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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작성일 2016.11.28 조회수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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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리(鼎山里)
작성자 관리자
[위치]
정산리는 면소재지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단강리, 서쪽은 남한강변과 충청북도 앙성면, 남쪽은 충북 앙성면 목미리, 북쪽은 법천리, 손곡리와 접하고 있다.

[유래]
솔미 남동쪽 강어귀에 앙성면 강천리로 가는 나루터를 배경으로 솔미산 밑에 발달된 마을을 지칭한다.
솔미산 밑에 있으므로 솔미라고 하였는데 이곳 부근의 산 모양이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정산리라 하였다 한다.

[연혁]
원래 원주군 부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덕, 거론, 단내, 서작, 자작, 천곡, 포담을 합병하여 정산리라 하였다.


[특이사항]
거돈사터에는 국보 제 119호로 지정된 원공국사의 승묘탑비가 있다. 이 비는 고려 광종 때의 해동공자로 일컫는 최충(崔 )이 왕명을 받들어 글을 짓고, 김거웅(金巨雄)이 글씨를 썼다.

[지명]
▲개소 [마을]
[위치] 솔미 남동쪽 강가 염태고개 남서쪽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포담(浦潭), 개수라고도 한다.
[유래] 개(포구)에 소가 있어서 이를 개소라 하여 마을이름이 되었으며 한자로 포담(浦潭)으로 적었다.

▲개소고개 [고개]
[위치] 염태고개 남서쪽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개수 [마을] → 개소

▲거돈사지(居頓寺址) 삼층석탑 [탑]
[위치] 정산리 159번지 거돈사터에 있는 석탑을 말한다.
[내용] 이 석탑은 9세기 신라 석탑이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에는 우주가 새겨 있고 옥개석은 층급 받침이 5단으로 귀 끝이 약간 치켜들려 있다. 탑꼭대기의 상륜부에는 노반이 남아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 3층 정형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높이는 5.3m이다. 1983년에 보물 제750호로 지정되었다.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 [탑]
[위치] 원래 정산리 159번지 거돈사터에 있던 원공국사승묘탑으로 일제 때 옮겨져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보관되고 있다.
[특이사항]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워졌고, 보물 제190호로 지정되었다.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圓空國師勝妙塔碑) [비]
[위치] 정산리 거돈사터에 있다.
[유래] 이 비는 고려의 고승 원공국사(930-1018)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서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워졌다.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일컬어지는 최충(崔 )이 왕명을 받들어 글을 짓고, 김거웅(金巨雄)이 글씨를 썼다. 1963년에 보물 제78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귀부의 거북머리가 용머리같이 변화하였는데 양쪽 귀 뒤가 물고기 지느러미같이 되어 있다. 귀갑문 안에는 만자와 연꽃무늬가 교대로 장식되었다. 비머리인 이수에는 구름 위에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싸인 보주를 다투어 물고자 하는 모습을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이 비는 높이가 245㎝, 폭 126㎝이며 고려초 조각 예술의 높은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이 비 옆에는 보물 제 190호인 원공국사의 부도인 승묘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경복궁 안에 옮겨져 있다.

▲거돈사터(居頓寺-) [터]
[위치] 정산리 159번지에 있다. 현계산(535m) 줄기 황학산(332m) 서쪽 기슭에 있는 절터를 말한다.
[유래]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1966년에 사적 제 168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절터 아래 쪽 폐교된 정산분교 운동장에는 거돈사의 거대한 당간지주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이 시대 사찰로는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현재 금당지와 불좌대가 남아 있는데 주초석들의 배치상태로 보아 큰 규모의 불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삼층석탑(보물 제750호)과 고려 현종 16년(1025)에 건립된 원공국사 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다. 원공국사 승묘탑(보물 제190호)은 일제때 서울로 옮겨져 일본인 집에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현재의 유물들로 보아 이곳은 신라말 고려초기의 절터로 추정된다.

▲거론(巨論) [마을]
[위치] 서작(西作) 북쪽, 거돈사터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거론이'라고도 한다. '론'은 논을 뜻한다.

▲거론들 [들]
[위치] 거론 앞에 있는 10여 정보의들을 말한다.

▲거론이 [마을] → 거론

▲거론이 골짜기 [골]
[위치] 거론이 앞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거문들 [마을]
[위치] 재재기 앞 정산교 북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공론 저수지 [못]
[위치] 정산 1리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공말 [마을]
[위치] 재재기 남쪽에 있다.
[특이사항] 옛날에 쇠붙이로 생활기구나 농기구를 만들던 대장간이 있던 곳이다.

▲공말제방 [둑]
[위치] 공말 앞에 있는 둑을 말한다.

▲공수들 [들]
[위치] 아래솔미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관덕(觀德) [마을] → 관덕이

▲관덕고개 [고개]
[위치] 관덕에서 법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관덕이 [마을]
[위치] 서작 북쪽 강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정산 4리 2반에 있다. 관덕, 관득이라고도 한다.
[유래] 이 마을을 지나면 남한강물이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므로 관덕이라 했다고 한다.
[풀이] '덕'은 '둑, 득'과 같은 말로 언덕의 뜻이다.

▲관득 [마을] → 관덕이

▲노적봉 [산]
[위치] 선담 남쪽에 있는 높이 324m의 산을 말한다.

▲능골 저수지 [못]
[위치] 염태고개 밑 섬들 서쪽에 있는 못을 말한다.

▲담안 [마을]
[위치] 샘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거돈사터 위에 있다. 장내라고도 한다.
[유래] 거돈사가 없어진 후 옛날 거돈사의 담 안 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서 담안이라고 한다.

▲더갈봉 [산] → 덕갈봉

▲덕갈봉 [산]
[위치] 미륵산에서 뻗어 나온 높이 435m의 산을 말한다. 작실고개 동쪽에 있다.
[유래] 떡갈나무가 많다고 하여 덕갈봉이라고 한다.

▲도요지(陶窯址) [터]
[위치] 정산리 현계산 중턱에 있다.
[내용] 이곳은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많은 자기편과 가마 유구 등이 흩어져 있다.

▲뒷골고개 [고개]
[위치] 거문들 뒷편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못배미 [논]
[위치] 거돈사터 옆에 있다.
[유래] 옛날 거돈사가 있을 때 이곳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절이 없어진 후 못을 메워 논을 만들었다. 못을 메워 만든 논이라 하여 못배미라고 한다.

▲사방산골 [골]
[위치] 서작 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산득골 [골]
[위치] 담안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살구나무골 [골]
[위치] 거문들 동남쪽, 뒷골고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샘개나루 [나루]
[위치] 솔미 북쪽에 있는 나루터를 말한다. 지금은 없어졌다.

▲샘골 [마을]
[위치] 거론 서쪽 깊은 골짜기에 있다. 천곡(泉谷)이라고도 한다.
[유래] 골짜기에 좋은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샘골 골짜기 [골]
[위치] 샘골 앞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서작(西作) [마을]
[위치] 솔미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서작골이라고도 한다.
[유래] 자작 서쪽에 있다는 뜻이다.

▲서작골 [마을] → 서작

▲석자골 [골]
[위치] 노적봉 서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선담 [마을]
[위치] 의재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선담골 [골]
[위치] 선담이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선도동(善道洞) [마을]
[위치] 정산리에 있는 마을로 정시한의 묘소가 있다.

▲선득골 [골]
[위치] 담안 동쪽으로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솔고개 [고개]
[위치] 중간말에서 단강리 산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솔미 [마을]
[위치] 솔미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남동쪽 강어귀에 앙성면 강천리로 가는 나루터를 배경으로 발달된 정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큰말, 공말, 아래말이라고도 한다.

▲솔미교 [다리]
[위치] 공말과 솔미를 잇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36m, 너비 9m로 1991년에 건립되었다.

▲솔미나루 [나루]
[위치] 아래솔미 앞에 있는 나루를 말한다. 충북 충주시 앙성면으로 통한다.

▲솔미보 [보]
[위치] 솔미 앞에 있는 보를 말한다.

▲솔미소 [소]
[위치] 솔미 앞 느티나무 밑에 있는 소를 말한다.

▲승묘탑 [탑] →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신대익(申大益) 묘소 [묘]
[위치] 정산리 솔미 마을 남동쪽 산기슭에 있다.
[내용] 신대익은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후손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수보(壽補)이다. 예전의 비석은 묘소 뒷편에 있으나 마모되어 알아보기 어렵고 1988년에 새로 비석이 세워졌다.

▲신선목 [바위]
[위치] 정산1리 솔미산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옛날에 신선과 할머니가 여기에서 바둑을 두었는데 바둑판은 바위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줄을 그어서 만들어 썼다. 바둑에서 신선이 이기고 할머니가 졌는데 화가 난 할머니는 옆에 오줌을 누고 신선은 이겼다고 손가락으로 줄을 그어 표시를 하였다고 한다. 그 손가락으로 그은 줄과 오줌을 눈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아래솔미 [마을]
[위치] 솔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양지말 [마을]
[위치] 거론 양지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양촌(陽村)이라고도 한다.
[유래] 볕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양지말이라 한다.

▲양촌(陽村) [마을] → 양지말

▲어재 [고개] → 의재

▲웃솔미 [마을]
[위치] 솔미 윗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황소고개 동쪽에 있다.

▲유경(逾逕) [고개] → 지르네미

▲음달말 [마을]
[위치] 거론 남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음지말, 음촌(陰村)이라고도 한다.
[유래] 응달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말 [마을] → 음달말

▲음촌(陰村) [마을] → 음달말

▲음촌 저수지 [못]
[위치] 음달말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의재 [고개]
[위치] 담안 윗골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현 자작과 손곡을 잇는 11번 도로이다. 어재, 의치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에 어느 임금님이 넘었다고 해서 어재>의재라고 부른다 한다.

▲의재 [마을]
[위치] 의재 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 거돈사지 북쪽 위에 있다.

▲의치(義峙) [고개] → 의재

▲자자기 [마을] → 재재기

▲자작(自作) [마을] → 재재기

▲자작개울 [내]
[위치] 재재기 앞에 있는 내를 말한다. 현계산에서 발원하여 정산리를 거쳐 솔미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자작천이라고도 한다.

▲자작고개 [고개]
[위치] 재재기 뒤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자작 공동묘지 [묘]
[위치] 재재기 뒷산에 있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자작들 [들]
[위치] 재재기 앞에 있는 20여 정보의 들을 말한다.

▲자작천 [내] → 자작개울

▲장내(墻內) [마을] → 담안

▲재재기 [마을]
[위치] 거론 남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자작, 자자기라고도 한다.

▲정산교 [다리]
[위치] 솔미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20m, 너비 6m로 1984년에 준공되었다.

▲정산리 느티나무1 [나무]
[위치] 정산 1리 1631번지에 있다.
[내용] 1982년 11월 13일에 군(郡)나무로 지정되었다. 높이 25m, 둘레 620cm로 수령은 450년 정도이다. 당목으로 사용되다가 폐지되었다.

▲정산리 느티나무2 [나무]
[위치] 정산 2리 자작 마을 길가에 있다.
[내용] 1982년 11월 13일에 군(郡)나무로 지정되었다. 높이 25m, 둘레 575cm 정도로 수령은 약 500년이다. 예전에는 이 나무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산리 느티나무3 [나무]
[위치] 정산 3리 담안 마을의 거돈사터 입구 좌측에 있다.
[내용] 높이 20m, 둘레 4m로 수령은 1,000년 정도 되었다. 1982년에 도(道)나무로 지정되었다.

▲정산1교 [다리]
[위치] 자작마을 앞, 흥업-정산간 군도 11호에 있다.
[내용] 길이 21m, 너비 9m로 1991년에 건립되었다.

▲정산진(鼎山津) [나루]
[위치] 정산 앞에 있는 나루를 말한다. 예전에 농선(農船) 1척이 있었다.

▲정산내 [내] → 정산천

▲정산천(鼎山川) [내]
[위치] 담안, 거론, 재재기를 거쳐 남한강으로 들어가는 내를 말한다. 정산내라고도 한다.

▲정산초등학교 [학교]
[위치] 거돈사터 남쪽에 있다.
[내용] 1963년에 단강국민학교 정산분교장으로 인가되어 1963년에 정산분교로 개교하였다. 1969년에 정산국민학교로 승격하였고, 1990년 3월 1일 4학급으로 편제되었다가 현재는 폐교되었다.

▲정산촌(鼎山村) [마을] → 정산리
[위치] 정산1리를 말한다.
[특이사항] 예전에 한양사람 박형(朴泂)은 일찌기 방정한 품행으로 세상에 이름이 높이 드러나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하였다. 임진왜란 때 원주 남쪽 정산촌의 타향에서 살다가 여생을 마쳤는데, 뒤에 그를 정산선생(鼎山先生)이라고 불렀다.

▲정시한(丁時翰) 묘소 [묘]
[위치] 정산리 현계산 중턱에 있다.
[내용] 정시한(1625∼1707)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군익(君翊), 호는 우담(愚潭)이다. 비석은 1886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글을 짓고, 후손 정학교(丁學敎)가 글씨를 썼다.

▲조산골 [골]
[위치] 조산저수지에서 황학산 북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조산저수지 [못]
[위치] 정산 2리에 있는 못을 말한다.

▲중간말 [마을]
[위치] 담안과 거론 중간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중간촌이라고도 한다.
[유래] 거돈사지로 들어가는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중간촌(中間村) [마을] → 중간말

▲지느러미 [마을] → 지르네미
[유래] '지르너미'가 자음이 서로 교체되어 발음이 편리한 '지느러미'가 되었다.

▲지르너미 [마을] → 지르네미

▲지르네미 [마을]
[위치] 담안 서쪽 골짜기에서 법천리로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지르너미, 지느러미, 유경(逾逕)이라고도 한다.
[유래] 지름길에 발달되어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에 법천사와 거돈사 스님들이 서로 왕래하는 지름길이어서 지르너미>지르네미가 되었다. 이에 비해 '서지고개'는 시간이 많이 걸려 넘는 고개이다.
[풀이] '질러가다'의 뜻인 '지르(다)' 에 '넘다'가 결합하여 '지르+넘+이>지르넘이>지르너미>지르네미'가 되었다.

▲천곡(泉谷) → 샘골

▲촉새봉 [산]
[위치] 덕갈봉 남쪽에 있는 높이 404 m의 산을 말한다.
[유래] 산이 매우 가파르고 정상이 뾰족하여 촉새봉이라고 한다.

▲포담(浦潭) [마을] → 개소

▲학고개 [고개]
[위치] 담안에서 지르네미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현계산(玄溪山) [산]
[위치] 백운산에서 법천 2리까지 서쪽으로 뻗어 남한강가에 이르는 높이 535m의 산을 말한다.
[유래] '검은 계곡의 산'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산이 높고 험하며 나무가 울창해서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이므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황소고개 [고개]
[위치] 공말에서 솔미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황학산(黃鶴山) [산]
[위치] 정산리에서 남한강 쪽으로 솟은 높이 332m의 산을 말한다.
[유래] 글자대로 풀이하면 노랑색 학이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풀이] 황(黃)자가 들어가는 산은 대체로 산 경사가 느릿하거나 산의 면적이 넓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황'의 뜻인 '누르'를 따왔을 가능성이 있다. '널', '놀', '눌'은 서로 비슷한 뜻으로 '너르', '노르', '누르'로 쓰인다. 학은 학(鶴)이 아니라 음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황학은 '누락, 눌악'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넓은 산, 비탈이 느린 산, 줄기가 늘어진 산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황학산은 정상이 이 부근의 다른 산과 비교해서 넓기 때문에 이렇게 불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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