑죠. 한 번은 태장동에서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청년 직업군인 부사관 한 분이 계셨어요. 시홍서가라는 서점이 있다는 걸 알고 궁금해서 와봤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집이 대구인데 원주에 청년 세대의 마음을 채우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도 했죠. 반갑고 또 무척 여운이 길게 남았던 만남이었습니다.

 

Q. 시홍서가가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시홍서가에 가면 인생 책을 만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슬플 때 위로가 되는 책,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 어려운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는 책과의 만남이 있는 곳 말이죠. 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면 인문학의 향기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것 같아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요


 

Q. 원주가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인데요. 이것이 단순한 타이틀로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브랜드로서의 기능적 차원뿐만 아니라 역사를 담고 문화의 향기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지역이 가진 자원들을 잘 발굴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가의 생가나 서점이 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 나가도록 하면 좋겠어요. , 급조하면 안 돼요. 기간 안에 성과를 내려고 하다보면 유치하고 조야한 졸작이 될 수도 있고요. 또 반드시 어떤 인물을 브랜드로 내세워 우상화 하는 것도 오직 하나의 정답은 아니라고 봐요. 가능한 하나의 답이죠. 영어 교사인 지인 한 분에게 영국 여행 중 작가의 생가를 방문하신 경험을 들은 적이 있어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송하고 있던 작가의 영시를 낭송하셨다고, 모두 감동하고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하더군요. 오래된 공간이 주는 각별한 느낌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물론 셰익스피어의 집이라든가, 디킨슨의 집과 같은 명소는 물론 하루아침에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부터라도 작가의 집이라든가 서점이라든가 이런 곳이 잘 자리 잡도록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지금 있는 서점만이라도 사라지지 않아야 해요. 독립서점의 존재가 이 사회에 공적인 의미를 지니면 각 서점들이 문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 기관에서 지원과 협업을 모색해 주시면 좋겠어요. 독립서점들이 서점 주인 개인의 열정에만 기대어 수십 년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