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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Kim Chi-ha(jiha) 194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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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하

시인이자 생명운동가, 1970년대 민족문학 상징이자 유신 독재 저항 운동의 중심으로, 도피와 유랑을 거듭하며 투옥과 고문으로 점철된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이다.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호로 노겸(勞謙), 필명 ‘지하(地下)’가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되자 ‘지하(芝河)’로 쓰게 되었다. 1953년 산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족이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사하면서 원주중학교에 편입, 1956년 원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중동고등학교를 나와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인>에 「황톳길」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 굴욕 외교 반대투쟁으로 첫 옥고를 치른 이래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김지하를 돕기 위한 국제적인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일본에서는 이전의 '김지하 구원 국제위원회'를 확대 발전시켜 '김지하를 돕기 위한 모임'을 발족, 교포작가(김석범·이회성·김시종)와 일본 작가(眞繼伸彦·南坊義道)들이 동경 수키야바시 공원에서 1차로 단식에 들어가는 한편 세계에 구원을 호소했다. 스루미 슌스케(鶴見俊輔)·김달수 등이 2차 단식투쟁을 벌이고, 저명 지식인들 사르트르·보부아르·하워드 진·노암 촘스키 등이 김지하 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서명하고 개별 국가별 구원활동이 이어졌다. 7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1975년 2월 출옥 후 옥중기「고행-1974」를 발표하여 재차 투옥되었다. 1973년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소설가 박경리 작가 외동딸 김영주(金玲珠, 28세)와 결혼했다. 1975년‘로터스 Lotus’특별상 수상, 노벨 문학상과 평화상 후보로 추대되었으며, 1980년 12월 정권이 바뀐 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기까지 수년간 투옥·사형구형 등 고초를 겪었다.

199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잇따를 때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라는 글로 논란이 일어 많은 이들의 비난과 원성을 사기도 했으며, 이 일을 계기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직과 회원 자격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1980년을 전후하여 민중사상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생명사상'을 전개, 1990년에는 '한살림 모임' 창립에 참여하여 생명사상의 확대와 민중적 실천을 모색했다. 1998년 율려학회를 발족하여 '율려사상'과 '신인간 운동'을 주창하는 등 한국 전통 사상을 오늘날 상황 속에서 재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사상가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 특별상(1975)을, 국제시인회의로부터 위대한 시인상(1981)을 받았다.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이산문학상(1993)·정지용문학상(2002)·만해문학상(2002)·대산문학상(2002)·공초문학상(2003)·만해대상(2006)·영랑시문학상(2010)·경암학술상(2010)·민세상(2011)등을 수상했다.

동국대학교 생태환경연구센터 석좌교수,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상지대 석좌교수,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시집으로는 『황토』·『타는 목마름으로』·『오적』·『애린』·『검은 산 하얀 방』·『이 가문 날의 비구름』·『별밭을 우러르며』·『중심의 괴로움』·『화개』 등이 있다. 『금관의 예수』·『구리 이순신』외 다수 희곡과 『밥』·『남녘땅 뱃노래』·『살림』·『생명』·『생명과 자치』·『사상기행』·『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남』·『김지하 사상전집』(전3권), 『탈춤의 민족미학』·『김지하의 화두』·『동학 이야기』·『시삼백 詩三百』·『방콕의 네트워크』등 인문·사상·역사·문화·소설 등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럈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오적』의 첫머리에서)


이제 이렇게 한번 가보자.

어떻게?

시의 한 양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 양식에 여러 가지 지향을 담아 그야말로 달이 천개의 강물에 다 다른 얼굴로 비치되 작은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살아 생동하도록 그렇게.

여러 해 전 나는 공자가 당대 민초들의 찬가나 정치적 비판 시 이외에도 노래와 이야기와 교훈적인 시들을 엇섞어 ‘시삼백’의 백화제방을 시경으로 들어 올렸음이 당대 문예의 한 방향 제시였음을 기억해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는 우선 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시삼백’을 원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먼저 나 자신부터 천태만상이니 어쩌랴! (『시삼백 詩三百』서문 중에서)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중략)

오, 주여 이제는 여기

우리와 함께, 주여 우리와 함께

        (『금관의 예수』제1장 나오는 노래에서)

※ 작성: 토지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