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
지역명 | 원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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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동(園仁洞) | |
[위치] 시청에서 남쪽으로 0.8km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원주천을 경계로 봉산 2동·개운동과 서쪽으로는 일산동과 명륜 1동, 남쪽으로는 명륜 1동, 북쪽으로는 중평동 및 일산동과 접해 있는 시의 중심지역이다. [유래] 원동은 상수도 제1배수지 일대를 정점으로 하는 남산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 둥글 원(圓)자를 사용하여 원동(圓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남산(南山)에는 옛날 달맞이 하던 추월대(秋月臺)가 있었고 일제시대엔 신사(神社)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인동은 조선시대 원주목사 한준겸(韓浚謙)의 딸이 이곳에서 태어나 후에 16대 인조대왕의 비(妃)인 인열왕후가 되어 고장을 빛낸 것을 기리기 위하여 쌍다리 분수대옆의 생가에 비각을 세웠으며 이 비각의 “인(仁)”자에서 유래하여 인동(仁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연혁] 1910년 10월 1일 원주군 본부면 상동리에 속해 있다가 1937년 10월 1일 원주읍으로 승격되면서 14개 정(町)으로 분할되었을 때 대화정(大和町)이 인동(仁洞)으로, 남산정(南山町)이 원동(園洞)으로 편제되었다. 그 후 1945년 정(町)을 동(洞)으로 하여 지금의 인동과 원동이 생겼다. 1955년 9월 1일 원주읍이 원주시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법정명칭인 인동·원동이 되었고 1961년 연합동제 실시에 따라 원동·인동을 원인동으로 연합하여 현재까지 행정동명이 유지되고 있다. [지명] 다박골 [마을] [위치] 원동 17통 학림원(鶴林園) 부근과 원동아파트 단지 일대의 구릉지를 말한다. [유래] 원동 1,2단지 아파트와 하사관 주택, 기타 일반주택들이 밀집하여 있으나 예전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고 하여 다박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문거리(東門-) [도로] [위치] 인동과 평원동 경계를 있는 길이다. [유래] 조선조 때 강원감영(江原監營)의 동문(東門)이 있었다. 상동리(上洞里) [마을] [위치] 지금의 개운동 지역을 가리킨다. [유래] 원주를 쌍다리를 중심으로 북쪽을 하동리, 남쪽을 상동리라고 부른데서 기인한다. 서낭당고개 [고개] [위치] 원동에서 원주시 무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유래]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인동(仁洞) [동] [위치] 원주천 쌍다리의 서쪽, KBS 방송국의 동쪽에 위치한다. [유래] 본래 원주군 본부면(本部面) 상동리(上洞里)의 구역인데, 1936년 원주읍제 실시에 따라 본정일정목(本町一丁目)이라 하다가, 1946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인동으로 고쳤다. 추월대(秋月臺) [정자] [위치] 남산 봉우리 동북쪽에 능선 끝에 있던 대를 말한다. 원동 산20번지로 현 KBS 남쪽 언덕에 있다. [유래] 옛 기록에 여기에 정각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고 인조 때의 강원도관찰사였던 이민구가 이 봉우리에 올라 가을달을 보고 그 경관이 좋아서 이곳을 추월대라고 처음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과거 이곳에서 가을달을 바라보며 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를 읊었다 하며 이민구의 시가 한 수 전하고 있다. 6·25전쟁 전까지는 여기가 빈 동산이었는데 지금은 주택이 들어섰다. 지난 1995년 원주시와 원주문화원에서 일부 터를 확보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동주(東洲) 이민구(李敏求)의 ‘등추월대(登秋月臺)’ 시가 새겨져 있다. 호주말 [마을] [위치] 예전 소방서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원주시청별관 남쪽지역이다. [특이사항] 옛날에 백정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