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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문학을 만나고 스며들길 바란다” - 이상희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 그림책도시 이사장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2-28 15:14:52 조회수 228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문학을 만나고 스며들길 바란다”

- 이상희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 그림책도시 이사장 



1. 문학창의도시 추진위원회 때부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로서, 그림책도시 대표로서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는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어떤가?

시인으로 살면서 오랜동안 홀로 읽고 쓰는 삶에 탐닉했다. 그림책에 매혹되면서 자연스레  함께 읽고 나누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림책을 안고 문을 나섰다. 그렇게 ‘모두’와 ‘함께’의 세계로 나갔다. 내게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는 도시를 정의하는 브랜드 이상의 새로운 매혹이다. 모두 함께 지나간 시간 저편 세상이 남긴 이야기를 읽고, 현재 이야기를 함께 쓰고 읽으면서, 지속가능한 다음 세상을 위해 모두에게 따스하고 평화로운 나날이 구현되는 삶터를 만들어가자는 주제에 강력히 이끌린다. 이 주제를 구현하는 데 기여할 ‘그림책 일상 예술’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뛴다. 

         

2. 문학창의도시는 원주시민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모든 예술이 그렇듯 문학은 우리 삶에 온기와 깊이를 채우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날의 일상이 구멍 내는 결핍과 쓰라린 갈등을 부려놓고 성찰하기 좋은 플랫폼으로 문학만한 것이 있을까? 읽는다는 것, 쓴다는 것은 일상의 찰나적 흐름 속에서 꾸준히 깊이를 만들어 낸다. ‘문학창의도시가 우리 모두에게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런 장면들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이다, 눈이 내리고 찬바람까지 몰아치는 저녁인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다 다르지만 나름대로 색감 좋고 따뜻해 보이는 외투를 입고 있다. 외투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거나 색감이나 디자인에 대한 평균적인 안목과 취향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지치고 고단한 시간인데 모두 의연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고공타워나 명품백화점이 없는데도 왠지 넉넉해 보이는 이 도시에서 이방인은 마음 놓고 길을 묻고 명소를 안내 받는다. ‘문학창의도시’ 시민은 그런 질 좋은 온기를 공유하고 누리면서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세계 시민으로 자기를 확장해 나아갈 것이다.

 

3. 원주형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원주형 창의도시 모습이 궁금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도시 삶터가 일상 속에서 온기를 누리고 깊이를 성찰하는 곳이 되도록 다양한 분들과 다양한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원주형 창의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시민을 떠올려보자. 한밤중에 퇴근 해 해 뜨자마자 출근을 서두르는, 격무에 시달리는 오십 대 직장인이 겨우 눈을 뜬 채 운전대를 잡고 나선 아침을 그려보자. 하품을 거듭하며 단구동 회전교차로에 들어섰는데, 중앙 화단에 핀 꽃 사이 시비(詩碑)에서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박경리 시 <삶>에서)를 스치듯  읽게 된다, 자동차 행렬에 끼어 달리다 네거리 정지 신호에 멈춰서는 옥외 전광판의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장일순 어록집 <삶의 도량에서>)를 읽고는 자기도 모르게 따라 읽어본다, 언제부터 이런 글들이 이렇게 적혀 있었더라 어리둥절한 채 회사에 도착한 다음 업무를 시작하기 전 잠깐 시집과 어록을 검색해본다, 바쁜 일과가 끝나고도 아침에 읽은 글귀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는 걸 깨닫는다, 오래 전 시를 즐겨 읊조리던 친구에게 모처럼 소식을 전하며 싯귀도 함께 써 보낸다. 이제 그는 도시 곳곳에서 글과 말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휴일 가족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렀다가 ‘작가 강연회’와 ‘시 쓰기 워크샵’ 프로그램 안내문에 눈길이 꽂힌다, 도서관에서 보내주는 공지를 통해 중천선생을 기념하는 철학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비대면 인문학강좌에 참석한다, 자기 생각과 마음 속 말을 꺼낸다, 자기 손으로 자기에 대해 글을 써본다, 이 사회와 이 시대에 대해서도 글을 써본다, 적절한 표현을 위해 좋은 문장을 찾아 헤매고, 떠오르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참고 도서를 검색하느라 서점에 접속한다, 가족 또는 직장 동료 또는 아파트 단지 이웃과 함께 책 읽는 모임을 도모한다, 이제 그는 50대 직장인 이상의 글 읽고 쓰는 존재가 되었다. 자꾸 이어지는 그림을 그만 멈춰야겠다. (웃음) 이처럼 이 도시의 근본에 스며있는 문학과 철학에 접속하면서 차츰차츰 자기 성찰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원주형문학창의도시 향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원주 곳곳에서 문학을 접속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4.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의 핵심프로그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 시민이 자기 삶을 스토리텔링 한 ‘세상 유일 그림책 갖기’이다. 그림책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담는 작업은 무엇보다 자기 객관화와 성찰 및 치유 기능이 있다. 훌륭한 그림책으로 눈을 열고 마음을 연 다음, 적절한 형식을 빌어 자기 이야기를 쓰고 그릴 수 있도록 이끄는 그림책창작워크숍은 20년 가까이 이어온 패랭이꽃그림책버스와 사회적협동조합그림책도시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축하 카드 한 줄 쓰는 것을 힘들어하던 이가 정리되지 않은 채 묻어둔 이야기를 객관화하는 스토리텔링 작업, 이를 기반으로 선 하나 긋기를 두려워하던 손으로 과거 또는 현재 삶의 풍경을 구현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원주시민이 누리는 특권이 될 것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익히고 훈련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센터가 도시와 마을 곳곳에 배치될 계획과 연계, 스토리텔링 결과물로 그림책 창작 워크숍 과정을 거치면  완성도 높은 그림책 결과물이 된다. 원주시민의 생애 주기 어느 시점에서든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클래스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5. 문학 창의도시는 지속가능발전목표를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다. 17개 목표 중 몇 번 목표를 핵심목표로 정할 수 있을까?

SDGs는 서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10번 목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 시대의 대주제로, 국가 내 및 국가 간 불평등 해소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모든 시민의 불평등 해소’로도 해석하는데, 모든 것을 포용할만한 의제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나 평론가, 심지어 독자가 아닌 이도 ‘문학을 접하려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문학창의도시라야 하기 때문이다. 쓰고 읽는 취향과 거리가 먼 시민들에게는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6. 지금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이나 사업 중 가장 ‘문학창의도시답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는지?

아직 본격적으로 가동된 사업은 없다. 다만, 몇 해 전 세계청소년아동도서협의회 한국지부 KBBY 부회장 자격으로 런던도서전 참여한 김에 방문했던 에딘버러가 최초의 문학창의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떠오른 것은 ‘그래서 도시 곳곳에서 글 냄새 책 향기가 났구나’라는 것이었다. 최초의 문학창의도시 에딘버러에는 거대한 모뉴망이 없었고, 골목마다 좁게 지어 올린 옛 건물 그대로 활용한 생활사박물관와 스토리텔링센터와 도서관이 있었고, 작가의 에피소드가 묻어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7. 시민들은 문학창의도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한 마디로 정의를 내려달라. 

창의성을 그 도시의 지속가능발전 핵심 전략 요소로 인정하는 국가 간 네트워크 목표, 그  가운데서도 ‘문학’ 주제의 서브 네트워크 도시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씀대로, 시민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와닿는 캐치프레이즈 형태의 정의가 필요하다. 추진위원회에서 여러 관점에서 고민하고 있다. 개인적인 해석과 표현으로 오해를 부를 수 있고, 나는 시인이라 더욱 자의적 워딩이 될 수 있어 자제하는 편이 낫겠다. 

 

8. 문학 창의도시 선정을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문화와 발전의 지속가능한 공진화’를 위한 우리 세대의 역할이라면 나의 경우 60대에 들어서면서 루쉰의 개념 ‘중간물’에 자신을 대입해보곤 한다. 그림책 특유의 다정한 낙관 덕분에 루쉰처럼 비장하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일할 수 있도록 ‘잘 넘겨주고 잘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지금 이 현재 신생대 제4기 홀로세에도 절대 진리일 터다. 문화라는 습관,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문학을 만나고 스며들어 언제 어디서든 시 외는 이들을 마주치고 거리와 거실에서 그림책 캐릭터와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가 인용되는 그런 풍요, 그것이 뿌리내려 싹트고 잎 내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  

 

9.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문학 창의도시는 책임감도 느끼실 것 같다. 자신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모름지기 자본 중심의 세상에서는 따뜻함을 누리기 힘든 법이다. 사람 중심이 아니었기에 신기루였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이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언제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촉구한다. 문학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원주에도 요긴한 방책이다. 그림책을 안고 꿈꾸어온 대로 ‘우리 함께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스스로를 넓혀야 한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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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행복원주]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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