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만마을
대동계
유만마을의 대동계 역시 상부상조계의 성격으로, 당연히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가해야 하는 계였다. 그래서 이사를 오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반강제적으로 가입하였는데, 가입비는 벼 3말이었지만 그것이 없는 사람은 팥죽이나 다른 음식을 제공하고 가입할 수 있었다.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 당시에는 지붕개량사업이나 치도사업을 할 때 아침에 방송을 하면 집집마다 한 사람씩 나가서 일을 하였고, 만약 안 나오면 벌금을 내야했는데, 그 벌금은 모이면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마을사람들이 함께 마시곤 했다. 당시 새마을지도자는 3 · 40대였으며, 두레 같은 형태 즉 공동으로 논농사를 지었지만 새마을운동을 할 때에는 품값을 계산하지 않고도 농번기 때 청년들이 논에 가서 함께 일을 하였다. 그 당시에 청년회는 4H라는 조직으로 활동을 하였고 그 이후에는 마음이 통하는 청장년층이 모여서 친목회조직인 청년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마을의례
서낭제사는 격년으로 10월에 지냈는데, 제사 제물로 돼지 한마리를 잡아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마을 공동의례인 만큼 축문은 마을의 안녕을 비는 것이 중심이었고, 서낭제사의 제관이 되는 사람은 마을에서 어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맡았다.
마을상례
상을 치르기 위해서 자식 세대에서 상포계를 만들어서 상부상조해왔다. 상포계 유사는 해마다 달라질 수 있는데 그 해에 상이 없으면 일을 별로 안하고 지나가는 것이고 마침 유사를 보았는데 상이 많으면 아주 힘들게 넘어갔다.
부녀회에서 필요한 상품을 계절별로 팔았는데 일단 동사무소에서 상품을 구매해서 각 동네에 할당하면 동네 부녀회에서 판매하여 그 이익금으로 양로원과 독거노인을 도왔다. 대동계 날이나, 상이 나면 부녀회에서 음식 준비를 했으며, 매년 정월 윷놀이 할 때는 통장, 대동계, 부녀회가 협조했다. 30명 정도가 매달 20일 모임을 가졌는데, 만원씩 회비를 모았고, 그 회비는 적금을 만들어 부어서 나중에 부녀회 단체 여행 경비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