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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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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고려 왕조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의 맹세로 원주 땅 치악산 자락에 몸을 숨기고 지낸 분이 운곡 원천석 선생이다.

조선 시대에 서자로 태어나 권력의 암투에 환멸을 느낀 손곡 이달 선생도 원주 부론면에 자리를 잡았고, 왕권 찬탈의 패륜을 거부하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원주에 내려와 침묵하며 저항하였던 관란 원호선생은 지금도 남송 양지바른 곳에서 곧은 절개를 지키고 있으며, 취병 김창일도 당쟁과 사화를 뒤로 한 채 문막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이들은 모두 속세를 등지고 사는 듯 했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양심적 신념과 철학을 더욱 굳게 하며, 경전을 통해 학습한 이상국가 건설과 정의로운 사회 실현을 위해 심신을 수양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한 편, 시와 문장을 통해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을 세상에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의 은둔은 치악산 자락과 섬강 물줄기를 휘돌며 뿜어내는 호연지기의 기상으로 백성과 이웃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애민(愛民) 생활의 실천이었으며, 이를 계승하여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산하는 생명의 뿌리를 잇는 사표(師表)로서 가장 모범된 것이었다.

도심이 개발되기 전의 원주는 가운데가 불룩하고 양 끝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양으로, 알을 잉태한 용이 치악산에 기대어 쉬고 있는 형상의 전형적인 포란형 도시였다. 옛날 뱃길로 서울과 맞닿았던 섬강 줄기가 가로지르는 치악산의 정기를 한껏 담은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원주에서의 은둔은 단순히 숨어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인물을 길러내는 은밀하고 숭고한, 또 하나의 가치 있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방울꽃>의 시인 임교순과, 원주의 풍광과 역사를 조명하며 시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김성수 시인을 비롯한 많은 원주의 문인들이 중앙 진출의 유혹을 뿌리치고 원주를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고 창작에 몰두하는 것도 오랜 역사 속에서 면면히 지켜온 생명사상의 실천인 것이다.

※글 작성: 한국문인협회 원주시지부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