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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작성일 2016.11.28 조회수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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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동(開運洞)
작성자 관리자
[위치] 개운동은 원주시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져 있으며 동쪽은 봉산천을 경계로 하여 반곡동, 서쪽은 명륜동, 남쪽은 단구동, 북쪽은 명륜동 및 원인동과 각각 접해 있다.

[유래] 개운동은 한때 개운정(開運町)이었다가 1945년 왜식(倭式) 동명(洞名) 변경에 따라 개운동이 되었다. 개운동의 뜻은 원주 분지에 짙게 깔렸던 구름이 활짝 걷히고 원주의 운(運)을 연다는 것이다. 개운동은 ‘구만이’·‘궁만동(弓滿洞)’ 등으로도 부르는데 이는 지형이 활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마을에 살던 정병사(鄭兵使)의 집에 활이 가득히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한다.

[연혁] 1937년 10월 1일 총독부령 제197호로 원주읍으로 승격하면서 개운정(開運町)으로 명명되었다. 1945년 정(町)을 동(洞)으로 개칭하면서 원주읍 개운동으로 변경하였다. 1955년 9월 1일 원주시로 승격되면서 개운동을 설치하였다.

[지명]

구만이 [마을]
[위치] 원주중학교·원주고등학교 부근 산동네 전체로 개운 3·4·5·6통 지역을 말한다. 구만이·구만동·궁만동이라고도 한다.
[유래1] 지형이 활처럼 생겨서 궁만이, 구만이로 부른다고 한다.
[유래2] 이 마을에 살던 정병사(鄭兵使)의 집에 활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꼴동산 [산]
[위치] 2통 5반 원흥 3차아파트 뒤쪽에 있다.
[유래] 마을이 골짜기에 있다고 하여 골동산·꼴동산으로 불려졌다.

남문(南門) [터]
[위치] 지금의 남부시장 부근을 말한다.
[유래] 조선시대 강원감영의 남문이 있었다고 한다.

남문거리 [길]
[위치] 개운동과 명륜동 경계에 있는 길로 지금의 남부시장 앞이다.
[유래] 남문이 있던 거리라고 하여 남문거리라 한다.

도말 [마을]
[위치] 구만이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지금의 상지여고 부근 전체를 말한다. 도촌이라고도 한다.
[유래1] 도씨(都氏)가 살았다고 하여 도말이라 한다.
[유래2] 장마철에 홍수가 나도 돌이 많기 때문에 떠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무항골 [마을]
[위치] 궁만이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무랑골·무항곡·송림이라고도 한다.
현재 개운1차아파트와 단구동 해청아파트 사이 부근을 말한다.
[유래] 조선 세종때 직제학에 이르렀던 원호가 낙향하여 있을 때 세조가 호조참의를 제수하여 원호를 조정으로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이에 나졸로 하여금 수소문하였으나 군사들이 오면 항상 안개 속에 숨어 찾지 못 하고 돌아가므로 무항골이라 하였다 한다.

문화촌 [마을]
[위치] 향교골로 부르던 마을로 환경청 사거리 부근 3통 지역을 말한다.
[유래] 개운동 관할도 아니고 거리도 멀어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70년대 초부터 문화촌으로 명명하였다.

부흥마을 [마을]
[위치] 환경청 사거리 부근 3통 지역이다.
[유래] 향교마을로 부르던 곳인데 주민들의 의견이 부흥마을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동리(上洞里) [마을]
[위치] 지금 행정구역상의 원동·인동·개운동·명륜동 지역을 가리킨다.
[유래] 본래 원주읍내 위쪽이 되므로 상동(上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부면(本部面)의 본읍리(本邑里)·삼리(三里)와 부흥사면(富興寺面)의 일리(一里)와 판제면(板梯面)의 하일리(下一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동리(上洞里)라 하였다. 1937년 원주읍제 실시에 의하여 개운동(開運洞)·남산정(南山町)·대화정(大和町)·본정일정목(本町一丁目)·본정이정목 일부·금정(錦町) 일부로 나누었다가 1946년 동명 변경에 의하여 남산정을 명륜동(明倫洞)으로, 대화정을 원동(園洞)으로, 본정 일정목을 인동(仁洞)으로, 본정이정목을 중앙동(中央洞)으로, 금정을 일산동(一山洞)으로 고치고, 개운동은 그대로 두었다.

새말 [마을]
[위치] 도말 북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지금의 명륜동파출소 부근 8통 지역이다. 신말·신촌이라고도 한다.
[유래]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새말로 불렀다.

정충각(旌忠閣) [사당]
[위치] 개운동 산4번지에 있다.
[유래] 생육신의 한 사람인 관란(觀瀾) 원호(元昊)에게 내려진 정려(旌閭)이다. 6·25전쟁 때 퇴락한 것을 1971년도에 정충비와 비각을 세우고 현판을 달았다.

양지마을 [마을]
[위치] 3통 지역으로 환경청 사거리 부근이다. 향교골이라고도 한다.
[유래] 마을 뒤에 산이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어 마을에 항상 양지가 든다고 하여 양지말이라고 부른다. 인근에 향교가 있어 향교골로도 부른다.

청룡끝마을 [마을]
[위치] 6통 지역으로 원주고등학교 옆 산등성을 말한다.
[유래] 50~60년 전 이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이 마을 뒤의 산 형상이 마치 청룡의 끝처럼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치악로 [도로]
[위치] 개운동사무소에서 치악교를 건너 삼광부락까지 이어지는 1.6km의 도로를 말한다.
[유래] 치악산으로 연결되므로 치악로라 하였다.

치악마을 [마을]
[위치] 지금의 청담부폐 인근지역으로 치악교 서쪽이다.
[유래] 1982년도 이 마을 주민들이 마을명을 ‘장미마을’과 ‘치악마을’ 두 가지를 놓고 의논한 결과 치악산과 가깝다고 하여 치악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치악마을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하마비 [비]
[위치] 도립의료원 부근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를 말한다.
[유래] 향교가 있어 여기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갔으며, 때로는 잠시쉬어 가기도 했다고 한다.

향교골 [마을]
[위치] 환경청 사거리 부근으로 양지말이라고도 한다.
[유래] 인근에 향교가 있어서 향교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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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12.12