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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작성일 2018.04.02 조회수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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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호리(興湖里)
작성자 관리자
[위치]
흥호리는 면소재지의 북쪽에 있다. 동쪽은 손곡리, 서쪽은 여주시 점동면, 남쪽은 정산리, 북쪽은 노림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검단, 신촌, 성등, 월봉, 양호, 창촌을 병합하여 흥원창과 양호의 이름을 따서 흥호리라 하였다.


[연혁]
흥호리는 남한강과 섬강이 합수되는 지점으로 은섬포라고도 했다.
원래 조선시대 원주목 부론면 지역으로 흥원창과 시장이 있었으므로 흥원창 또는 흥원장(興原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검단, 신촌, 성등, 월봉, 양호, 창촌을 병합하여 흥원창과 양호의 이름을 따서 흥호리라 하였다 한다.

[특이사항]
우리나라 12조창(漕倉)중의 하나인 흥원창이 있던 곳이다. 이 흥원창은 조세미(租稅米)의 수송을 위하여 수로 연변에 설치하였던 창고로 강상 수송을 맡았던 수운창이고 이 조창제도가 완비된 것은 992년(고려 성종 11년)경이다. 이 흥원창에는 원주, 평창, 영월, 정선, 강릉, 삼척, 울진, 평해군 등에서 가져오는 세미는 모두 육로를 거쳐 이곳까지 와서 수운을 이용하여 한양까지 보내졌다.

[지명]
▲가래울 [들]
[위치] 성등이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풀이] 가래+울>가래울이 되었다. '가래'는 갈래를 뜻하고 '울'은 골>굴>울로 변하여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가래울 저수지 [못]
[위치] 흥호 1리 가래울 뒤 도장 골짜기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가루개래 [마을] → 신흥
[유래] 고개가 갈라지는 곳에 있는 내를 뜻한다.
[풀이] '가루개'의 '가루'는 '가르다'에서 온 것이고 '개'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가루개는 낮은 고개가 여러개 있어 가루고개라고도 한다. 갈래를 뜻하는 '가루'는 '가르다(分)'에서 온 것이며 '개'는 고개(峙, 峴)를 뜻하므로 가루+개>가루개가 되었다. '가루개'에 내(川)가 결합하여 '가루개+내>가루개내>가루개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가루개에 있는 내였겠으나 마을이름으로 확장되었다.

▲개똥모롱이 [모롱이]
[위치] 아채 앞에 있는 모롱이를 말한다.

▲검단사터(黔丹寺-) [터]
[위치] 흥호리 월봉 마을 동북쪽의 금단 마을에 있었던 절터를 말한다.
[내용] 이곳 주변에 청운군(靑雲君) 심명세(沈命世)의 묘소가 있는데, 심명세 사후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절터는 경작지가 되어 있으며 돌과 기와장이 흩어져 있고, 우물터가 있다.

▲검단산(劒丹山) [산]
[위치] 흥호리에 있는 산을 말한다.
[특이사항] 심명세의 묘소가 언덕에 있다.

▲검단이 [마을]
[위치] 월봉 동북쪽, 흥호 1리 2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금단(錦丹), 금단(錦壇)이라고도 한다.
[유래] 검단사라는 절이 있어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이사항] 조선 인조대왕 때 일등공신이며 공조참판을 지낸 심명세가 이곳에 와보고 산수가 아름답고 명당자리이니 내가 죽거든 이곳에 묻어 달라고 했다. 이 분이 돌아가신 후 그의 유언대로 이곳에 묘를 마련하고 묘막을 짓고 심씨 집안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후손들은 사당이나 제단을 훌륭하게 짓고 일가들이 모여 제사를 올렸다.
[풀이] '금단(錦壇)'이란 '화려한 제단'이라는 뜻이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검단'이 '금단(錦壇), 금단(錦丹)'으로 정착된 것으로 생각된다.
어원으로 본다면 '검'은 ' ' 계통의 말이다.   계통의 말들은 감(가마, 가무, 가매...), 검(거모, 거무, 거마...), 곰(고모, 고마, 고매...), 금,굼(그므, 구무, 구매...)등으로 나타난다. '단'은 '담, 듬'처럼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단'은 '큰, 거룩한 땅, 마을'의 뜻으로 풀이된다.

▲검단이 앞다리 [다리]
[위치] 검단이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구름다리 [다리]
[위치] 양호에서 흥호리로 가는 길에 있다.

▲귀밑들 [들]
[위치] 성등이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금단(錦丹, 錦壇) [마을] → 검단이

▲검단리(黔丹里) [마을] → 검단이

▲동매 [마을]
[위치] 월봉 남쪽 강가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물에 잘 잠기는 땅이라는 뜻이라 한다. 옛날에는 이곳에 나루가 있었고 강원도, 충청도 사람들은 물론 경상도 지방의 보부상들까지 이 나루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특이사항] 이곳에서 구석기 유물인 찍개가 발견되었다.

▲동매산 [산]
[위치] 동매에 있는 산을 말한다.

▲두둑말 [마을]
[위치] 검단이 북쪽에 있는 자연제방 위에 생긴 마을을 말한다.
[유래] 제방위 둔덕에 생겼으므로 두둑말이라 한다.

▲뒷골 [골]
[위치] 월봉 뒤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뒷산 [산]
[위치] 월봉 뒤에 있는 높이 117m의 산을 말한다.

▲밤개산 [산]
[위치] 월봉 동쪽에 있는 높이 156m의 산을 말한다.

▲보국사(普國寺) [절]
[위치] 흥호 1리 583번지에 있는 한국불교교화원 절을 말한다.
[내용] 1984년 노기섭(盧起燮)이 창건하였다.

▲새말 [마을]
[위치] 두둑말 서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신촌이라고도 한다.

▲새말 앞다리 [다리]
[위치] 새말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새말 앞들 [들]
[위치] 새말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서늘들 [들]
[위치] 흥호리에 있는 100여 정보의 큰 들을 말한다.

▲서창(西倉) [터]
[위치] 예전에 흥원(興原)에 있던 창고로 32칸이었다고 한다.

▲성등(聖登) [마을] → 성등이

▲성등이 [마을]
[위치] 월봉 북쪽, 검단이 서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성등(聖登), 승등이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에 이곳을 통해 다릿골 나루터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 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나룻배의 운행이 매우 빈번했기에 배를 매어두는 배말뚝도 많았을 것이다. 즉 배말뚝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성등이 공동묘지 [묘]
[위치] 성등이 뒷산에 있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성등이 앞들 [들]
[위치] 성등이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승등이 [마을] → 성등이

▲신촌 [마을] → 새말

▲신흥(新興) [마을]
[위치] 두둑말 서쪽에 있다. 가루개래, 신흥리라고도 한다.
[유래] 전에는 가루개래라 불렀는데, 화재로 온 마을이 불타버린 뒤 마을을 다시 세우고 신흥리라 이름하였다.

▲신흥리(新興里) [마을] → 신흥

▲심명세(沈命世) 묘소 [묘]
[위치] 흥호 2리 검단이 마을에 있다.
[내용] 심명세(1587∼1632)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덕용(德用)으로 1623년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되고 청운군(靑雲君)에 봉해졌다. 묘역에는 장명등 1기, 동자석 2기, 문인석 2기, 상석, 촛대 2기가 있다. 최근에 장명등이 도난당하였다.

▲심명세 신도비(神道碑) [비]
[위치] 흥호 2리 검단이 마을에 있다.
[내용] 1634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碑文)은 계곡(鷄谷) 장유(張維)가 글을 지었고, 글씨는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이 썼다. 신도비는 대석(臺石)과 비신(碑身), 그리고 쌍룡(雙龍)으로 조각된 이수( 首)로 되어 있다.

▲심희세(沈熙世) 묘표(墓表) [비]
[위치] 흥호 2리 검단이 마을 심희세 묘소 앞에 있다.
[내용]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후기의 것으로 비문 앞면은 심희세의 묘표이고, 뒷면은 부인 밀양 박씨의 묘표이다.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가 글을 짓고 이정영(李正英)이 전서(篆書)로 글씨를 썼다.

▲아차(峨嵯) [마을] → 아채

▲아차동(衙叉洞) [마을] → 아채

▲아채 [마을]
[위치] 창말 북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아차, 야채라고도 한다.

▲아채 앞다리 [다리]
[위치] 아채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야채 [마을] → 아채

▲양삿 [마을]
[위치] 월봉 남쪽에 있는 마을.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있다. 양사지, 양호(良湖)라고도 한다.

▲양사지 [마을] → 양삿

▲양호(良湖) [마을] → 양삿
[유래] 전에 강에 호수가 있어서 양호라 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번화했고 70년대에도 3-4가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마을이 없어졌다.

▲양호나루 [나루]
[위치] 양호 앞에 있는 나루를 말한다. 경기도 여주 점동면으로 건너간다.

▲예수재림교회 [교회]
[위치] 흥호 2리에 있는 교회를 말한다.

▲왕박지 [산]
[위치] 새말 뒤에 있는 산을 말한다.

▲월봉(月峰) [마을]
[위치] 흥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창말 북쪽에 있다.
[유래] 앞 산이 달의 모양이라 하며, 또는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국이라 하여 월봉이라고 한다. 창말에서 보면 저녁에 달빛이 가장 먼저 비친다고 한다.

▲월봉 공동묘지 [묘]
[위치] 월봉 뒷쪽에 있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월봉(月峰) 한기악(韓基岳)선생 유적비 [비]
[위치]: 흥호리 78번지 월봉에 있다.

▲은섬포(銀蟾浦) [마을] → 흥호리

▲응골 [골]
[위치] 뒷산 서쪽 섬강변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조린 묘 [묘]
[위치] 흥호리 아채 마을 입구의 산기슭에 있다.
[내용] 조린(1542∼1627)의 본관은 횡성, 자는 중겸(仲謙), 호는 은은당(隱隱堂)이다. 묘소에는 묘비, 무인석 2기, 동자상 2기, 촛대 2기, 상석이 있다.

▲조린(趙 ) 묘갈(墓碣) [비]
[위치] 조린 묘소가 있는 산 아래에 있다.
[내용] 1629년 7월에 세워진 것으로 정경세(鄭經世)가 비문의 글을 지었고, 이홍주(李弘胄)와 김상용(金尙容)이 각각 비문의 글씨와 전서(篆書)를 썼다. 비신의 하단은 손상되어 있다.

▲조성립(趙誠立) 묘 [묘]
[위치] 흥호리 아채 마을 입구의 산기슭 조린 묘소 앞에 있다.
[내용] 조성립(1568∼1638)의 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여수(汝修), 호는 일소헌(一笑軒)이다. 묘 앞에 비가 있다.

▲지루무고개 [고개]
[위치] 월봉에서 검단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밤개산 남쪽으로 나 있다.

▲지루무골 [골]
[위치] 월봉 동쪽 밤개산 밑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진개미 [마을]
[위치] 새말 동쪽, 긴경산 밑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진검, 진기미라고도 한다.

▲진개미 다리 [다리]
[위치] 진개미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진개미들 [들]
[위치] 진개미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진개미 저수지 [못]
[위치] 진개미 앞에 있는 저수지를 말한다.

▲진검(眞檢) [마을] → 진개미

▲진기미 [마을] → 진개미

▲창말 [마을]
[위치] 흥호 2리, 월봉 남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창촌(倉村)이라고도 한다.
[유래] 조선시대 흥원창(興原倉)이 있었다. 흥원창의 창고가 있던 마을이다. 큰 창고와 시장이 이곳에 있었으나 1926년 대홍수로 침수되어 시장은 개치로 옮겨졌다.
[특이사항] 창말의 지형은 동서쪽이 산으로 막혀 있어 마치 울타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천연의 언덕 울타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본래 부론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로 1934년 현 위치로 이전된 후 그 학교 터는 밭으로 변했다. 은은당(隱隱堂) 조린(趙 )과 대사간(大司諫) 조성립(趙誠立)의 묘소가 있다.

▲창촌(倉村) [마을] → 창말

▲큰골 [골]
[위치] 흥호리에 있는 큰 골짜기를 말한다.

▲하살미 [마을]
[위치] 성등이 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흥원도(興原渡) [마을] → 흥원창
[유래] 고려 때 흥원(興元), 흥원진(興原津)이라고 하였다. 한강의 진도(津渡)이다.

▲흥원장(興原場) [마을] → 흥호리

▲흥원참(興原站) [마을] → 흥원창
[위치] 고을 서쪽 35리에 있었다고 기록에 전한다.

▲흥원창(興原倉) [마을]
[위치] 창말에 있던 마을을 말한다.
[유래] 고려 초에 남도(南道)의 수군(水郡)에 12창(倉)을 두었을 때 원주에 흥원창이 설치되었다.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 등 강원도 영서지방 남부 5개 고을의 조세(租稅)와 세곡(稅穀)을 이곳에 수납하여 조운(漕運)으로 서울로 가져갔다. 조선 후기에 관선조운(官船漕運)이 쇠퇴되고 사선임운(私船賃運)이 널리 행해지면서 이름만 존재하였다. 흥원창에는 적재량이 2백석인 평저선(平底船) 21척이 있었다. 고려 충렬왕 때 판흥원창(判興元倉)이었던 조신(曺愼)이 원충갑과 함께 영원산성에서 합단적을 물리쳤다.

▲흥원창터 [터]
[위치] 창말에 있는 흥원창의 터를 말한다.
[유래] 조선시대 원주의 주요 관창은 읍내에 있는 사창(司倉)과 별창(別倉)을 제 외하고 북창(안창), 서창(흥원), 동창(주천) 등 세 개의 창고가 있었는데 서창이 흥원에 있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수로의 이용은 줄어들게 되었고 1910년경에는 대체로 폐지되었다. 흥원창에서는 조선시대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 고을의 조세(租稅)를 받아 이곳에 저장하였다가 배로 서울에 운반하였다. 최근에 자연석으로 표석을 세웠다.

▲흥창모롱이 [모롱이]
[위치] 승등이 앞에 있는 모롱이를 말한다.

▲흥창버덩 [들]
[위치] 흥창 앞에 있는 20여 정보의 들을 말한다.

▲흥호리 [마을]
[위치]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곳의 마을을 말한다. 현 창말지역이다.
[유래] 이 마을은 고려 때 원주, 영월, 평창, 정선. 횡성 심지어는 강릉, 삼척, 평해 지방의 세금 곡식이나 물자를 이곳에 모아 배를 이용하여 개성으로 보냈으며 조선조 때에는 원주 등지의 조세만 모아 보냈던 곳으로 흥원창이라 하였다. 고려 때에는 전국 12조창의 하나였었는데 곡식 200석씩을 싣는 평저선 21척이 드나들었다. 양삿 앞강이 호수같고 넓고 깊어 흥원창 호수라는 뜻에서 흥호리라 하였다.

▲흥호리 느티나무1 [나무]
[위치] 흥호 1리 검단이 마을 도로변에 있다.
[내용] 1982년에 도(道)나무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500년, 높이 25m, 둘레는 680cm이다. 오래 전부터 당목으로 사용되었다. 매년 정월 초닷새에 돼지머리와 시루떡, 술 3되 3홉을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흥호리 느티나무2 [나무]
[위치] 흥호 1리 진기미 마을 길가에 있다.
[내용] 1982년에 군(郡)나무로 지정되었다. 높이 20m, 둘레 490cm로 수령은 약 450년이다. 당목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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