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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작성일 2016.11.28 조회수 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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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곡리(鶴谷里)
작성자 관리자
[위치]
학곡리는 치악산 국립공원 및 구룡사가 소재하고 있는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횡성군 우천면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평장리, 남쪽으로는 치악산이 횡성군 강림면을 가로막고 잇다. 북쪽은 횡성군 우천면과 접하여 있다. 동과 남으로는 치악산과 그 줄기인 매화산이 막혀 있다.



[유래]
현 학곡저수지를 활골저수지라고 하는 등 활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활골을 한자로 학곡으로 적은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하지 않다.



[연혁]
본래 소초면의 지역으로서, 팔리(八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곡, 이흥, 백교, 수철, 삼신, 신흥, 장대, 칠송, 토동, 토정을 병합하여 학곡리라 하였다.



[특이사항]
학곡리는 주민 90%이상이 관광객을 상대로 상업에 종사하는 지역이다.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는 구룡사 대웅전이 있고 치악산 시루봉에서 서북간의 계곡인 구룡골은 치악산을 대표할만한 명산계곡으로 이름이 높다.


[지명]
▲갈멜산기도원 [기도원]
[위치] 학곡2리에 있는 감리교 기도원을 말한다.

▲강원도 자연학습원 [연수원]
[위치] 학곡리 1008번지, 구룡사 북쪽 계곡 너머에 있다. 옛 영말지역이다.
[내용] 부지면적 47,447㎡로 최대 181명을 수용할 수 있고 강당, 소회의실, 야외광장, 운동장, 배구장, 테니스장과 자연관찰로 등을 갖추고 있는 자연학습 및 심신수련교육장이다.

▲거릿담 [마을]
[위치] 큰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대동이라고도 한다.
[풀이] 거리+담>거리담>거릿담이 되었다. '거리'는 크고 넓은 곳을 말한다.

▲고든재고개 [고개]
[위치] 구룡골에서 원주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유래] 고개가 쭉 곧았기 때문에 곧은+재>곧은재>고든재가 되었다. 고든치, 고둔치도 같은 이치이다.

▲고든재서낭당 [당]
[위치] 고든재 고개에 있는 서낭당을 말한다.

▲교학초등학교
[위치] 학곡리 667번지, 구룡사 입구 학곡리 토동에 있다.
[내용] 1943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6학급에 약 90명의 학생이 있다.

▲구룡계곡 [골] → 구룡골

▲구룡골 [골]
[위치] 구룡사 앞의 긴 골짜기를 말한다. 구룡계곡, 큰골이라고도 한다.
[내용] 구룡사가 있는 골짜기를 구룡골, 구룡계곡, 큰골로 부르는데 구룡골, 구룡계곡은 구룡사 부근에서부터 부르는 이름이고 큰골은 학곡저수지에서부터 골짜기 전체를 칭하는 이름이다.

▲구룡골 공동묘지 [묘]
[위치] 무쇠점 뒷골에 있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구룡사(龜龍寺) [절]
[위치] 국립공원 치악산 큰골에 있는 조계종 사찰을 말한다.
[유래] → [전설] 및 [유물 유적]

▲구룡사 대웅전 → [유물 유적]

▲구룡사 보광루 → [유물 유적]

▲구룡사 부도 [탑]
[위치] 구룡사 입구에 있는 부도를 말한다. 총 9기의 부도가 있다.

▲구룡사송비(九龍寺頌碑) [비]
[위치] 구룡사 경내 은행나무 밑에 있다.
[유래] 원래는 보광루각 밑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구룡사를 찬양한 송시를 표시한 비석인데 화강암의 대리석 위에 오석으로 가로가 146㎝이며, 세로는 105㎝이다. 1983년 10월 8일에 제작되었으며 당시 주지로 있던 태허 박종영스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시는 이우제 시인이 썼으며 글씨는 이흔종이 썼다.

▲구룡사 설선당 → [유물 유적]

▲구룡사 심검당 → [유물 유적]

▲구룡소 [소]
[위치] 구룡사 동남쪽, 구룡폭포에 있는 소를 말한다. 용소라고도 한다.

▲구룡폭포 [폭포]
[위치] 구룡소에 있는 폭포를 말한다. 높이 2.5m이며 치악산 정상인 시루봉과, 천지봉, 배너미골의 물이 모여서 폭포를 이루고 있다.

▲국사당 [당]
[위치] 구룡사 정문인 원통문 안에 있다.
[특이사항] 산신인 노인과 장군의 화상이 모셔져 있다.

▲길재 [고개]
[위치] 구룡사 입구 신흥동에서 평장리 안골로 넘는 고개이다. 당재, 길현이라고도 한다.
[유래] 고개가 길다고 하여 길재라 하였다.
[특이사항] 매우 길고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길재 [마을]
[위치] 길재 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구룡사 입구 서편에 있다. 당재라고도 한다.
[유래] 고개이름이 마을이름으로 되었다.

▲길재골 [골]
[위치] 큰골에서 길재 마을을 거쳐 길재고개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길현(吉峴) [마을] → 길재

▲다리골 [골]
[위치] 무쇠점에 위치한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다리가 있어서 다리골이라 한다.

▲당재 [고개] → 길재
[유래] 전에 당이 있었으므로 당재라고 한다.

▲당재 [마을] → 길재

▲대곡(大谷) [마을] → 큰말

▲대곡야영장 [터]
[위치] 구룡사 위, 세렴폭포 아래에 있는 야영장을 말한다.
[내용] 부지면적 17,669㎡로 텐트 300동, 수용정원 1,000명이며 취사장, 식수대, 화장실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동(垈洞) [마을] → 거릿담

▲대성암 [터]
[위치] 구룡폭포 위에 있었다는 절터를 말한다.

▲도끼봉 [산] → 토끼봉

▲도시람 [골] [마을] → 도실암, 도실암골

▲도실암 [마을]
[위치] 구룡사 위 화전민이 살던 마을로 현 치악산약초원이 있는 자리이다.

▲도실암골 [골]
[위치] 구룡사 위 남서쪽 골짜기를 말한다. 쥐너미재에서 현 치악산 약초원까지의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는 중간에서 선녀탕 쪽과 갈라진다. 도시람이라고도 한다.

▲도실암재 [고개]
[위치] 토끼봉에서 도실암골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동락원 [마을]
[위치] 구룡사 동쪽 개울 건너에 있다. 지금은 집만 남아 있다.

▲동냥골 [골]
[위치] 토동 뒤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막골 [마을]
[위치] 구룡골에 딸린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옛날에 여기에서 막을 치고 살던 곳이라 해서 막골이라 불렸다.
[특이사항]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맞바우 [바위]
[위치] 황룡보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매지곡(梅芝谷) [마을] → 매지골

▲매지골 [골]
[위치] 한다리 동쪽으로 나 있는 큰 골짜기를 말한다. 수레너미로 이어진다.

▲매지골 [마을]
[위치] 한다리 동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매화산 밑에 있다.

▲매화산 [산]
[위치] 한다리 남동쪽에 있는 높이 1085m의 산을 말한다. 신선봉이라고도 한다.
[내용] 소초면 학곡리, 횡성군 우천면,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이다. 수레너미를 경계로 하여 치악산과 구분되며 북쪽에는 강림으로 넘어가는 전재가 있다.

▲무당골 [골]
[위치] 매지골 북쪽, 한다리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무쇠점 [마을]
[위치] 한다리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한다리와 신흥동 사이에 있다. 수철이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에 이곳에서 쟁기를 굽는 무쇠점이 있어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문바위 [바위]
[위치] 배너미골 아래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문처럼 생긴 돌이 두 개가 있어 문바위라 한다.

▲문바위골 [골]
[위치] 배너미골 아래 문바위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배너미 [산]
[위치]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있다.

▲배너미골 [골]
[위치] 세렴폭포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배너미재 [고개]
[위치] 세렴폭포에서 이어지는 배너미골로 이어지는 고개를 말한다. 배네미재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곳으로 배가 넘어다녔다고 해서 유래하였다.
[내용] 천지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비로봉에 닿고 남쪽으로는 강림면 부곡에 닿는다.
[풀이] 산이름에는 '배'나 '박'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 ' 계통의 이름으로 보고 있다. 태백, 함백, 소백, 박달재 등도 이 부류의 것이다. 따라서 '배'는 큰 산이란 뜻으로 보이며 배너미는 큰 산(치악산) 너머, 배너미재는 큰 산을 넘는 고개의 뜻이다. 백달리의 '백'도 같은 이치이며 '달'은 산이나 들을 의미했다.

▲배네미재 [고개] → 배너미재

▲배무덤 [산]
[위치] 배너미 부근에 있는 산을 말한다.
[유래] 옛날에 원주쪽에서 배가 배너미로 넘어와서 이곳에 묻혔다 한다.

▲백교(白橋) [마을] → 한다리

▲백동(栢洞) [마을] → 잣나무거리

▲백배미 [마을]
[위치] 잣나무거리(백동) 서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백배미골 [골]
[위치] 백배미 마을 남쪽에 42번 도로를 따라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범담재 [고개]
[위치] 구룡사에서 영말로 넘어오는 고개를 말한다.
[유래] 옛날 범이 나타났다 하여 유래되었다.

▲부네미고개 [고개]
[위치] 교항리 다리목에서 활골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비로봉(飛蘆峰) [산] → 시루봉

▲비루봉 [산] → 시루봉

▲비호봉(飛芦峰) → 시루봉

▲사다리병창 [바위]
[위치] 구룡사 큰골에서 세렴폭포와 갈라지는 곳에서 시작되는 바위로 된 치악산의 주 등산로이다.
[유래] 바위 모양이 사다리를 곤두세운 것 같다고 하여 사다리병창이라고 부른다. '병창'은 영서 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한다.

▲삼신동(三新洞) [마을] → 슥새울

▲새말담 [마을]
[위치] 학곡저수지 서쪽에 있다. 신촌이라고도 한다.
[유래]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새말담이라 한다.

▲새재 [마을]
[위치] 새재골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신밑, 신현이라고도 한다.
[유래] 새로 생긴 고개 밑이라 하여 새재라 부른다.

▲새재골 [골]
[위치] 무쇠점 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로 치악산 밑이다. 원주시로 통한다.

▲선녀탕 [소]
[위치] 구룡소와 세렴폭포 중간에 있다. 도실암골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우물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유래]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온 곳이라 해서 선녀탕이라 부른다.

▲세렴폭포 [폭포]
[위치] 구룡사 큰골에서 배너미골 입구에 있다. 천지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는 곳이다.

▲쇠내미골 [골]
[위치] 구룡사 서쪽, 뒤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수레너미 [고개]
[위치] 한다리에서 동남쪽 골짜기로 길게 이어지는 고개를 말한다. 동쪽으로는 강림과 통하고 북쪽으로는 매화산 능선과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을 거쳐 치악산 천지봉과 연결된다. 수루네미라고도 한다.
[유래]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스승인 운곡 원천석을 찾아 강림으로 갈 때 수레를 타고 넘었다고 하여 유래하였다.
[풀이] 전국에 수레너미란 지명은 많다. 이 때 '수레'는 車의 뜻이기보다는 산의 정상을 뜻하는 '술, 수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산의 정상을 넘는 고개'란 뜻이다. 산이름을 뜻하는 많은 '수리봉'도 수리가 살아서일 수도 있으나 정상이란 뜻이 있다.

▲수루네미 [고개] → 수레너미

▲수철(水鐵) [마을] → 무쇠점

▲숙새울 [마을] → 슥새울

▲슥새울 [마을]
[위치] 무쇠점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슥새울, 동골로 가는 길에 있다. 삼신동, 숙새울이라고도 한다.
[유래] 3을 뜻하는 '석'의 영서방언 '슥'이 쓰여 슥새울, 숙새울이 되었다.

▲시루봉 [산]
[위치] 치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1288m이다. 비로봉, 비루봉, 비호봉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큰 돌탑 세 개가 있다.
[유래] 모양이 시루같다 하여 유래하였다.
[풀이] 전국에 비로봉, 시루봉은 많다. '비로'는 ' '계통의 '부루'를 한자로 표기할 때 부처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칭호인 불교계통의 '비로자나불'에서 '비로'를 붙인 것이라고 하며 '시루'는 모양이 시루처럼 생겨서 붙였다고 하는데 이는 꼭대기를 뜻하는 '술, 수리'에서 온 말로 추정된다.

▲시루봉 돌탑 [탑]
[위치] 시루봉 정상에 있는 세 개의 돌탑을 말한다.
[유래] 치악산 정상에는 약 10m 높이의 돌탑이 세 개가 있는데 이는 봉산동에 살던 용진수라는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고 1962년부터 10년 동안 혼자서 쌓은 것이라고 한다. 3도가 보이는 곳에 3년에 하나씩 돌탑을 쌓으라는 계시가 있어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신밑 [마을] → 새재

▲신선봉(神仙峰) [산] → 매화산

▲신식골 [마을]
[위치] 학곡리 삼신동 안의 마을을 말한다.

▲신촌(新村) [마을] → 새말담

▲신현(新峴) [마을] → 새재

▲신흥동 [마을]
[위치] 구룡사 버스 주차장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안담 [마을]
[위치] 학곡 1리 거릿담 안쪽에 들어가 있는 골짜기에 있다.

▲영골 [골]
[위치] 영말 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현 자연학습원이 있는 골짜기로 천지봉으로 가는 골짜기이다.

▲영말 [마을]
[위치] 구룡사 입구에서 왼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재 자연학습원 위치이다. 이흥이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에 역이 있었다고 하여 역말>영말이 된다.
[풀이] 이 마을이름을 '이흥'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역과는 상관없이 이흥>이응>이엉>영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영산나무 [나무]
[위치] 칠송 뒤의 소나무를 말한다.
[특이사항] 수령 270년 정도 된 소나무로 영험함이 있다 한다.

▲오전골 [골]
[위치] 점골 북쪽, 구룡사 가는 길 남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옻물 [샘]
[위치] 새말담에 있는 우물을 말한다.
[유래] 옻 오른 사람이 먹고 목욕하면 효험이 있다 한다.

▲용너미고개 [고개]
[위치] 영말에서 다리골로 가는 고개를 말한다.

▲용소(龍沼) [소] → 구룡소
[위치] 구룡사 바로 위 구룡폭포에 있는 소를 말한다. 구룡소라고도 한다.
[유래] 용이 바위를 가르며 올라갔다 하여 유래하였다.

▲원통문 [건물]
[위치] 구룡사 입구에 있는 건물을 말한다. 구룡사의 문 구실을 한다.

▲월봉 [골]
[위치] 치악산의 한 골짜기를 말한다.

▲이흥 [마을] → 영말

▲이흥동 [마을] → 영말

▲작은 매지골 [골]
[위치] 매지골에서 북쪽으로 갈라지는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잣나무거리 [마을]
[위치] 학곡저수지 바로 서쪽을 말한다. 백동(栢洞)이라고도 한다.
[유래] 잣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유래하였다.

▲장대(場垈) [마을] → 장터

▲장터 [마을]
[위치] 학곡저수지에서 구룡사 들어가는 바로 왼쪽 마을을 말한다. 현 상가 밀집 지역이다.
[유래] 전에 시장이 서서 장터라고 한다.

▲절께 [마을]
[위치] 구룡사가 있는 근처의 마을을 말한다.
[유래] 절 부근이라고 해서 절께라고 부른다.

▲점골 [골]
[위치] 무쇠점 북쪽에서 매화산 쪽으로 뻗어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정은사 [절]
[위치] 학곡1리 275번지에 있는 법상종 사찰을 말한다.

▲진달래능선 [산]
[위치] 수레너미에서 천지봉으로 가는 산의 능선을 말한다.
[유래] 봄에 진달래가 많이 피므로 진달래능선이라고 한다.

▲창대봉 [산]
[위치] 비로봉 아래, 구룡소에서 약 5km 위치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유래] 모양이 마치 장수가 창을 짚고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창대봉이라 한다.

▲천지봉 [산]
[위치] 영말 골짜기 위에 있다. 구룡사의 동남쪽에 있는 높이 1086m의 봉우리이다.
[유래] 9개의 능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승천하는 9마리의 용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내용] 구룡사에서 마주 보이는 가장 큰 봉우리로 북쪽으로는 진달래능선을 거쳐서 수레너미, 매화산으로 향하고 남으로는 배너미재를 거쳐서 비로봉에 닿는다.

▲천지봉고개 [고개]
[위치] 학곡리에서 횡성군 우천면 백달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촛불 장학탑 [탑]
[위치] 장터 서쪽, 큰 골 입구에 있다.
[유래] 원주군 발전을 주도해 나갈 향토인재 양성을 위해 정성과 의지를 모아 장학회 설립을 기념한 탑으로 1990년에 건립하였다.

▲치악산약초원 [마을]
[위치] 구룡소 위에서 도실암골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내용] 옛날 도실암 마을 자리인데 지금은 약초를 재배하고 있다.

▲치악산 원주드림랜드 [공원]
[위치] 학곡리 223-3번지, 치악산 국립공원 보호구역내에 있다.
[내용] 치악산 드림랜드는 치악산 국립공원 구룡사 입구 83,000여평 대지에 사자와 호랑이, 곰 등 천연기념물 72종 758여 수의 동물가족과 원더힐, 레인져 등 23종의 각종 유희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밖에 자연학습관에는 650여종의 동물과 곤충 표본을 전시,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야외수영장, 눈썰매장, 천혜의 산림욕이 가능한 수목원과 산책로 및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는 대형 상설무대를 갖추고 있는 종합레저 공원이다.

▲치악산자연학습원 [연수원] → 강원도 자연학습원

▲치악3교 [다리]
[위치] 한다리 앞, 치악2교 위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27m, 너비 9m로 1986년에 가설하였다.

▲치악2교 [다리]
[위치] 한다리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81m, 너비 9m로 1986년에 가설하였다.

▲칠송동(七松洞) [마을]
[위치] 한다리 북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소나무 일곱그루가 있어서 유래하였다.

▲큰골 [골]
[위치] 무쇠점에서 구룡사를 거쳐 정상까지 이르는 긴 골짜기를 말한다. 대곡이라고도 한다.

▲큰골 [마을] → 큰말

▲큰다리골 [골]
[위치] 무쇠점에서 구룡사 가는 길 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큰말 [마을]
[위치] 영말 남쪽 구룡사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큰골이라고도 한다.

▲토동(土洞) [마을] → 토물

▲토물 [마을]
[위치] 장터 건너편 마을로 학곡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을 말한다. 토동(土洞)이라고도 한다.
[유래] 좋은 우물이 있어서 마을이름을 토물이라 하였다.

▲토물 [샘]
[위치] 토물 마을에 있는 샘을 말한다.

▲토물골 [골]
[위치] 토물 마을 뒷편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골짜기를 말한다.

▲토정(土井) [마을]
[위치] 칠송 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토정골 [골]
[위치] 토정 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토끼봉 [산]
[위치] 삼봉과 투구봉 능선으로 투구봉 북쪽에 있는 높이 887m의 봉우리이다. 도끼봉이라고도 한다.

▲투구봉 [산]
[위치] 시루봉 삼봉과 토끼봉 사이에 있는 높이 997m의 봉을 말한다.
[유래] 옛날 장군이 투구를 벗어놓고 쉬었다는데서 유래하였다. 모양도 투구와 비슷하다.
[내용] 치악산 주능선은 쥐너미재에서 다시 새로운 능선으로 시작되는데 삼봉을 거쳐 북쪽 아래로 투구봉이 있고 그 다음이 토끼봉이다. 투구봉 동쪽으로는 도실암골이 있고 서쪽으로는 흥양리 새두둑에 닿는다.

▲퉁퉁바우 [바위]
[위치] 구룡골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바위가 크고 퉁퉁해서 두드려보면 퉁퉁 울리는데서 유래하였다.

▲학곡 공동묘지 [묘]
[위치] 학곡리 서북쪽 치악산 아래에 있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학곡교 [다리]
[위치] 학곡저수지 위, 구룡사에서 내려오는 학곡천을 건너는 다리로 42번 국도에 있다.

▲학곡교회1 [교회]
[위치] 소초면 학곡1리 383-1번지에 있는 감리교 교회를 말한다.
학곡교회2 [교회]
[위치] 소초면 학곡1리 573-5번지에 있는 순복음교회를 말한다.

▲학곡리 도요지 [터]
[위치] 백교 북쪽 산기슭에 있는 도요지 터를 말한다.
[내용] 예전부터 구룡사의 기와를 굽던 요지가 있었다는 말이 전하여 졌는데 1985년 농지정리 과정에서 요지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현재 많은 기와조각과 가마 구조물이 발견되고 있다.

▲학곡저수지 [못]
[위치] 구룡사 입구 학곡리 앞에 있는 큰 저수지를 말한다. 활골저수지라고도 한다.
[내용] 구룡사의 큰골과 매화산 수레너미의 물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든다.

▲한다리 [마을]
[위치] 장터와 무쇠점 사이에 있는 큰 마을이다. 백교(白橋)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에 흰 돌로 만든 다리가 있어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풀이] 한+달+이>한달이>한다리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달'은 산 또는 들을 말하므로 큰 산의 뜻이다. 매화산, 치악산 아래에 있으므로 큰 산 아래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 같다. 한+달+이>한다리가 되므로 '다리'를 다리(橋)로 보고 한은 ' '계통의 '백'을 취해서 백교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달리의 백달과 같은 이치이다.

▲활골저수지 [못] → 학곡저수지

▲황룡보들 [들]
[위치] 학곡1리 칠송 서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유래] 황룡보가 있었다고 해서 유래하였다.

▲황장금표(黃腸禁標) [유적]
[위치] 구룡사 매표소 왼쪽에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그 밑 신흥동 들어가는 길 옆에 있다.
[내용]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지정문화재인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제1황장금표의 전체 규격은 폭이 47㎝, 둘레가 270㎝로 석질은 자연석이다. 이 자연석 반반한 전면에 "標禁腸黃"라 새겼으며 조각의 글씨 규격은 보통 가로 11㎝, 세로 14㎝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이 금표는 황장목 봉산(황장목 封山:널판지로 사용하는 품질 좋은 큰 소나무가 있는 국가 지정 보호 국유림)의 경계 표시로서 황장목 금양(禁養:궁중용 재 보호를 위하여 일반인의 도벌을 금지하는 경고표)으로 설치된 것이다. 치악산은 질이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강원감영이 가까워 관리에 유리하고 한강 상류에 자리하여 뗏목으로 운반이 편리하여 조선초기 전국 60개소의 황장목 봉산 가운데서도 이름 난 곳의 하나이다. 정확한 설치 연대는 알 수 없다.
[특이사항] 입구 주차장 아래 구 도로변에 제2황장금표가 있다. 이는 글자가 뚜렷하지 않아서 판독에 어려움이 있다.


[전설]
[구룡사의 유래]
옛날에 무착대사인지 의상조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학같은 늙은 스님 한 분이 원주지방에 찾아와 절터를 두루 고르고 있다가 치악산 구룡골에 멎었다. 스님이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지르는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그런데 대웅전을 짓자면 연못을 메워야 하는데 그 큰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용을 내쫓을려고 하는 말을 용들이 듣고는 대사에게 내기를 걸었다. 대사와 서로 내기를 해서 이기는 쪽이 마음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우박 같은 비를 쏟아놓았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은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대사 또한 물 속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았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로 건너 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대사가 물 속의 귀신이 되었겠다 생각하고는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사는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 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대사는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 것인즉 너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보아라." 하고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 속에 넣었다. 얼마 안 있어 연못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 속에서 뜨거움을 참다 못한 용들은 뛰쳐나와 한 달음에 동해바다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한 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미쳐 달아나지를 못하고 근처에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 용들이 달아나자 대사는 못을 메우고 지금의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
한 편 뜨거운 물에 쫓겨 달아나던 용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구룡사 앞산을 여덟 개로 쪼개놓으며 도망했다 하는데 지금도 구룡사에서 동해를 향한 능선은 여덟 개의 골이 있으며 이 때 미쳐 도망하지 못한 눈먼 한 마리의 용은 구룡사 옆에 있는 용소에서 지난 왜정 때까지 살다가 그해 여름 장마 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또한 지금 아홉 구(九)자 대신 거북 구(龜)자를 쓰는데 이 글자를 바꾸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되는지라 인근 사람들은 나물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받치기도 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아무리 부처님 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 즈음 한 스님이 찾아와 몰락한 이 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절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바위를 쪼개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는 더욱 적어지고 거찰(巨刹)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 절문을 닫아야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런 어느 날 도승 한 분이 또 찾아와서 절이 이렇게 몰락하는 이유는 이름이 맞지 않아서라고 하고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던 거북바위가 절의 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동강으로 내 혈맥을 끊어버렸으니 운이 막힌 것이오" 하며 거북이 이미 죽었지만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 구(九)자 대신 거북 구(龜)자를 쓰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지금 현판에 새겨진 대로 치악산 구룡사(龜龍寺)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유물 유적]
[구룡사]
구룡사(龜龍寺)는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절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한편 [치악산구룡사유적(雉岳山龜龍寺事蹟)]에 의하면 신라말의 고승(高僧) 도선국사(道詵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현재 구룡사의 역사는 유일한 자료인 寺中기록에 의지할 수 있는데 숙종 32년(1706)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구룡사의 모든 건물은 숙종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 밖에 참고할 자료는 없으며 근자에 이루어진 중수(重修)에 대해서는 태허당(太虛堂) 종영사(宗泳師)의 공적을 들 수 있다. 종영사는 황폐되었던 사찰 전모를 새로 지어 1966년에 보광루(普光樓)를 해체 복원하였고, 1968년에는 심검당(尋劍堂) 및 요사(寮舍)를 보수하였다. 1971년에는 삼성각(三聖閣)을 보수하였으며, 1986년에 주지 정휴(正休)에 의해 사찰이 말끔히 단장되었다.

[구룡사 대웅전]
대웅전은 1971년 12월 16일에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후기에 건립한 것으로 정면 3간, 측면 2간이며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전면으로 보아 기둥 위에 공포( 包)를 두고 주심포 사이에도 공간포(空間包)를 2조(組)씩 배치한 다포계양식(多包系樣式)이며 팔작(八作)지붕으로 되어 있다. 공포의 외부 제공(諸工)은 앙설형(仰舌形)이 중첩되었고 앙설(仰舌) 윗몸에는 각각 연꽃을 조각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내부 제공은 하나로 연결하여 당초(唐草)무늬를 초각하였다. 특히 불상 위에 있는 보개(寶蓋)는 보개(寶蓋)되어 특이하다. 전면 중앙칸은 조금 넓고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았는데, 문짝 가운데 중앙 2짝은 빗살문, 나머지 2짝은 정자(井字)살문이며 좌우 양간(兩間)에는 삼분합 정자(三分閤 井字)살문을 달았다.
천장의 중앙부는 우물천장을, 둘레에는 빗천장을 가설하였으며 연꽃과 봉황(鳳凰), 운문(雲紋), 비천상(飛天像) 등을 채화(彩畵)하여 금단청(錦丹靑)과 함께 매우 화려하고 장엄하다. 지붕은 한식 골기와이며 용마루에 치미가 붙어 있고 네 귀퉁이에 풍경이 달려 있다. 조선후기의 건물이나 장중한 형태가 주의를 끈다. 이 불전은 공포 내 외부의 장식적인 조각솜씨 및 구조수법 등으로 보아 1900년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76년에 보수 단청되었다. 대웅전 내의 닷집은 이곳 주변에서 보기드문 화려하고도 장중한 것이며, 대웅전 건물자체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조선후기의 건물이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90여평의 심검당 설선당의 승사(僧舍)가 있고 심검당의 뒤에 서상원(瑞像院)과 설선당 뒤에 요사가 있다. 정면에는 보광루가 있는데, 38평으로 내부 바닥에는 짚으로 만든 우리 고유의 멍석을 깔았다. 이밖에도 삼성각 범종각 원통문 국사단 사천왕문 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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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