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꿩 설화안내
치악산 꿩 설화 안내
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는 원주의 설화중 대표적인 설화는 치악산 꿩설화를 들 수 있다. 은혜갚은 꿩이야기를 매개로 “보은의 도시”로 불리워져 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원주의 설화를 까치의 설화로 잘못 알고 있고, 옛 문헌별로도 설화의 주인공, 주인공이 머문 장소, 등장하는 꿩의 마리수 등 컨텐츠적 요소가 대부분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치악산 꿩이야기를 지난 2006년말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로 정립하여 많은 분들에게 원주의 설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시도하였고, 꿩설화 홍보책자를 제작하는 등 지속적인 알리기 작업을 진행중이다. 정립위원회를 통해 정립된 설화의 내용을 첨부하면 다음과 같다.
꿩설화 조형물 설치 위치
- 설치장소 : 판부면 금대리 국립공원 주차장
- 설치일 : 2008. 8. 30
- 사업비 : 1억원
- 2009년중 조형물 추가 건립 예정 : 신림면 성남리 성황림 부근
옛날에 한 젊은이가 활쏘기를 즐기며 날마다 뒷산에 올라가 열심히 연습을 했다.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화살을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이만하면 한양에 가서 무과 시험을 볼 수 있겠지.’ 자신만만한 젊은이는 벅찬 가슴을 안고 집을 떠났다. 몇날 며칠을 걸어서 원주에 있는 적악산(赤岳山) 재를 넘게 되었다. 깊숙한 산골짜기, 경치 좋고 맑은 물이 흐르는 벼랑 밑에서 피곤한 몸을 쉬고 있을 때, 별안간 어디선가 꿩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꿔궝 꿩, 꿩꿩! 꿔궝 꿩!” 젊은이는 심상치 않은 꿩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바로 길옆 바위 밑에서 큰 구렁이가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어린 꿩들의 둥지를 응시하며 입을 벌려 막 잡아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어미 꿩이 구원을 청하듯 애타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젊은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활과 화살을 빼들고 시위를 당겼다.
“팽”하고 화살이 날아가 구렁이 몸에 박히자 큰 구렁이는 꿈틀거리다 죽어버렸다. 위기를 넘긴 꿩들은 다시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어미에게 다가갔고 옆에서 울부짖던 어미 꿩은 고맙다는 듯 “꿔꿩” 소리를 내며 새끼들과 함께 먹이를 구하러 날아올랐다. 젊은이는 순간적으로 활을 쏘았지만 마음 한편으론 꺼림칙했다. “꿩들은 살려줬지만 구렁이를 죽였으니, 잘 한 일은 아니지!”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산길을 걸었다. 해가 지기 전에 재를 넘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깊은 산 속이라 밤이 되면 산짐승들도 돌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져서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두운 산길을 더 갈 수가 없어서 젊은이는 큰 나무 밑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 때 수풀사이로 불빛이 반짝반짝 꿈결 같이 보였다.
‘아! 저기 사람 사는 집이 있구나.’
젊은이는 허겁지겁 불빛만 보고 얼마쯤 걸어서 큰 기와집 앞에 다다랐다. 대문간에서 가쁜 숨을 내 쉬며 주인을 불렀다.
“주인 계시오? 주인 계시오.”’
한참만에야 인기척이 나며 소복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 등불을 들고 나왔다.
“과거보러 길을 가다가 산 속에서 날이 저물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가게 해 주십시오.”’
“손님의 사정은 딱하지만, 저도 오늘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혼자 있습니다. 손님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군요.”
소복을 한 여인의 눈빛이 유난히 푸르게 빛났다.
젊은이는 섬짓한 느낌이 들었지만 헛간에서라도 자고 가게 해 달라고 다시 한 번 간청하였다.“정 그러시다면 따라 오시지요.” 마지못해 허락하는 여인의 뒤를 따라 들어간 곳은 사랑채에 있는 방이었다. “누추하지만 여기서 쉬십시오.” 젊은이를 힐긋 쳐다보고 나가는 여인의 눈빛에 독기 같은 것이 얼핏 서려 있었다.’
피곤해서 바로 자리에 누웠지만 하루 종일 험한 산길을 걸어 온 젊은이는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먹을 것을 청하려고 할 때, 마침 여인이 밥상을 차려 들고 들어왔다. 너무 배가 고팠던 터라 젊은이는 밥상을 받기 무섭게 정신없이 밥그릇을 비웠다. 젊은이는 상을 물리자 가물가물 졸음에 빠져 그냥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꿈인지 생시인지 젊은이는 몸이 선득 선득 차갑고, 조여 오는 듯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큰 구렁이가 젊은이의 몸을 칭칭 감고 두 가닥의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 왔다.
“당신은 오늘, 오던 길에서 살생을 했소. 당신 화살에 맞아 죽은 구렁이가 바로 내 남편이오. 나는 내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당신을 여기로 유인한 것이오.” 젊은이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바로 여인의 말소리였다.
“나도 살생은 원하지 않았지만 꿩이 하도 가여워 순간의 동정심 때문에 생전 처음 죄를 졌소. 하지만 큰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니 제발 살려 주시오.” 젊은이는 숨을 헐떡이며 애원하였다.
“내 남편과 나도 전생에는 사람이었는데 너무 탐욕이 많아 벌을 받고 구렁이가 되었소. 하지만 저 위 빈 절 종각에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 달려 있는데, 오늘밤이 새기 전에 종소리가 세 번만 울린다면 우리 죄도 풀린다오. 그렇게만 되면 당신도 살려 주겠소.”
큰 구렁이 입에서 여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빈 절 종각에 매달린 소리 안 나는 종이 어떻게 소리를 낼 수가 있나,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젊은이는 낙담을 하며 눈을 딱 감았다.
밤은 깊어져서 삼경이 지났지만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때, ‘땡’, ‘땡’, ‘땡’ 세 번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구렁이도 종소리를 들었는지 칭칭 감았던 젊은이의 몸을 스르르 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날이 훤히 밝았다.
젊은이는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종소리가 났던 빈 절의 종각을 찾아 올라가 보았다.
과연 종각에는 종이 달려있었고 그 밑에는 꿩 세 마리가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젊은이는 감격하여 울면서 “어제 살려준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머리로 종을 쳐서 소리를 냈었구나! 아무리 말 못하는 날짐승이지만 보은(報恩), 해원(解怨)하는데 목숨을 바쳤으니 내가 그 영혼을 달래주어야겠구나.” 젊은이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죽은 꿩들을 묻어주고, 과거 길을 포기한 채 빈 절을 고쳐 거기서 살았다. 그 절이 지금의 치악산 상원사(上院寺)요, 단풍색이 고와 적악산(赤岳山)으로 부르던 산 이름도 붉을 적(赤)자 대신 꿩 치(雉)자를 넣어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